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대상은 자본총계 마이너스 비상장사
회사 “ENEX 3.0 본격화”…구체 질의엔 “보도자료 외 답변 어려워”
전문가 “기업가치 산정·회수 가능성 설명 필요”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코스피 상장 가구업체 에넥스가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 속에서 비상장 바이오·웰니스 기업에 20억원을 투자했다. 회사 측은 기존 가구사업을 넘어 ‘미래형 생활솔루션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투자 대상 회사가 자본잠식 상태인 데다, 에넥스 역시 액면병합 이후에도 주가가 액면가를 밑돌고 있어 상장사 자본 배분의 적정성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된다. 회사는 본지의 구체 질의에 대해 “상장회사인 만큼 보도자료 외 추가 답변은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
자본잠식 비상장사에 20억 투자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넥스는 지난 9일 더마토바이오 주식 3만4270주를 20억31만470원에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취득 후 지분율은 6.67%다. 취득 방식은 더마토바이오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현금 취득이다.
에넥스는 취득 목적을 “지분투자 및 사업시너지 창출”이라고 밝혔다. 이번 투자 규모는 에넥스의 2025년 말 연결 기준 자기자본 410억8893만원의 4.87%에 해당한다.
투자 대상인 더마토바이오는 2022년 설립된 화장품·의약외품 연구개발 기업이다. 에넥스가 공시한 더마토바이오의 최근 3개년 요약 재무상황을 보면 2025년 기준 자산총계는 3억4900만원, 부채총계는 8억7700만원,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5억2800만원이다. 자본잠식 상태다. 같은 해 매출액은 12억8500만원, 당기순손실은 2억4800만원이다.
더마토바이오는 비상장사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처럼 정기보고서를 통해 일반 투자자가 세부 재무자료나 사업 현황을 확인하기 어렵다. 에넥스가 공시한 요약 재무정보와 회사 측 설명 외에는 투자 판단에 필요한 공개 정보가 제한적인 셈이다.
회사는 “ENEX 3.0 본격화”
에넥스는 이번 투자가 ‘ENEX 3.0’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ENEX 3.0은 건설 특판 중심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고객의 삶 전반을 케어하는 미래형 생활솔루션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성장 프로젝트다.
회사 측은 기존 가구 제조와 건설 특판 사업의 전문성을 유지·강화하면서, 더마토바이오의 바이오·메디컬 기술력을 결합해 주거·생활·웰니스가 결합된 신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에넥스는 더마토바이오와 함께 뷰티·메디컬 상업공간 원스톱 인프라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콘셉트 기획, 고객 동선에 맞춘 레이아웃 설계, 공간 인프라 시공 등 매장 오픈에 필요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1인 가구 맞춤형 공간 및 생활 패키지, 생활공간 기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넥스몰 신규 커머스 사업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사업 실행을 위해 ‘ENEX 3.0 추진위원회’도 발족한다. 박진규 에넥스 대표이사와 안성관 더마토바이오 대표이사가 공동위원장을 맡는다. 에넥스는 건국대학교 KU융합과학기술원과 업무협약도 체결하고 헬스케어 기술과 생활공간 솔루션을 융합하기 위한 산학협력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박진규 에넥스 대표는 “에넥스는 가구 회사를 넘어 변화하는 인구 구조와 소비 환경에 대응해 생활솔루션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할 것”이라며 “이번 전략적 투자는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과 기업 체질 개선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 질의엔 “보도자료 외 답변 어려워”
다만 회사는 투자 대상의 자본잠식 상태, 기업가치 산정 근거, 투자금 회수 가능성, 풋옵션의 실효성, 기존 가구사업과의 구체적 시너지 등에 대한 본지 질의에는 추가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에넥스 측은 “상장회사인 만큼 보도자료 외 답변은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 회사가 공시와 보도자료를 통해 투자 목적과 사업 방향을 설명한 만큼 추가 질의에 대해선 별도 답변이 어렵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상장사일수록 투자 판단의 근거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투자 대상이 비상장사이고, 재무상태가 취약한 경우에는 기업가치 산정 방식과 투자금 회수 구조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 중견 회계법인 파트너는 “상장사가 비상장 초기기업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투자 대상이 자본잠식 상태이고 투자 회사 역시 주가와 실적이 흔들리는 상황이라면 기업가치 산정 근거와 회수 가능성을 주주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액면병합 뒤에도 액면가 미달
에넥스는 올해 3월 5대 1 액면병합을 결정했다. 액면가액은 500원에서 2500원으로 높아졌다. 이후 주식병합 절차로 매매거래가 정지됐다가 지난달 거래가 재개됐다.
