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서 ‘AI 주권·한미 직통 케이블’ 제시...통신 인프라 재정의 시사
[녹색경제신문=박한솔 기자] KT 차기 대표이사로 내정된 박윤영 사장이 꺼낸 화두는 'Back to the basic(기본)'이다. 보안 유출 사고의 여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통신망 안정과 보안성 강화에 공력을 투입하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더해 소버린 AI와 국가간 인프라 구축의 청사진도 제시했다.
26일 <녹색경제신문>이 입수한 박 사장의 이사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 면접 발표 자료 등에 따르면 박 사장은 '통신 주권을 기반으로 AI 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KT'라는 슬로건으로 심층 면접에 임해 추천위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박 사장은 해당 발표에 ▲디지털·네트워크 보안 강화 ▲AI 산업 혁신 선도 ▲국가 안전·안보 기반 강화 ▲사업형 지주회사 전환 등의 공약을 담았다. 사업상 방점이 찍힌 부분은 '보안 강화'다.
KT 내부 사정에 밝은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KT 차기 대표 인선은 정치권 변수와 보안 사고 여파가 겹친 상황에서 진행됐다. 이사회는 외부 인사 기용에 따른 불확실성보다 조직 수습과 경영 공백 최소화가 더 시급하다고 판단, 내부 출신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박 사장은 ‘안정형 내부 인사’로 분류돼 왔다.
KT, 단순 통신사 아닌 AI 주권 인프라 기업으로
박 사장은 지난 16일 진행된 대표이사 후보 심층 면접에서 단기 성과나 외형 확대보다 통신사 본연의 역할을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을 강조했다. 최근 해킹 사태 이후 흔들린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이후 전략 역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번 침해사고로 확인된 피해 규모는 적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은 지난 11월 6일 발표한 「KT 침해사고 민관합동조사단 중간조사 결과」에서, 이번 해킹 사고로 KT 가입자 5561명의 가입자 식별 정보(IMSI) 유출 가능성이 확인됐고, 368명이 약 2억4319만 원의 소액결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또한 KT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민희) 소속 박충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킹 공격으로 7명의 이용자가 단일 거래 기준 99만6000원의 무단 소액결제 피해를 입은 사례도 확인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 사장은 보안을 단기 대응이 아닌 구조적 과제로 보고 접근했다.
박 사장의 면접 발표 자료에 따르면, 그는 네트워크 전문성과 ‘제로 트러스트(Zero-Trust)’ 원칙에 기반한 디지털·네트워크 보안 체계를 재정립하고, 통신망과 IT 인프라를 통합 관리하는 방식으로 보안 거버넌스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사고를 사전에 감지·판단·대응·복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설명도 포함됐다.
보안은 박 사장이 제시한 구상의 출발점에 가깝다. 보안 강화의 주춧돌 위에서 KT를 소버린 AI의 기수로 키우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KT를 단순 통신사가 아닌 ‘AI 주권 인프라 기업’으로 재정의하며, 통신·데이터·컴퓨팅 자원을 결합한 한국형 풀스택(Full Stack) AI 모델 구축 방향도 함께 제시했다. 국내 데이터 주권을 기반으로 산업 전반에서 활용 가능한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글로벌 기술 협력까지 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국가 통신 인프라 차원의 구상도 포함됐다. 박 사장은 해외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다중 경로 해저케이블과 저궤도 위성망을 활용한 통신망 생존성을 강화하고, 한미 간 직통 해저케이블 구축을 통해 동북아 통신 허브로 도약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박 사장은 심층 면접에서 ‘보안은 사고가 발생한 뒤에 수습하는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막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며 네트워크와 IT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고 AI로 사고를 사전에 감지·대응하는 방식으로 보안 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고 전했다.
30년 KT맨’ 박윤영...기술·B2B 거친 내부 승진 코스
박윤영 사장은 1992년 한국통신(현 KT)에 네트워크 연구개발 직군으로 입사한 뒤 약 30년간 통신 기술과 사업 조직을 두루 거친 내부 인사로 꼽힌다. 통신망 기술 연구를 출발점으로 미래사업 조직과 기업(B2B) 사업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고, 융합기술원 미래사업개발그룹장과 기업사업컨설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기업(B2B) 사업을 총괄하는 기업사업부문장을 맡아 KT의 기업·공공 부문 매출 확대를 이끌었으며, 2020년에는 기업사업부문과 글로벌사업부문을 통합한 기업부문장으로 승진해 사장직에 올랐다. 통신망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업·공공 고객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전환(DX)과 네트워크 기반 서비스 확대를 주도해 왔다.
KT 이사회는 박 사장에 대해 “KT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기술 기반의 경영 역량을 갖춘 인물”이라며 “조직 안정과 함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이끌 적임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 같은 평가의 배경에는 최근 KT의 보안 투자 기조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T는 지난 7월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고객 안전·안심 브리핑」을 통해 향후 5년간 정보보호 분야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박 사장이 대표 선임 과정에서 통신망 안정과 보안 정상화와 함께 사업 구조 전반에 대한 재정비 필요성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차기 경영 체제에서 KT의 지배구조와 사업 운영 방식 변화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특히 박 사장이 언급한 ‘사업형 지주사 전환’ 구상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가 박윤영 호의 성패를 가를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사장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결을 거쳐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박한솔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