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산업 정책 '전기'에 지나치게 의존
전력 수급, 배터리 생산 모두 문제
수소기술, 탄소중립연료 등 대안 기술 개발 필요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국내 친환경 정책이 지나치게 전기 및 배터리 위주로 치우쳐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1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 (KAIDA) 출범 30주년을 맞아 서울 여의도 FKI 타워에서 자동차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서 발표를 맡은 배충식 카이스트 연소기술연구센터 소장은 "국내 탄소중립 목표가 급진적이며 이상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는 NDC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5년까지 무공해차 보급을 최대 980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무공해차는 탄소배출이 '0'인 차로, 전기차와 수소차를 가리킨다. 하지만 수소차는 현실적으로 수소 보급 문제와 차량 가격 및 소비자 인식 등의 문제가 있어, 전기차 보급 확대를 정부가 정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이같은 목표를 발표하자 국내 자동차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려면 10년 내로 내연기관차는 완전히 판매가 금지돼야 하는 수준인데, 이는 국내 산업에 치명타라는 것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목표를 조정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KAIDA 정책 세미나에서 배 교수는 "해당 목표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은 둘째치고, 애초에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운송•수송 분야 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전기와 배터리' 기반의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많은 전력을 감당할 준비가 안돼있다는 것이다.
작년 기준으로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10%를 겨우 넘는 수준으로, OECD 평균인 33%에 비해 매우 낮다. 이에 더해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그간 우리 산업의 에너지 주축이 됐던 원자력을 축소시키는 기조로 가고 있어, 전력 수급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다.
배터리 생산도 문제다.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리튬, 니켈, 희토류, 구리 등의 자원이 글로벌 수요를 모두 감당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 또한 중요 자원 생산 케파가 중국에 치우쳐져 있어, 무역 분쟁이 일어날 경우 수급에 큰 차질이 일어날 수 있다. 배 교수는 "요소수 사태를 전국민이 경험하지 않았나. 배터리에서 똑같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친환경 1등 유럽도 전기차 보급 '멈칫'
국제사회에서 친환경 전환의 선두주자인 유럽도 모빌리티 분야에서 전기차 전환에 한계를 느끼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21일 KAIDA 정책 세미나에서 강연한 피에르 밀레(Pierre Millette) ACEA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유럽 역시 여러 문제로 전기차 전환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밀레 CTO는 유럽연합이 수송 부문에서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이행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위해선 2025년 현재 전기차 보급률이 40% 선에 와 있어야 했지만, 실제 전기차 보급률은10% 중반 대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올해 말 기준 유럽 내 전기차 점유율은 약 16%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밀레 CTO는 가격과 충전 인프라의 부족이 전기차 보급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가 애초에 자동차 회사들이 약속한 것 만큼 빠르게 저렴해지지 않았고 충전 인프라도 부족하다. 한국은 아파트에 충전 인프라를 밀집해 넣을 수 있지만 유럽은 그럴 수 없는 구조"라며 "보조금을 받기 위해 PHEV를 사고 그냥 가솔린만 주유해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상용차의 경우 가격이 2배 가까이 비싼데다가 메가와트충전기가 보급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따.
배 교수와 마찬가지로 밀레 CTO 역시 산업이 전기 위주로 돌아갈 경우 전력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스웨덴은 수력, 프랑스는 원자력을 주로 쓰고 있다. 이 둘은 탄소배출이 많지가 않지만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화력발전에 많이 의존한다. 전기차에 쓸 전력을 화력으로 생산하는 건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말했다.
▲ 전기로 가지 말자는 것 아냐... 병행할 수 있는 대안 있어야
그렇다고 전기 에너지를 배제하자는 논의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전기에만 의존하는 친환경 정책을 문제로 짚고 있다. 전기와 함께 병행할 수 있는 다른 친환경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함께 병행할 수 있는 주요 기술로 △액체기반 탄소 중립연료(HVO, SAF, e-Fuel 등) △탄소포집기술(CCUS) △수소 △바이오연료 등을 꼽았다. 이 모든 기술을 골고루 발전시키긴 어려워도, 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 기술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는 취지다.
특히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수소연료전지차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이를 더 저렴하게 만들기 위한 R&D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따.
배 교수는 "다양한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있는데, 이걸 골고루 가져가지 않고 하나에 매몰되는 것은 자승자박"이라며 "에너지 정책에서는 정치적 견해를 배제하고 냉철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