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I 팩토리 생태계 진입…MS 만나 '원 LG' 확장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취임 이후 상대적으로 외부 노출을 자제해왔던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 전환 국면에서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이른바 '삼쏘 회동'을 가진 것을 기점으로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과 직접 접촉하며 피지컬 AI와 AI 데이터센터(AIDC), 모빌리티 등 그룹의 미래 사업을 직접 챙기는 모습이다.
특히 구 회장이 직접 물꼬를 튼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불과 석 달여 만에 LG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의 엔비디아 AI 팩토리 생태계 진입으로 이어진 점이 주목된다. 최근에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까지 만나 협력 범위를 확대하면서 LG 계열사들의 사업 역량을 하나로 묶은 '원 LG(One LG)' 전략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최근 글로벌 빅테크 경영진과 연이어 직접 만나 AI 사업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LG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 역시 AIDC 냉각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로봇 등에서 엔비디아 생태계에 진입하며 AI를 전 그룹사 차원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고 있다.
'삼쏘 회동'부터 시작된 광폭행보···엔비디아 사업권 따냈다
구 회장의 최근 행보에서 변곡점은 지난 6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방한이다. 구 회장은 6월 5일 서울 홍대에서 황 CEO와 만찬을 가진 데 이어 사흘 뒤 LG트윈타워에서 최고경영진 회의(TMM)를 열고 ▲피지컬 AI ▲AI 인프라 ▲모빌리티 분야의 중장기 협력에 합의했다.
두 달 뒤에는 직접 미국 엔비디아 본사를 찾았다. 황 CEO와 다시 만나 전략적 사업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협력을 사업화 단계로 끌어올렸다. LG전자·LG유플러스·LG CNS·LG AI연구원 등 주요 계열사 경영진도 동행했다.
양사는 엔비디아 '아이작 그루트(Isaac GR00T)' 기반 휴머노이드 개발과 AI 팩토리 구축 등을 추진한다. 내년 1분기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레퍼런스 로봇을 공개하고, 2028년 상반기에는 충남에 80MW 규모 AI 팩토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LG전자 냉각,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LG CNS·LG유플러스의 설계·운영 등 계열사 역량을 하나로 묶는 '원 LG' 전략이다.
협력은 계열사의 실질적인 사업 기회로 이어지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2일 2.5MW급 대용량 냉각수분배장치(CDU)에 대해 엔비디아의 'DSX Ready CDU' 승인을 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도 같은 날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분야에서 DSX Ready 생태계에 합류했다. 구 회장과 황 CEO가 협력의 물꼬를 튼 지 석 달여 만에 주요 계열사가 엔비디아 AI 인프라 생태계에 진입한 셈이다.
LG전자에는 가전·TV·전장에 이은 AIDC 냉각을, LG에너지솔루션에는 전기차 배터리를 넘어 AI 데이터센터용 ESS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울 기회다. 아직 본격적인 매출 기여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글로벌 새 캐시카우로 성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구 회장은 지난 16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 40여명을 모아 약 8시간 동안 AI 팩토리와 피지컬 AI, AX 등 미래 투자 전략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AI는 더 이상 선택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축"이라며 빠른 속도와 집요한 실행력을 주문했다.
이로부터 닷새 뒤에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사티아 나델라 CEO를 만났다. 양사는 ▲AIDC ▲AX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협력을 확대해 MS의 글로벌 데이터센터에 LG의 냉각·전력·IT 인프라를 공급할 기회를 모색하고, MS의 AI·클라우드 인프라를 LG의 AX와 피지컬 AI 개발에 활용하기로 했다.
'원 LG' 전략으로 차별화···구 회장 직접 컨트롤타워 나서
구 회장은 2018년 취임 이후 다른 그룹 총수와 비교해 대외 행보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경영 현장을 직접 챙기면서도 외부 행사나 공개석상에서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 계열사와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AI를 중심으로 글로벌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구 회장의 기조가 바뀌었다는 평가다. AI와 반도체, 로보틱스 등 첨단산업에서 기업 간 협력이 단순한 부품 공급을 넘어 대규모 투자와 기술·생태계 결합으로 확대되면서 최고경영진 간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비롯해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이 직접 협상을 주도하는 만큼 국내에서도 이에 걸맞은 카운터파트가 직접 나서 전략적 신뢰를 쌓는 그림이다.
특히 기술 변화가 빠른 AI 산업에서는 총수 간 '톱다운' 합의가 사업화 속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무진 협의에 앞서 최고경영진이 협력의 큰 방향과 투자 의지를 공유하면 이후 계열사 간 기술 검증과 공급 계약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서다. 구 회장이 지난 6월 젠슨 황 CEO와 만난 이후 두 달 만에 엔비디아 본사에서 협력을 구체화하고, 다시 LG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의 사업 기회로 연결한 것도 이 같은 '총수 외교'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경영 외적인 불확실성도 일부 줄었다.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2023년부터 이어져 온 가족 간 상속회복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올해 2월 1심에서 구 회장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오너 일가의 상속 분쟁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일단 완화됐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의 최근 행보가 단순한 대외 활동 확대를 넘어 LG의 AI 사업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재편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과거 LG가 가전·배터리·디스플레이·통신 등 각 계열사의 사업 경쟁력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AI 시대에는 이를 냉각과 전력, 데이터센터, 로봇, 모빌리티로 연결해 하나의 솔루션으로 제공하는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어서다.
LG그룹 관계자는 "원 LG전략은 다른 그룹사가 갖지 못한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업화 과정에서 전 계열사가 함께 나서 고객사에 솔루션을 제안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며 "이 전략에 무게감을 더하기 위해 구 회장이 직접 나서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