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목표부터 실행 주체 선정까지 부적절
국토부, 정비업계 쇄신에 보수적 태도로 일관
한국은 글로벌 3위의 현대차그룹을 보유한 자동차 강국이지만 정비업계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후진적 관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협의체 구성에서부터 수리 비용 산정까지 여러 이권이 얽힌 가운데 제도가 고착화됐다. 하지만 모빌리티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산업 생태계의 한 축인 정비업계에도 거대한 변화의 파도 앞에 섰다. 연재기사를 통해 정비업계 현행제도의 문제점과 향후 개선 방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지난 7일 보험정비협의회 회의 도중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팀장이 무단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하며 논란이 된 가운데, 이번엔 6억 6000만원 짜리 표준정비시간 연구가 사실상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 정비업 관리는 국토부 자동운영보험과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데, 부처의 책임감에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진행된 보험정비협의회 회의에서 국토부 팀장은 회의 자료가 미비하다는 점을 문제삼아 중간에 자리를 이탈해 복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진행에 차질을 빚으며 이날 회의가 무산됐다는 전언이다.
보험정비협의회가 목적대로 진척되지 않은 것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공표제가 폐지된 이후 자동차 정비 요금체계를 다시 수립하기 위해 보험정비협의회가 출범한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비업계와 보험업계가 평행선을 달리며 어떠한 결론도 도출해내지 못했다.
그 가운데 국토부는 조정자 역할에서 손을 놓고 방임적 태도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추가적인 문제로 대두된 부분은 표준정비시간 연구를 위한 용역이다. 표준정비시간은 한 작업 당 걸리는 시간을 표준화한 기준으로 정비요금 산출의 주된 축이다.
보험정비협회는 지난 3일 자동차모빌리티학회와 보험개발원 두 곳에 표준정비시간 산출을 위한 연구용역을 맡겼으며 <본지>에서 입수한 계약서에 따르면 연구비는 6억 6000만원이다.
◆ 정해진 답 놔두고 먼 길 돌아가... 문제 방치하는 국토부
자동차 기술 전문가들은 표준작업시간을 산출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제조사(OEM)에서 배포하는 표준작업시간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에 입각하면 이번 연구는 목적과 용역 선정에서 이미 정도(正道)를 벗어났다.
자동차는 차종과 트림별로 소요되는 정비시간이 모두 다르다. 같은 현대차 세단이라도 아반떼와 제네시스는 기능과 무게가 다른 만큼 도어 교체, 전장 수리, 외판 도장 등 모든 분야에서 수리 시간이 상이하다.
각 제조사 별 LTS(Labor Time Standard)는 각 차종 별 수리시간을 정확히 담고 있어 이를 활용하는 것이 국제 표준인데, 국내에서는 그간 보험개발원의 AOS 시스템을 사용해 왔다.
AOS 시스템은 제조사의 LTS를 활용하지 않고 자체적인 연구로 산출한 정비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승용차 △RV △SUV △버스 △상용차 △특장차 이렇게 여섯 차종을 기준으로 표준정비시간을 산출한다.
같은 승용차 바운더리에 있으면 브랜드, 세그먼트, 트림 상관 없이 동일한 작업시간이 적용된다. 당연히 현업에서는 실용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연구용역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다시 6개 차종 별로 표준정비시간을 도출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6억 6000만원의 연구비는 차종별 대표 차량을 구매하고 수리 과정을 시뮬레이션 하는 데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진행된 연구를 되풀이하는데 공금이 낭비되는 셈이다.
용역 수행자로 보험개발원이 선정된 것도 문제다. 보험개발원은 기존의 AOS 시스템을 공급하는 이해관계 당사자기 때문이다. 표준정비시간을 LTS 기반으로 전환해야하는 시점에서 보험개발원이 연구 주체가 된 것은 변화 의지가 없는 것으로 읽힌다.
보험정비협의회는 국토부 산하기관은 아니지만 정비업계 핵심 쟁점인 정비수가를 논의한다는 면에서 국토부와 업무상 연관성이 가장 높다. 몇 년째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협의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해야 하지만 국토부는 문제를 묵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정비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비 수가 체계는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가 나와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국내에 도입기만 하면 된다. 새롭게 무언가를 창조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며 "국내 도입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보고 업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할 일인데, 국토부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이 문제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 수입차보험정비협의회 출범도 막았다... 변화 통제하는 국토부
2024년부터 추진됐던 수입차보험정비협의회 출범이 무산된 것 역시 국토부가 입법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제보가 있다.
작년 말 김상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도로 수입차보험정비협의회를 별도로 마련하는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수입차는 국산차와 달리 제조사 유지•보수정보(RMI: Repair and Maintenance Information)를 바탕으로 수리를 하며 표준정비시간도 제조사의 LTS를 기반으로 한다. 이 때문에 국산차에 비해 정비 비용이 높아 보험사와의 갈등이 컸다.
수입차와 국산차는 요금 산출 방식이 상이하기 때문에 수입차 정비요금을 따로 협의하자는 것이 법안의 발의 취지였다. 또한 수입차는 유럽 제조사들을 주축으로 국제 표준에 따라 정비요금을 산출하고 있는 만큼, 수입차 방식을 국내에 안착시키자는 것이 협회 출범의 복안이었다.
하지만 상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국토부는 법안 통과를 일축했다.
입법 과정에 자문을 했던 한 관계자는 "수입차는 제조사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시간당 공임이나 표준정비시간 기준이 명확하다. 수입차를 본보기 삼아 국내 정비업계를 가다듬는 방향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해 법안을 추진했지만, 국토부는 해당 사안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국산차 정비협회에 법안 검토를 위임함으로서 사실상 협의회 신설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중앙정부 부처로서 무게감을 가지고 변화에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정비업계 체질개선은 중요한 숙제였고, 연간 몇차례씩 관련 공청회가 열리며 문제가 공론화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가 변화에 보수적으로만 대응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비업계는 오랜 관행이 고착화돼 꼬인 실타래를 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 실마리를 잡아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의지가 중요한데, 국토부는 관련 담당자도 매번 바뀌면서 일의 진척을 아예 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