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선 ‘허리층 붕괴’ 본격화…3~5년 차가 갑자기 팀 리더로
경험 인력 유출 속도↑…조직 문화·서비스 품질 동시 타격 우려
[녹색경제신문 = 서영광 기자] 유통·뷰티·서비스 업계를 중심으로 연말 구조조정의 기류가 거세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기업들이 인력 효율화에 속도를 내면서, 중간관리자급 인력이 대거 이탈하는 ‘허리층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모레·GS·롯데…전방위적 조직 슬림화
뷰티 대기업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최근 전사 단위의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지난 2020년 말 이후 약 5년 만이다. 대상은 지원·오프라인 영업 조직 소속의 근속 15년 이상 또는 45세 이상 경력 입사 직원이며, 계열사 전반에 적용된다. 근속 연수에 비례한 위로금과 법정 퇴직금, 일정 기간 건강검진 지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편의점·홈쇼핑 등을 운영하는 GS리테일도 일정 연령·근속 기준을 충족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고, 롯데컬처웍스·롯데칠성음료·롯데웰푸드 등 롯데 계열사 역시 연이어 감축 조치를 시행했다. 일부 기업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비용 절감과 조직 재정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면세점과 이커머스 등 업황 악화 업종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영 환경 악화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생기며, 연말을 기점으로 구조조정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팀이 통째로 빠졌다”…현장은 ‘허리층 붕괴’ 체감
일선 현장은 인력 감축 속도가 조직 재구성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 한 중견 뷰티 브랜드 A사 직원은 최근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팀이 거의 전부 나갔다”며 “휴직이든 희망퇴직이든, 여러 이유가 섞여 있지만 공통적으로 ‘요즘 너무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입사 3년 차인데 갑자기 회사에서 팀 최고 선임 역할을 맡으라고 하더라”라며 “부담이 됐다”고 덧붙였다.
애매한 연차의 실무자가 갑작스레 팀 리더나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으며 조직 내 경험의 공백이 생기고 있다는 의미다.
A사 직원은 <녹색경제신문>에 “업무 처리도 처리지만, 팀 운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허리를 맡게 되니 혼란이 크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경험·노하우…조직 문화 단절 우려
중간관리자층 붕괴의 가장 큰 문제는 ‘경험의 동반 유출’이다. 통상 희망퇴직 대상은 장기 근속자 혹은 일정 연령대 이상 직원들이다. 즉, 조직 내 ‘역사’를 기억하고 ‘일이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특히 유통·호텔·면세·뷰티 등 현장 운영 비중이 높은 산업에서는 이들의 암묵지(暗默知)가 서비스 품질과 경쟁력을 지탱해왔다.
호텔 객실부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B씨도 최근 불안감을 체감했다. 그는 <녹색경제신문>에 “그룹에서 인사 이동이 자주 일어나니 최근 어디로 발령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들려왔다”며 “전혀 경험 없는 부서로 갈 수도 있다고 해서 긴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버텨냈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를 보면 드라마 ‘김부장(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 남의 일이 아니더라”라고 덧붙였다.
장기 근속자의 불안 심리는 조직 적응도에 영향을 주고, 이탈이 현실화할 경우 교육·인수인계 비용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중장기 체질에도 부담이 된다.
단기 비용 절감...단, 장기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 ↑
기업의 인력 효율화가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에는 도움이 되지만, 중간관리자층의 공백은 ▲의사결정 지연 ▲리더십 부족 ▲신입·주니어층의 조기 소진(Burnout)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유통·뷰티·호텔처럼 현장에서의 ‘노하우’가 경쟁력의 핵심인 산업은 이러한 리스크가 더 크다.
업계 한 인사(HR)관련 종사자는 <녹색경제신문>에 “희망퇴직은 기업이 위기 국면에서 택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지만, 허리층이 사라지는 구조조정은 회복하는 데 수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수록 희망퇴직·조직 슬림화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단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사람’과 ‘경험’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다.
이에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에 “당장 비용을 줄일 수는 있지만, 조직의 내력(內力)까지 함께 빠져나간다면 그 대가는 결국 기업 스스로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영광 기자 market@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