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실명계좌·내부통제 심사 사실상 인가제 수준" 체감
11월 20일 28개사 전수 재신고 겹치며 FIU 심사 부담 가중
업계 "성장통 감내하겠지만 심사 기준·일정 투명하게 공개해달라"
[녹색경제신문 = 박지안 기자] 가상자산사업자(VASP) 첫 갱신신고 심사 기간이 최장 1년 7개월까지 늘어지면서 금융당국의 '늑장 심사'와 '과잉 검증'이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령상 갱신 거절 요건이 한정되어 있음에도 현장 심사는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대돼, 법적 신고제와 실제 심사 실무 사이의 괴리가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오는 11월 20일까지 기존 사업자 28곳 전체가 강화된 요건으로 재신고를 마쳐야 하는 일정이 겹치면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심사 과부하 및 처리 역량이 향후 가상자산 시장의 최대 변수로 부상했다.
16일 녹색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시행된 VASP 신고제는 3년 유효기간을 갖는다. 제도 시행 후 맞이한 첫 갱신 국면인 만큼 이번 심사의 소요 기간과 행정 관행이 향후 3년 주기로 되풀이될 갱신 심사의 기준선이 될 전망이다.
첫 갱신 사례, 제재 이력 없어도 전부 1년 이상
실제 주요 거래소들의 심사 소요 기간을 보면 지연 수준이 심각하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2024년 8월 신고 후 1년 4개월 만인 2025년 12월에야 수리를 받았다. 코빗은 1년 5개월(2026년 2월 수리), 코인원은 1년 7개월(2026년 5월 수리)이 걸렸다. 반면 빗썸과 고팍스는 각 거래소를 둘러싼 현안이 심사에 영향을 미치면서 갱신신고 수리가 지연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제재나 사고 이력이 없는 '클린' 사업자조차 심사에 1년 이상을 소모했다는 사실이다. 개별 사정이 존재하지만 전원 1년을 넘겼다는 것은 이번 지연 사태가 특정 사업자의 리스크 때문이 아닌 심사 절차 자체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함을 보여준다.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이용자 보호와 시장 건전성 확보라는 목표 아래 실명계좌 발급, 내부통제, 정보보호 체계 등을 과거보다 훨씬 면밀하게 검토하다 보니 물리적 심사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에는 불수리 요건 좁게 규정…실제 심사는 "인가제 수준" 체감
VASP 갱신심사는 자금세탁방지(AML) 체계, 대표자·임원·대주주 사항, 내부통제, 전산설비, 고객확인 체계까지 폭넓게 확인한다. 반면 특금법상 명시된 갱신 불수리 요건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미획득,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미발급 정도로 제한적이다. 오지급 사고나 당국 제재는 법적으로 갱신 거부 사유가 아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법상 명시된 불수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당국이 수리하지 않으면 법 위반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제재·사고 이력이 있는 사업자의 개선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심사가 길어지는 게 현실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전통 금융권 수준에 준하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고 체감한다"며 "단순히 서류 요건을 갖추는 것을 넘어 사업 전반의 리스크 관리 역량과 대주주 적격성까지 심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업계가 완전한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적인 성장통"으로 받아들인다는 설명이다. 이어 "인력 충원과 내부통제 시스템 고도화에 막대한 리소스를 투입해 허들을 넘고 있다"며 "향후 신고제 취지에 맞게 요건을 충실히 충족한 사업자에게는 보다 예측 가능한 행정 절차가 뒷받침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11월 20일 전수 재신고, FIU 심사 역량이 시험대
한편 금융당국은 지난 8월 20일 특금법 시행령과 VASP 신고매뉴얼을 개정해 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법인 VASP와 법인 대주주에 부채비율 200% 이하 요건을 신설했고, 대표자·임원뿐 아니라 최대주주·주요주주의 범죄 이력과 신용도까지 확인하도록 했다. 대주주·법령준수체계 변경 신고도 '사후 14일 이내'에서 '사전 30일 전'으로 바뀌었고 자금세탁방지 인력도 원칙적으로 4명 이상 확보하도록 했다.
기존 사업자 28곳 전원은 변경된 기준을 11월 20일까지 소급 적용받아 재신고해야 한다. 지난 7월 기준 재무자료가 확인되는 24개사 중 12곳은 새 부채비율 기준을 이미 충족하지 못하고 있고, 일부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 1년의 유예기간 내 재무구조를 정상화해야 하는 처지다. 빗썸·고팍스의 갱신심사조차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28개사 재신고 서류가 한꺼번에 접수되면 FIU의 심사 물량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앞서 심사 강도에 대한 의견을 밝힌 관계자는 규제 기준 강화에 따른 비용 부담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시시각각 상향되는 규제 눈높이에 맞춰 IT 인프라와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단기간에 완벽히 시스템화해야 하는 게 가장 큰 부담"이라며 "예치금 분리 관리, 실시간 이상거래 탐지(FDS) 강화, ISMS 고도화 등은 대규모 자본과 전문 인력의 투입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권 전체로 보면 중소형 사업자에게는 기업 생존과 직결될 만큼 무거운 비용적·실무적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며 "기준 유지·운영에 드는 런닝 코스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점이 현장의 가장 큰 현실적 고충"이라고 덧붙였다.
"엄정 심사"엔 이견 없지만…투명성 요구는 커져
가상자산업 특성상 해킹, 고객자산 유용, 자금세탁 위험을 고려하면 충분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데는 업계 내에서도 이견이 크지 않다. 다만 심사가 길어질수록 사업자가 절차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면서 평균 심사 기간, 계류 건수, 보완 요구 유형, 그리고 검사·제재 이력이 갱신심사에 어떤 방식으로 연계되는지에 대한 원칙을 당국이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심사 강도와 비용 부담을 언급한 관계자는 "심사 가이드라인의 명확성과 피드백의 적시성이 조금 더 확보됐으면 한다"며 "사전에 구체적이고 객관화된 심사 기준이 투명하게 공유된다면 거래소들도 시행착오를 대폭 줄이고 당국의 정책 방향에 더욱 신속하고 정확하게 부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결국 당국이 목표로 하는 시장 안정화와 투자자 보호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안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