그러나 거래 재개 이후 주가는 부진했다. 지난 9일 에넥스 종가는 1306원으로 액면병합 후 액면가 2500원을 크게 밑돈다. 올해 1분기 실적도 적자로 돌아섰다. 에넥스는 1분기 매출 감소와 함께 영업손실,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금융당국의 상장폐지 제도 개편도 에넥스 주가 흐름을 민감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금융위원회는 부실기업 퇴출 강화를 위해 저가주, 저시가총액 기업에 대한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고, 액면병합 등으로 형식상 주가를 끌어올리는 방식에 대한 보완 장치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액면병합 이후에도 액면가 미달 상태가 이어지는 기업에 대해서는 시장의 경계감이 커질 수 있다. 온라인 종목토론방에서도 “가구회사 최초 코스피 상장사인데 상폐시키지는 않을 것”, “주가가 액면가를 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등 상장 유지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중소형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 임원은 “액면병합은 주가 단위만 바꾸는 조치일 뿐 기업가치를 직접 높이는 수단은 아니다”며 “병합 이후에도 액면가를 크게 밑도는 상황이라면 투자자들은 본업 회복 가능성과 자본정책의 일관성을 더 엄격하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구회사가 왜 바이오냐” 주주 반응
일부 주주들은 에넥스의 신사업 방향에도 의문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 종목토론방에는 “가구회사가 갑자기 바이오 투자를 하느냐”, “본업과 주가부터 정상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에넥스는 이번 투자를 단순 재무적 투자가 아닌 전략적 투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본업 실적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본잠식 비상장사에 20억원을 투입한 만큼 투자 우선순위와 사업 시너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상장사가 신사업을 추진할 수는 있지만, 본업과 거리가 있는 분야에 투자할 때는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과 주주 설명 책임이 더 중요해진다”며 “특히 투자 대상의 재무상태가 취약하고 일반 투자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라면 회사가 자발적으로 설명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71년 오리표싱크로 출발한 장수 가구사
에넥스는 1971년 박유재 창업주가 서울 영등포구 신정동에 세운 주방가구 회사 서일공업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76년 주식회사 오리표씽크로 법인전환했고, 1985년 오리표, 1992년 에넥스로 상호를 바꿨다. 1995년에는 증권거래소 시장에 가구 및 기타제조업으로 상장됐다.
박유재 명예회장은 국내 입식 주방문화를 개척한 1세대 가구업계 인물로 꼽힌다. 에넥스의 전신인 오리표싱크는 한때 국내 주방가구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였다. 박 명예회장은 충북 지역에서 제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도 있다.
현재 에넥스를 이끄는 박진규 대표이사 회장은 박유재 창업주의 장남이다. 공개된 인물 프로필 등에 따르면 박 회장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배명고와 세종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서강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과 중앙대 중국경제전문가 과정도 수료했다.
박 회장은 1986년 오리표싱크, 현 에넥스에 입사했다. 이후 에넥스하이테크 대표, 에넥스 부회장을 거쳐 2010년 부친 박유재 창업주와 함께 각자대표를 맡았다. 2019년에는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2021년 송성수 대표 사임 이후에는 단독대표 체제가 됐다.
오너 2세 경영 속 신사업 전환
박 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던 에넥스를 2013년 흑자로 돌려세운 2세 경영인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건설경기 침체로 특판 비중이 높은 에넥스가 직격탄을 맞았지만, 대리점주와 협력사 등 현장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위기를 넘겼다는 평가가 있었다.
다만 최근 에넥스의 실적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은 2152억원으로 전년 2641억원보다 줄었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은 13억9824만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적자 전환했다.
에넥스의 구조적 약점으로는 건설경기에 민감한 B2B 매출 의존도가 꼽힌다. 에넥스는 신축 아파트에 들어가는 주방가구와 수납가구 등 특판 물량에 매출 상당 부분을 기대왔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건설 수주 감소가 이어지면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가구업계 관계자는 “가구업체들이 건설경기 둔화 속에서 온라인, 리테일, 생활서비스 등으로 확장을 모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서도 “다만 가구사업과 바이오·의료기기 유통 간 연결고리가 실제 매출로 확인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승계 마무리 뒤 자본정책 주목
박유재 명예회장은 2023년 보유하던 에넥스 주식 전량을 가족들에게 증여했다. 당시 박 명예회장은 보유 주식 225만8666주를 장남 박진규 회장과 증손주, 손자며느리 등에게 나눠 증여했다. 이로써 박 명예회장은 보유 주식을 모두 정리했다.
같은 해 에넥스는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73길 40 오피스텔 48개 호실을 115억원에 취득했다. 취득 목적은 본사 사옥 확보다. 해당 자산은 박유재 명예회장으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2000년부터 이 건물을 본사로 사용해왔다.
자본시장에서는 오너 일가 승계가 마무리된 상장사일수록 특수관계인 거래, 자산 매입, 신사업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설명 책임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풋옵션 있어도 회수 가능성은 별개
에넥스는 이번 투자와 관련해 풋옵션 계약이 있다고 공시했다. 5년 내 더마토바이오가 코스닥 상장 등 성장성 확보에 실패할 경우 연 4% 이자와 함께 투자금 상환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만 풋옵션이 투자금 회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 회사가 상환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실제 회수는 어려워질 수 있다. 더마토바이오가 현재 자본잠식 상태라는 점에서 시장이 이 조항을 얼마나 안정적인 회수 장치로 평가할지는 미지수다.
한 회계법인 밸류에이션 담당 파트너는 “풋옵션은 투자 안전장치로 볼 수 있지만, 회수 가능성은 결국 상대 회사의 재무상태와 현금창출력에 달려 있다”며 “상장사 재무제표상 향후 손상 여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 설득은 과제
전문가들은 에넥스가 신사업 전환 자체보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50년 넘은 주방가구 기업이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화, 1인가구 증가에 맞춰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바이오·의료기기 유통과 기존 가구사업 사이의 연결고리를 시장이 납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형 증권사 스몰캡 담당 연구원은 “가구회사가 고령층 주거공간, 헬스케어, 생활편의 서비스로 확장하는 전략은 가능하다”면서도 “그 전략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려면 제품, 유통망, 고객군, 투자 대상 회사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가가 액면병합 이후에도 부진하고 본업 실적도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신사업 기대감보다 자본 배분의 합리성을 먼저 보는 투자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에넥스가 이번 투자를 계기로 본업 침체를 돌파할 수 있을지, 아니면 주주들의 불신만 키우는 결과가 될지는 회사 측의 추가 설명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 대상의 기업가치 산정 근거, 향후 매출화 계획, 투자금 회수 방안, 본업과의 시너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순구 기자 po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