콘텐츠·K패션·해외사업까지 확장…정현석 대표의 젊은 리더십 본격화
점포·인력은 선택과 집중…롯데百 체질 전환 시험대
[녹색경제신문 = 서영광 기자] 롯데백화점이 10년 만에 광고모델을 내세웠다. 주인공은 글로벌 아티스트 제니다.
단순히 유명 연예인을 앞세운 광고 캠페인으로만 보기에는 변화의 폭이 크다. 국내 전 점포는 물론 해외 점포와 인천공항, 서울역 등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동선까지 캠페인 접점을 확대한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넘어 글로벌 고객과 브랜드가 만나는 접점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그 중심에는 올해 새롭게 롯데백화점을 이끌고 있는 정현석 대표가 있다. 1975년생인 정 대표는 롯데백화점 역대 최연소 대표다. 지난해 말 대표로 내정된 데 이어 올해 3월 공식 취임한 그는 취임 이후 조직과 점포, 콘텐츠, 글로벌 사업에 걸쳐 연이어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제니 기용은 그 변화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10년 만의 광고모델…롯데百의 문법을 바꾸다
롯데백화점이 제니와 함께 선보이는 캠페인의 메시지는 'As I am'이다.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을 표현해온 제니의 이미지를 활용해 고객 개개인의 취향과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여기에는 백화점의 역할에 대한 정 대표 체제의 고민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백화점 경쟁력은 좋은 브랜드와 상품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고 소비자의 취향이 세분화되면서 오프라인 공간에는 상품 자체를 넘어 방문해야 할 이유가 요구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제니를 앞세운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제니가 음악과 패션, 문화 영역에서 구축한 이미지와 영향력을 백화점의 브랜드 경험과 연결해 '무엇을 살 것인가'를 넘어 '어떤 취향을 경험할 것인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캠페인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운영하는 해외 점포에도 제니를 활용한 광고와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인천공항 수하물 수취 구역과 서울역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공간에도 광고를 내건다.
백화점을 찾아온 관광객을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브랜드를 노출해 고객 접점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정현석 대표가 꺼내든 '콘텐츠' 카드
제니는 갑자기 등장한 카드가 아니다. 정 대표가 취임 이후 가장 빠르게 손댄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콘텐츠다.
롯데백화점은 대표 직속으로 미래전략본부와 넥스트콘텐츠랩을 신설했다. 마케팅과 AI, 이커머스, 브랜딩 등 기존 조직에 흩어져 있던 미래 사업 관련 기능을 모으고 콘텐츠와 공간, IP 등을 활용한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실제 행보도 빨라졌다. 본점 영플라자 외관에는 대형 미디어파사드를 설치했고, K팝과 패션, 인플루언서 등 다양한 콘텐츠와의 협업을 확대했다. 잠실에서는 빅뱅 데뷔 20주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서울패션위크 등 패션 콘텐츠와의 접점도 넓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정 대표가 백화점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연결된다. 단순히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 채널이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새로운 취향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백화점의 역할을 확장하려는 것이다.
국내에서 발굴해 해외로…K패션도 정조준
정 대표의 시선은 국내 백화점에만 머물지 않는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롯데백화점 넥스트랩'을 통해 국내 패션·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단순히 해외 점포에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팝업스토어를 열고 시장성을 확인한 뒤 인큐베이팅과 정식 입점으로 연결하는 구조다. 첫 거점으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를 활용했고, 국내 브랜드를 대상으로 해외 시장 테스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백화점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기존에는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는 것이 백화점의 주요 역할 중 하나였다면, 이제는 국내에서 성장한 브랜드를 해외로 내보내는 플랫폼 역할까지 맡겠다는 것이다.
K팝과 K패션 등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백화점의 해외 점포를 하나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셈이다.
