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는 국제표준과 동떨어진 AOS 시스템 사용, 제조사 RMI 미공개가 원인
국내 정비 산업과 부품 산업 독점하려는 현대차 노림수? '소비자 권리침해' 비판 제기
한국은 글로벌 3위의 현대차그룹을 보유한 자동차 강국이지만 정비업계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후진적 관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협회에서부터 수리 비용 산정까지 여러 이권이 얽힌 가운데 제도가 고착화됐다. 하지만 모빌리티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산업 생태계의 한 축인 정비업계에도 거대한 변화의 파도 앞에 섰다. 연재기사를 통해 정비업계 현행제도의 문제점과 향후 개선 방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간 정비업계의 요금은 1990년대부터 시행된 '공표제'라는 제도를 기반으로 정해져 왔다. 공표제란 정비요금의 양 축인 '시간당 공임'과 '표준작업시간'을 정부가 일정 기준에 따라 고시하던 제도다.
공표제는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2018년에 폐지됐지만 사실 폐지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2018년 폐지 당시 기준에서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수정해서 사용하고 있다.
올해 국감에서도 자동차 정비요금 체계가 7년 넘게 공백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국토부는 조속히 요금 기준을 마련해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했으나, 여러 이권이 얽힌 가운데 일의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앞 기사에서는 새로운 시간당 공임 산정 제도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현황과 그 이유에 대해 살펴봤다. 이에 못지 않게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 표준작업시간이다.
▲ 표준작업시간 기준 다른 국산차와 수입차, 시장 혼란 초래
표준작업시간이란 각 정비 항목별로 작업을 완료하는 데 필요한 적정 시간을 수치화한 기준이다.
앞 범퍼 교체는 2.8시간, 도어 교체는 3시간, 엔진오일 교환은 0.5시간 이런 식으로 적정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를 통해 정비업자가 소요 시간을 부당하게 늘려 과도한 요금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현재 국내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은 수입차와 국산차의 표준작업시간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수입차는 제조사에서 배포한 표준작업시간(LTS)을 쓰고 있는 반면, 국산차는 보험개발원이 개발한 AOS라는 시스템을 기준으로 표준작업시간을 정한다.
요금 체계가 다르다보니 형평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보험사에서도 손해율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산차가 AOS 시스템을 버리고 수입차처럼 제조사가 제공하는 표준작업시간을 사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모두 제조사의 표준작업시간을 사용하며, AOS 시스템은 한국 안에서만 사용하는 고립된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선진국에서 제조사의 표준작업시간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해당 자동차를 정비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차의 '조물주'와 같은 제조사가 가장 잘 안다는 이유다.
똑같은 수리를 한다고 해도 차량의 기능과 특성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데, 이를 모두 고려해 정확한 수리 시간을 산출할 수 있는 것은 제조사 뿐이다. 정비업체, 보험사, 소비자 모두 이견이 없으려면 제조사의 정보를 사용해야 한다.
반면 보험개발원에서 만든 AOS는 차량별 정보를 가져올 수 없어, 국산차량 여섯개의 대표 차종 별로 표준정비시간을 나눠놨다. △승용차 △RV △SUV △버스 △상용차 △특장차 이렇게 차종별로 표준작업시간을 통일한 것이다.
같은 차종이라면 세그먼트나 트림에 상관없이 모두 통일된 정비시간을 적용받으니, 현장에서는 실무와 동떨어진 시스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지난 달 국토교통부는 새로운 표준작업시간 도입을 위해 연구 컨소시엄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컨소시엄 내 연구 주체로 보험개발원이 들어가 있어 또 한번 논란이 되고 있다. 보험개발원은 이미 AOS를 배포하며 수익을 얻고 있는 이해관계 당사인데, 이들이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데 적극적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한 컨소시엄은 여전히 여섯개의 대표 차종 별로 표준정비시간을 산출하려는 목표를 세우며, 기존 방식을 되풀이하려는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OS는 오직 한국에서만 쓰고 있는 시스템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자동차 산업 선진국이라고 하는 곳은 전부 제조사가 공개하는 LTS(표준작업시간)을 기준으로 삼고 있고, 이게 기본이다. 한국만 외따로 떨어진 섬처럼 독자적인 문화가 고착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국제표준에서 동떨어진 AOS 시스템 쓰나? RMI 미공개가 원인
전문가들은 현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현대차그룹의 폐쇄적인 정책을 지목한다.
표준작업시간은 제조사의 유지·보수 정보(RMI: Repair and Maintenance Information) 내에 포함된 항목인데, 현대차그룹은 국내에서 RMI 자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조사인 현대차와 기아의 표준작업시간을 볼 수 없으니, 보험개발원의 AOS 시스템이 유일한 대안이 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해외에서는 법적 강제성 때문에 RMI를 공개하면서도, 국내에서만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국내 소비자들을 우롱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RMI는 자동차 수리에 관한 모든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차의 물리적 수리 뿐 아니라 ADAS, 인포테인먼트 등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부분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RMI가 필수다.
특히 전기차는 배터리 정보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RMI 열람이 더욱 중요하다.
해외에서는 자동차를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라는 개념이 있다. 자동차를 구매했다면 그 차의 정보를 볼 권리도 소비자에게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은 제조사들에게 RMI 공개를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제조사가 자동차 정보를 독점하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차그룹이 RMI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익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직영정비사업소를 포함해 블루핸즈, 오토큐 같은 협력업체들에게만 RMI를 공개함으로서 정비시장을 독점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국산차 중에서는 98%, 전체 자동차 중에서는 70%에 달하는 점유율을 지니고 있는 만큼, 국내에선 정비 사업도 현대차그룹의 큰 수익 모델이다.
또한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정비 네트워크를 통제함으로서 보험사와 갈등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일반 정비업체에게 보험사는 '갑' 중의 '슈퍼갑'이다. 하지만 현대차와 기아에게는 보험사가 큰 소리를 내지 못한다. 점유율 70%에 달하는 시장에서 정비 권한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직영정비사업소에서는 시간당 15만원 이상의 공임을 불러도, 보험사가 이를 깎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고 말했다.
부품 시장을 방어하려는 것 또한 현대차가 RMI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완성차 판매 다음으로 국내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정비 시장에서의 부품 판매다. RMI를 공개해 정비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게 되면 순정 부품 점유율도 함께 떨어지는데, 현대차가 이를 경계한다는 이야기다.
정비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제조사 부품 점유율은 90%인 반면, 선진국들은 30%정도다. 품질인증부품, OES, ODM 부품 등 다양한 부품이 경쟁하며 시장의 가격 체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한국처럼 하나의 제조사가 완성차 판매부터, 정비, 부품판매까지 시장을 통제하는 사례는 해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