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중 연 50만대 캐파 확보…북미 톱티어 휴머노이드 기업과 공급 협의
[편집자주] 글로벌 시장이 한국을 로보틱스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주목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감속기·서보모터·제어기 등 공급망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국내 전통 제조업 강자들이 수십 년간 축적한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산업용 로봇과 휴머노이드 부품 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있다. 각 기업들이 로봇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어떤 전략을 펼치고 있는지 살펴본다.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자동차 부품기업 삼현이 로봇사업으로의 피벗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30년까지 로봇 사업 매출을 기존 모빌리티 사업 이상으로 끌어올려 기업의 체급을 세배 이상 키운다는 계획이다. 삼현은 국내 기업 최초로 휴머노이드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 풀라인업을 선보이며 글로벌 휴머노이드 기업들과 협업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8일 삼현은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체 휴머노이드 로봇 액추에이터 브랜드 '액슬론(AXLON)'을 공개했다. 액슬론은 액추에이터의 3대 구성요소인 모터·제어기·감속기를 모듈화한 제품으로, 삼현은 각 구성요소도 각각 브랜드화했다. 모터는 라이브모션(LIVE MOTION), 제어기는 드라이본(DRIVON), 감속기는 트리온(TRION)이라는 브랜드명을 붙였다.
삼현은 휴머노이드 제조사에는 통합 액추에이터를, 액추에이터를 개발·생산하는 기업에는 모터·제어기·감속기 등 개별 부품을 판매하는 '투트랙' 전략을 통해 매출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액추에이터도 내부 회전을 하는 I-시리즈, 외부 회전을 하는 O-시리즈, 직선형 동작을 수행하는 L-시리즈 총 세 가지로 구분되며 각각의 시리즈의 세부 종류를 합치면 가짓수가 약 12종에 이른다.
휴머노이드는 신체부위에 따라 각기 다른 액추에이터가 들어가는데, 삼현 제품으로 모든 파트를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다품종 액추에이터에 이어 각 구성요소까지 브랜드화에 나선 국내 기업은 삼현이 최초다.
자동차 부품기업 DNA···"로봇 시장에서 핵심 경쟁력"
삼현이 액추에이터 사업에서 내세우는 가장 큰 경쟁력은 자동차 부품기업으로서 축적한 양산 경험이다. 로봇 액추에이터는 아직 초기 시장인 만큼 시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실제 양산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더 큰 진입장벽이라는 판단에서다.
문인석 삼현 연구기획실장은 "삼현은 제어기만 연간 약 140만개를 생산하고 있고, 지금까지 누적 생산량은 약 2000만개에 이른다"며 "100만개를 만들면 불량이 10개 이하로 나오는 수준의 품질 관리 경험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부품 기업의 기술이 로봇으로 확장될 수 있는 이유는 구동계와 제어 기술이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 부품은 150도 이상의 고온 환경을 견뎌야 하는 반면, 휴머노이드 액추에이터는 통상 100도 이하 환경에서 구동되기 때문에 품질 관리 면에서 도리어 덜 까다로운 부분도 있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여기에 자동차 산업은 리콜 제도와 엄격한 품질 인증 체계를 갖추고 있어, 대량 생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품질 이슈에 대응하는 경험이 레거시 제조 기업들의 주요한 경쟁력으로 평가된다.
문 실장은 "로봇 기업들이 자동차 회사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오래된 금형 기술과 정밀 가공 기술, 양산 품질 관리 능력 때문"이라며 "기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고 말했다.
액추에이터 기업 우후죽순···"확실한 실체 있는지 봐야"
간담회에서는 지난해부터 제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로봇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시장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중국을 제외하면 로봇 완제품 브랜드는 한정돼 있고 특히 국내 로봇 제조 생태계의 기반이 약한데 반해 부품업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들의 수가 많다는 지적이다.
삼현은 기술적 차별점으로 높은 토크 밀도와 저소음·저진동 성능을 제시했다.
이번 간담회에서 발표를 진행한 박기원 삼현 대표이사는 "액슬론에 들어가는 삼현의 모터는 경쟁사 제품 대비 발열 억제력이 58% 이상이었고, 영구자석식 모터에서 축이 부드럽게 돌지 않고 덜컥거리는 코깅토크(Cogging Torque) 현상은 75% 적었다"며 "동일한 무게에서 배터리 효율이 좋고 동작 정확도가 높다는 뜻으로, 액추에이터 자체 성능은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삼현이 이날 선보인 액추에이터의 토크 밀도는 80~90Nm/kg으로, 타사 제품 대비 약 15% 정도 높은 수준이다. 박 대표는 "고객사에서 요구하는 스펙은 100Nm/kg 이상으로, 휴머노이드 기업들이 파워 구현에서 병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에는 성능을 한 단계 끌어올린 액슬론2를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액추에이터 사업에 진출한 기업들이 투자나 제품 출시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있는지를 봐야 옥석가리기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대표는 "많은 기업들이 각자의 기술 스택으로 도전하고 있지만 삼현만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투자 계획을 밝히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곳은 드물다"며 로봇 사업에 대한 회사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현재 삼현은 로봇 사업 전용 공장을 증축 중이며, 내년 4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연간 기준으로 액추에이터 50만대, 모터 최대 100만대, 제어기 50만대, 감속기 5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도 높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액추에이터는 기존 자동차 부품보다 기술 장벽이 높고, 로봇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큰 만큼 기존 사업 대비 마진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기업들과의 가격 경쟁력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중국은 휴머노이드 완성 로봇뿐 아니라 액추에이터, 감속기, 모터 등 핵심 부품 생태계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삼현은 오는 8월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로봇포럼(WRC Forum)에 참가해 현지 기업들과의 기술·가격 경쟁력을 직접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삼현은 중국 시장의 경우 액추에이터 완제품 공급보다는 모터·제어기·감속기 등 개별 부품 공급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중국 로봇 기업들이 이미 자체 액추에이터 설계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완성 모듈보다는 핵심 구성요소 단품으로 공급망에 진입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현재 삼현이 가장 주력하는 시장은 북미다. 유럽에는 아직 유압식 액추에이터를 사용하는 로봇 기업들이 적지 않은 반면, 전기식 로보틱스 생태계는 북미 기업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구체적인 고객사와 수주 내용을 모두 밝힐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 액추에이터 사업에 뛰어든 기업 중 삼현이 가장 많은 고객사와 공급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삼현은 현재 21개 고객사와 휴머노이드 액추에이터 공급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해외 고객 2곳은 양산 프로젝트 단계에 진입했고, 국내 고객 1곳도 양산 전 단계까지 협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올해와 내년을 샘플 검증 및 초기 양산 준비 단계로 보고, 2028년부터 로봇 부품 매출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