'키우는 곳'과 '정리할 곳'은 분명하게
이 같은 공격적인 확장 전략과 동시에 정 대표는 사업의 군살을 빼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분당점 영업 종료를 시작으로 저효율 점포에 대한 정리가 진행되고 있으며, 핵심 점포에는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인천점 리뉴얼을 마친 데 이어 부산점과 본점, 잠실점도 단계적인 리뉴얼을 추진한다. 특히 리뉴얼 효과가 나타난 점포에는 다시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인천점은 재개장 이후 매출이 증가했고 노원점 역시 젊은 고객층의 유입이 확대됐다. 모든 점포를 동일하게 성장시키는 대신 경쟁력이 확인되는 곳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인력 운영에서도 같은 방향성이 나타난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5년 만에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하지만 동시에 영업과 상품기획, 마케팅 등 새로운 성장 분야의 인력은 채용하고 있다. 단순한 인력 감축이라기보다 기존 조직의 구조를 바꾸면서 필요한 역량을 새롭게 채우는 과정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유니클로'에서 보여준 방식, 롯데百에서도 통할까
정 대표의 이런 행보는 과거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에프알엘코리아 대표를 맡아 유니클로의 국내 사업을 이끌었다. 당시 부진한 점포를 정리하고 대형 점포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 체질을 바꿨다.
이후 롯데백화점으로 복귀한 정 대표는 아울렛사업본부장을 거쳐 백화점 대표에 올랐다. 결국 지금 롯데백화점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정 대표가 과거 경험을 백화점이라는 더 큰 무대에 적용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살릴 사업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은 정리한다. 동시에 기존 사업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콘텐츠와 해외 사업을 통해 성장 영역을 찾는다.
그룹 쇄신 기조와 맞물린 '젊은 롯데'
정 대표의 행보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롯데그룹 전체의 변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말 정기 인사를 통해 주요 계열사의 CEO를 대거 교체하고 젊은 리더십을 전면에 내세웠다. 의사결정 속도와 실행력을 높이고 성과와 전문성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 대표는 이 같은 그룹의 쇄신 기조를 백화점 사업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인물 중 하나다. 대표 직속 조직을 신설해 미래 사업을 직접 챙기는 한편, 점포와 인력에 대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제니라는 글로벌 아이콘을 전면에 내세워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특히 10년 만의 광고모델 기용은 상징성이 크다.
롯데백화점이 그동안 상품과 점포 중심으로 고객과 소통했다면, 이제는 사람과 콘텐츠, 취향과 문화까지 브랜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모습이다.
정현석의 롯데百, '젊은 패기' 성과로 이어질까
한편 정 대표가 풀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변화의 속도’만큼 이를 ‘실제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
콘텐츠 사업은 단기간에 매출로 연결되기 어렵고, 해외 사업 역시 초기에는 투자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 제니를 활용한 글로벌 캠페인 역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과 실제 고객의 방문과 구매로 연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결국 정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많이 만드는 것보다 변화한 롯데백화점의 경쟁력을 실제 숫자로 증명하는 일이다.
현재까지의 행보만 보면 방향은 분명하다. 정 대표는 취임 이후 점포를 고르고, 조직을 바꾸고, 콘텐츠를 만들고, 해외로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가장 앞에 글로벌 아티스트 제니를 세웠다. 수익성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미래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투트랙 전략이다. 이는 롯데그룹이 요구하는 쇄신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정 대표에게 이번 변화는 단순한 조직 개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롯데백화점 역대 최연소 대표로서 자신의 경영 색깔을 얼마나 빠르게 조직에 정착시키고, '젊은 롯데'가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10년 만에 등장한 광고모델 제니가 그 변화의 얼굴이라면, 점포·조직·콘텐츠·글로벌 사업의 재편은 그 뒤를 받치는 실행이다.
결국 정현석 대표가 만들어갈 롯데백화점의 새로운 모습은 '얼마나 많이 파느냐'에서 '얼마나 강한 브랜드와 콘텐츠를 만들어 고객을 끌어들이느냐'로 경쟁의 축을 옮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젊은 대표가 꺼내든 변화의 카드들이 이제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 업계의 시선이 롯데백화점에 쏠린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에 "롯데백화점의 변화 속도가 상당히 빨라지고 있다"며 "기존 백화점 사업의 수익성을 지키는 동시에 콘텐츠와 글로벌 사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면서 자신만의 경영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젊은 리더십을 앞세운 그룹의 쇄신 기조와 맞물려 점포와 조직, 브랜드 전략을 동시에 손보는 만큼 향후 롯데백화점의 체질이 어떻게 달라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영광 기자 market@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