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칠러 원천기술로 승부... 액체냉각 시대의 '열 해결사' 부각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B2B HVAC(냉난방공조) 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분류되는 AI 데이터센터 영역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어떤 경쟁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질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해당 시장은 버티브(Vertiv), 슈나이더일렉트릭(Shcneider electric), 존슨 컨트롤스(Johnson Controls)와 같은 정통강자들이 버티고 있어 국내 기업들은 후발주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양대 전자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B2B 부문 핵심 성장축으로 HVAC(냉난방공조)를 점찍고 라이징 섹터인 AI 데이터센터에서의 수위를 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다만 AI 데이터센터 영역에서 이미 입지를 굳히고 있는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전략은 다소 결이 다르다.
삼성전자는 독일 플랙트 그룹 인수를 통한 초대형 공기조화기(AHU) 기술 및 반도체 밸류체인이 강점으로 꼽히고, LG전자는 데이터센터 필수 설비인 칠러(Chiller) 원천 기술이 최대 경쟁력으로 지목된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데이터센터 전체 공조부터 칩 직접 냉각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는 버티브, 슈나이더 일렉트릭, 존슨 컨트롤스가 가장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데이터센터 시장에 진출해 전력·냉각·운영 관리 전반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축적해 왔으며, 현재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공조 시장에서 ‘공룡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업계에서는 이들 3사의 합산 점유율이 30%를 상회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23년, LG전자는 2018년 경에 해당 시장에 진출하면서 뒤늦게 포트폴리오를 쌓고 있는 후발주자다. 이 외에도 캐리어(Carrier), 다이킨(Daikin), 트레인 테크놀로지스(Trane Technologies)와 같은 메가톤급 글로벌 기업들도 투자금을 쏟아부으며 매서운 기세로 해당 시장에 참전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내 플레이어들의 AI 데이터센터향 HVAC 사업이 성과 대비 고평가돼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삼성과 LG모두 각 사의 뚜렷한 강점으로 점유율 싸움에서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플랙트 인수로 확보한 ‘AHU 정통성’… 공기식 냉각 경쟁력 부각
우선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독일 플랙트 그룹을 인수하며 내재화한 초대형 공기조화기(AHU) 기술이 핵심 강점이다. AHU는 서버실 전체의 온·습도와 공기 흐름을 총괄하는 역할로, 데이터센터 내의 에너지 효율과 가동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분류된다.
서버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공기 흐름 제어가 어려워지고, 미세한 온도 편차가 장비 신뢰성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고객사들이 AHU 성능을 까다롭게 검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랙트는 유럽을 중심으로 대형 데이터센터, 공항, 산업시설 등에 AHU를 공급해 온 정통 강자로, AHU를 핵심 사업으로 삼아온 몇 안 되는 업체 중 하나다.
버티브와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원래 무정전전원장치(UPS)나 산업 자동화 서비스로 출발해 후에 AHU 기술을 흡수한 케이스다. AHU 단일 품목만 놓고 보면 플랙트가 기술과 정통성 측면에서 한 단계 위에 있다는 것이 업계 공통된 시각이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반도체 밸류체인 역시 또 다른 강점으로 지목된다. 삼성전자는 AI 서버의 성능을 좌우하는 HBM를 양산하는 핵심 공급사로, AI 인프라 경쟁 구도에서 이른바 ‘슈퍼 을’의 지위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HBM과 데이터센터 공조 사업 간의 직접적인 연계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HBM 공급망을 둘러싼 초기 설계·로드맵 논의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주요 발주처와 먼저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더해 차세대 칩 냉각기술로 분류되는 액침냉각에서도 반도체 역량을 갖춘 삼성전자가 R&D적으로 유리한 측면에 놓여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액침냉각은 차가운 절연액에 서버를 통째로 담가 식히는 방식으로, 칩이 이를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현재 삼성SDS를 주축으로 액침냉각 기술을 개념검증(PoC)하는 단계에 있으며, 이에 적합한 패키징 기술을 DS 사업본부와 연계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의 종착지” 칠러… AI 데이터센터 냉각의 중심축
LG전자의 강점은 칠러다. 대형 시설일수록 최종적으로 열을 회수·배출하는 설비가 필요한데, 칠러는 이 역할을 수행하는 장비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포함해 대형 시설 대부분은 칠러 기반 수랭 시스템을 필수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LG전자의 강점은 분명하다. LG전자는 칠러의 핵심 부품인 컴프레서(압축기)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LG전자는 1960년대 냉동·공조 사업에 진출한 이후 압축기 기술을 축적해 왔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대형 상업용·산업용 칠러를 본격적으로 확대했다. 특히 인버터 기반 고효율 컴프레서, 대용량 터보 칠러 분야에서 자체 설계·제조 역량을 갖춘 몇 안 되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꼽힌다.
공랭·수랭 칠러는 물론, 프리쿨링·고효율 대용량 칠러까지 폭넓은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 데이터센터 규모와 설계 방식에 따라 맞춤형 제안이 가능하다는 점 또한 강점이다.
특히 LG전자는 다른 레거시 기업들과 달리 BECON(자동 제어 에너지 관리 시스템) 생태계를 통해 칠러를 IT 인프라의 한 축으로서 관리한다는 점이 강점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LG전자는 데이터센터 냉각 경쟁에서 가장 전통적인 무기인 칠러를 가장 현대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라는 평이 나온다.
LG전자의 칠러 경쟁력은 칩 직접냉각(D2C) 영역에서도 이어진다. 현재 데이터센터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채택되는 액체냉각 방식은 콜드플레이트+CDU(Coolant Distribution Unit) 구조다.
LG전자 관계자는 “현재 데이터센터 HVAC에서 칩 직접 냉각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데, D2C 방식이든 액침냉각 방식이든, 결국 칩을 식힌 물은 다시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며 “이 열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다시 칠링해 칩으로 되돌려 보내느냐가 핵심인데, 이 부분에서 칠러 성능을 확보한 LG가 유리한 포인트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각사가 각기 다른 기술 축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 HVAC 시장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특정 기업이 데이터센터 구축 전반을 단독으로 책임지는 구조가 정착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발주처가 단일 해법보다는 검증된 기술을 조합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는 워낙 크기 때문에 한 기업이 A부터 Z까지 모든 걸 할 수는 없어서 각 회사들이 가진 강점을 하이퍼스케일러 등 고객사가 선별적으로 조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이 당분간은 일반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어떤 사업이던 한 기업의 기술 솔루션을 통째로 가져오는 게 기술 호환 등 안정성 면에서 유리하고 가격 경쟁력도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계속 인수합병을 진행하면서 풀 포트폴리오를 갖추기 위해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