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입법 시계 앞당겨져…감독 주체·준비금 규정 따라 국내 판도 갈려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미 연방 의회가 이달 14일(현지시간)부터 ‘크립토 위크’를 개최한다. 하원은 일주일간 ▲디지털자산 시장 구조를 규정하는 ‘클래리티 법안’ ▲현행 증권‧상품법 경계를 재정의하는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화법' ▲현물 스테이블코인 요건을 담은 ‘지니어스 법안’ ▲연방준비제도(EU)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을 사실상 봉쇄하는 ‘CBDC 감시국가 방지법’을 순차 표결할 예정이다. 일정에 맞춰 하원 규칙위원회가 14일 법안 처리 절차를 논의하고, 15~16일 본회의 표결이 진행된다. 상원 농업위원회 역시 15일 시장구조 법안 청문회를 열어 상·하원 병행 심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워싱턴 정가가 ‘크립토 위크’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법안 세트 처리를 예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핵심은 스테이블코인 규율이다. 지니어스 법안 달러·국채 100% 준비·매일 회계공시·연방감독기관 등록을 의무화해, 사실상 ‘은행·신탁회사 라이선스’를 보유한 기관에만 발행 자격을 부여한다. 업계는 “의회가 스테이블코인을 전면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분기점”이라고 평가한다.
국내 시장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은 지난달 여당이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칭)’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제도화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법안은 ▲준비금 100%·고유재산 분리 보관 ▲FSC(금융위원회) 사전 승인 ▲발행 규모·준비금 실시간 공시 ▲이용자 자산 파산격리 등 미국 안과 유사한 원칙을 담았다. 다만 감독 주체를 놓고 금융위와 한국은행이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초안은 금융위에 1차 승인권을 부여했으나, 한은은 “결제·통화정책 안정성을 위해 공동 감독권이 필요하다”며 반발했다.
국내 은행권은 법제화 속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은 올해 들어 ‘KRW’ ‘WON’ 키워드를 앞세운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200건 넘게 선점하며 발행 준비에 나섰다. 특히 우리·국민·신한·하나·카카오뱅크·토스뱅크 등이 자체 발행 시나리오와 블록체인 파트너를 물색 중이다. GENIUS Act가 통과될 경우,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준하는 엄격한 요건이 글로벌 표준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커 국내 은행들도 자기자본·준비금 관리, 회계 투명성 요건을 선제적으로 맞춰야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미국 의회가 스테이블코인 회계·공시 기준을 먼저 확정하면 한국 역시 국제 정합성을 고려해 유사 규정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본다. 이에 감독 주체를 둘러싼 금융위‑한은 간 협의도 미국 모델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금융위 승인→한은 결제망 적격성 심사→예치기관 검사라는 ‘2중 승인’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투자자 보호 장치도 강화될 전망이다. 한국 법안은 준비금 자산을 은행 예치 또는 국공채 편입으로 제한하고, 발행사가 파산할 경우 이용자 예치금을 우선 변제하는 ‘파산원격성(bankruptcy remoteness)’ 조항을 포함했다. 이는 지니어스 법안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업계는 “루나USD 사태 재발을 막는 최소 안전장치”라며 공감대를 보이지만, 스타트업과 핀테크 기업들은 “1:1 준비금‧공시 의무는 사실상 대형 은행·증권사에만 유리하다”고 우려한다.
산업계의 시선은 국경 간 결제·환전 시장에도 쏠린다. 미국 법안이 통과되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글로벌 결제 인프라 지위가 공고해진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국제 통용성을 확보하기 전까지 국내 결제·증권 토큰 결제 등 제한적 영역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금융권은 “원화 코인은 국내 로컬 결제·온체인 증권결제 백본으로 특화하고, 해외 결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브리지(교차 발행) 모델을 고려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한편 미국 하원이 동시에 처리하는 ‘CBDC 감시국가 방지법’는 연준의 리테일 CBDC 발행을 원천 차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유럽과 달리 미국은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하게 된다. 이는 한국은행의 CBDC 실험에도 미묘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잠재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외 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정부와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코인데스크코리아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원화 스테이블코인 추정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까이 늘어 6조원에 육박했다. 규제 진공 상태가 지속될 경우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을 동시에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결국 이번 ‘크립토 위크’는 한국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도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미국이 글로벌 표준을 먼저 확정한다면 한국 입법은 그 틀을 따르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는 “국내 법안 처리 시점을 3분기 중으로 앞당겨 글로벌 규제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의 신속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박금재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