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헤이븐·듀러블·에이브럼스 등 무더기 가세... 쿠팡 측 "우린 무관" 선 긋기
[녹색경제신문 = 임채영 기자] 미국 쿠팡(Coupang, Inc.) 주주들이 한국 정부의 규제가 차별적이라며 연쇄적인 국제투자분쟁(ISDS) 소송을 제기해 파장이 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쿠팡의 핵심 사업인 로켓배송과 시장 독점 지위는 한국 사법부와 정부의 전향적 판결과 비대칭 규제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확인돼, 사태는 당초 주주들이 주장한 '차별 피해'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유통업계에서는 "한국 시스템의 수혜를 입어 '유통 공룡'이 된 기업이, 정당한 제재를 두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 그린옥스·알티미터 이어 폭스헤이븐·듀러블·에이브럼스까지... 조직된 '소송 파도'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1일(한국시간) 미국 쿠팡의 주주인 ▲폭스헤이븐(Foxhaven Capital GP, LLC) ▲듀러블(Durable Capital Associates LLC) ▲에이브럼스(Abrams Capital, LLC) 및 각 관계사들은 한국 정부에 한-미 FTA에 근거한 ISDS 중재의향서를 추가로 제출했다. 지난 1월 22일 주요 주주인 그린옥스(Greenoaks)와 알티미터(Altimeter)가 1차로 의향서를 낸 지 불과 20여 일 만에 조직적인 소송 파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중재의향서에서 한국 정부가 지난해 말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당시,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이례적인 징벌적 행정처분과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카카오페이나 SK텔레콤 등 과거 국내 기업들의 데이터 유출 사고 때와 비교해 유독 강력한 조치를 취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이는 한-미 FTA가 정한 공정·공평 대우, 내국민 대우, 최혜국 대우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철저히 선을 긋고 있다. 쿠팡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국 투자사의 ISDS 중재의향서 제출은 당사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며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수조 원대 투자를 집행한 주요 주주들이 본사와 교감 없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 "로켓배송 불법 아냐"... 韓 법원, 토종 택배사 대신 쿠팡 손들어줬다
주주들이 주장하는 '내국민 대우 위반(차별)'과 달리, 쿠팡은 한국 사법부의 결정적인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문(2017나2050851)에 따르면, 지난 2018년 5월 한국 법원은 쿠팡 로켓배송의 존폐가 걸린 재판에서 쿠팡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CJ대한통운 등 국내 물류기업들은 "쿠팡이 허가받지 않은 자가용 화물차로 불법 유상 운송을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쿠팡의 배송은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한 운송'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한 운송'"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기존 물류법의 엄격한 규제 대신 쿠팡의 혁신을 인정한 기념비적 판결로, 오늘날 로켓배송의 법적 토대가 됐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당시 법원이 보수적으로 판단했다면 지금의 쿠팡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 사법부가 토종 기업들의 기득권 대신 미국 기업 쿠팡을 보호해 준 셈인데, 이제 와서 차별을 주장하는 건 논리적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 "특혜 아닌 혁신" 억울함 호소하지만... 통계는 '기울어진 운동장'
쿠팡 내부에서는 이러한 '특혜 성장론'에 대해 억울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쿠팡의 성장은 특혜가 아니라,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수조 원대의 과감한 투자와 혁신의 결과"라며 "단순히 규제 반사이익으로만 폄하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통계는 '규제 편파성'의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쿠팡의 연 매출은 41조 3000억 원을 기록, 규제에 묶인 국내 대형마트 3사의 전체 소매 판매액(37조 1000억 원)을 사상 처음으로 추월했다.
정부와 정치권조차 뒤늦게 이러한 특혜를 인정하고 있다. 지난 4일 당·정·청 실무 협의회에서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입법 추진이 논의됐으며, 당시 회의에서는 "현행법이 쿠팡 등 플랫폼 대기업에게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줬다"는 자성 섞인 분석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1.6조 보상안, 소송용이었나 묻자... 쿠팡 "잘 모르겠다"
업계에서는 지난 연말 쿠팡이 발표한 1조 6850억 원 규모의 보상안이 이번 ISDS의 핵심 방어 논리로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국제 중재에서 기업의 자발적 피해 구제 노력은 정부 제재의 과도함을 공격할 강력한 무기"라며 "당시 쿠팡의 보상안은 실질적 구제보다 향후 분쟁에서 '할 만큼 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고도의 계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에 '해당 보상안이 중재의향서에 포함됐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잘 모르겠다. 주주들의 일이라 무관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 정부, 법무부 차관 단장으로 하는 '범정부 대응단' 가동
정부는 이번 추가 중재의향서 접수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체계적 대응을 예고했다. 법무부는 알림을 통해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대응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국제투자분쟁의 예방 및 대응에 관한 규정(대통령훈령 제468호)'에 따르면, 대응단은 법무부 차관을 단장으로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부처의 고위공무원단이 참여하는 범정부 상설 기구다.
특히 정부는 지난 2025년 11월 론스타와의 분쟁에서 13년 만에 완승을 거둔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 쿠팡 주주들의 파상공세에도 빈틈없는 법리 대응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임채영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