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승패 가를 변수는 물량·수율·수익성
[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플랫폼을 둘러싼 HBM4 공급 구도가 SK하이닉스 중심에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참여하는 3사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잇달아 차세대 HBM4E 샘플 공급에 나서면서, 경쟁의 무게중심도 기술 인증에서 물량 확보와 수익성 경쟁으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18일 SK하이닉스는 주요 고객사들에 HBM4E 12단 샘플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차세대 AI용 메모리인 HBM4E는 핀당 최대 16Gbps 속도와 48GB 용량을 구현한 제품으로, 향후 고객사 인증을 거쳐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동안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구축해왔다. HBM3와 HBM3E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사 지위를 확보하며 AI 메모리 시장 주도권을 쥐었다. 하지만 HBM4 세대부터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본격적으로 공급망 진입에 나서면서 시장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차세대 제품인 HBM4E 12단 샘플을 잇달아 고객사에 공급하면서 차세대 경쟁도 한층 빨라지는 분위기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달 업계 최초로 HBM4E 샘플 공급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핀당 최대 16Gbps 데이터 처리 속도와 48GB 용량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술 경쟁력 자체는 유사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샘플 공급보다 이후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HBM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반도체 업체들의 엄격한 품질 검증과 플랫폼 인증을 거쳐야 실제 양산 물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HBM4부터는 주요 업체들이 잇달아 인증 단계에 진입하면서 과거처럼 ‘인증 여부’ 자체가 차별화 요소가 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HBM3E까지는 엔비디아 인증 자체가 가장 높은 진입장벽으로 여겨졌지만 HBM4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며 “같은 플랫폼에 들어가더라도 실제 공급 물량과 점유율은 수율, 생산능력, 고객사 요구 대응 능력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엔비디아는 베라 루빈 플랫폼을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을 모두 활용하는 복수 공급망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HBM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는 만큼 특정 업체에 의존하기보다 공급선을 다변화해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메모리 업체들 입장에서는 기회이자 부담이다. 공급 부족이 지속되는 현 시점에서는 모두가 수혜를 누릴 수 있지만, 동시에 엔비디아의 협상력 역시 이전보다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고객사들이 요구하는 물량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높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선두 업체답게 기술 리더십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HBM4E에는 어드밴스드 MR-MUF 공정을 적용해 12단 적층 기준 48GB 용량을 구현했으며 열 저항을 기존 HBM4 대비 약 17% 낮췄다. HBM3와 HBM3E 시장에서 확보한 엔비디아 주력 공급사 지위를 바탕으로 차세대 제품에서도 우위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업계 최초로 HBM4E 12단 샘플을 공급하며 차세대 제품 경쟁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을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역량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AI 반도체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론은 최근 엔비디아 베라 루빈 플랫폼용 HBM4 공급망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라 루빈이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는 만큼 마이크론도 차세대 AI 서버 시장 진입의 발판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HBM4부터는 고객사들이 특정 업체 한 곳에 의존하기보다 복수 공급망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결국 메모리 업체들은 기술 경쟁뿐 아니라 생산능력 확대와 수율 관리, 안정적인 공급 체계 구축까지 모두 증명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