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활동 우선・생태계 보호 규제 느슨 …미국 당국의 규제 시급
[녹색경제신문 =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 보고서에서 1981년부터 2024년까지 약 40여 년에 동안 미국에서 약 1,870만 마리의 박쥐가 회전하는 풍력발전 터빈에 부딛혀 죽었다는 보고가 나와 환경계와 생태계 전문가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미국 지질조사국(U.S. Geological Survey, USGS)의 지휘 아래 실시된 풍력발전 환경영향 평가 조사 결과를 종합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에 발표한 최신 논문에 따르면, 풍력발전기로 인한 야생동물 폐사 건수는 2021년 이후 150만을 넘어섰고 최근까지 급증하는 추세다. 이 가운데 가장 피해를 입고 있는 피해동물은 박쥐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내륙 육상 풍력발전소에서 죽은 박쥐는 종별로 회색 늙은이박쥐(Hoary Bat, 북미에서 흔히 발견되는 가장 큰 박쥐종) 670만 마리, 동부붉은박쥐(East Red Bat, 북미 북동부에 널리 서식하는 애기박쥐류) 580만 마리, 은색털박쥐(Silver-haired Bat) 340만 마리, 그리고 큰갈색박쥐(Big Brown Bat, 북중미에 서식하는 애기박쥐류) 150만 마리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USGS 과학자들이 1996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40여 년에 걸쳐 미국 내 육상 풍력발전소 277곳에서 보고한 발전소 건설 사후 모니터링 자료499편을 종합 검토해 산출한 모형 추정치다. 박쥐 시체를 일일히 확인한 후 집계한 실제 수치는 아니다.
풍력발전기에 희생된 박쥐 대다수는 나무에 매달려 서식하며 계절에 따라 옯겨다니며 사는 이동성 비행 동물종으로, 게절이 바뀔 때 하늘을 날아 이동하다 풍력발전 시설과 마추쳐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 하구 지역과 아팔래치아 산맥 능선 지역에 설치된 대형 로터 블레이드 풍력발전기가 박쥐들의 생명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철마다 하늘길을 경유해 이동하는 박쥐 떼가 먹이 사냥과 길 찾기를 위한 비행 통로로 강과 하천 같은 내륙 물길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로터 블레이드가 길수록 날개가 주변 대기를 휩쓸고 지나가는 대기의 범위가 넓어져 더 많은 박쥐가 목숨을 잃는다.
풍력발전기가 박쥐떼죽음을 부른다는 우려는 이미 20여 년 전인 2003년 미국에서 제기됐다. 당시 생물학자들은 웨스트버지니아 풍력발전단지에서 박쥐 수천 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을 발견하고 풍력발전이 야생 생태계에 끼치는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풍력발전 기술이 막 도입된 초기 단계라 유의미한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문제는 오랫동안 방치돼 왔다.
유럽에서 실시된 사례 통제 연구에 따르면 풍력발전기로 인한 박쥐 떼죽음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다.
유럽 풍력발전단지 141곳의 운영 자료를 보면, 박쥐 비행이 최고조를 이르는 7월~9월 여름철의 새벽, 정오, 해 질 녁 시간대 터빈 가동을 일시 중단한 결과 박쥐 폐사율이 80% 이상 줄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미국 야생생물 보호청(U.S. Fish and Wildlife Service)도 자체 분석에서 풍력발전기 회전 속도를 조절하면 야생동물 폐사를 평균 62%가량 줄일 수 있다는 보고를 발표한 바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가 2010년부터 도입한 조치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건설 전 단계부터 박쥐떼의 이동 경로와 강 주변 서식지를 피해 발전소 부지를 선정한다든가, 신규 설치하거나 수리한 노후 풍력발전기의 지상 간격을 더 높이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환경 규제 당국이 풍력발전소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야생동물 보호 규정 준수를 아직 적극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 야생생물 보호청이 박쥐를 멸종위기 보호종으로 공식 지정하기 전까지는 풍력발전 사업자들은 의무적으로 발전소 가동 스케줄 변경 또는 중단할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풍력발전으로 인한 야생동물 집단폐사 현상에 대한 미국 지질청의 연구와 분석에 허점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보고서는 터빈 날개로 인한 박쥐 사망 수치를 방대하게 제시했지만, 박쥐 개체 수 감소 추세를 확인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박쥐 개체 수 통계 데이터는 내놓지 않았다. 보다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모니터링과 및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대기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절박한 국제적 목표 달성 압력을 받고 있은 가운데, 핵심 신재생에너지원인 풍력발전을 포기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미국의 환경 당국이 박쥐 생명 보호를 위한 기준과 의무 규제책을 마련하지 않은채 풍력발전업계 민간 기업들의 자발적 조치에만 맡겨둔다면, 연평균 150만 마리 박쥐 떼죽음 사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전역의 육상 풍력발전단지에서 박쥐 떼죽음이 급증하고 있어 당국의 규제가 절실하다. 박쥐는 해충을 잡아먹고 식물 간 교배(受粉)를 돕는 등 생태계 균형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류와 자연에 이로운 동물이다.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gogree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