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로 '의약품 쓰임새' 설계...정부, 투자 유치·LO도 지원 필요
[녹색경제신문 = 민보영 기자] "좋은 기술을 가진 바이오기업은 많습니다. 그러나 기술이전으로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현실에서 기술 가치를 사업 가치로 전환해 설명하는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바이오기업 가치는 사업화 역량 증대에 따라 갈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내 바이오기업의 글로벌 기술 계약 확대를 위해 시장성, 타깃 환자군, 경쟁약물 대비 차별성 등을 사적 언어로 전환하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정희 디지털사이언스 대표는 31일 <녹색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수한 기술을 확보하고도 글로벌 기술수출이나 투자 유치로 연결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기술 자체보다 사업화 역량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경북대 응용화학과, 충북대 의대 의생명융합학과에서 각각 학·석사를 마친 이 대표는 연세대 컴퓨터과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WP그룹에서 의약·분석장비·통신·컴퓨터 분야 영업, 사업개발 등을 두루 경험한 전문가다. 현재 디지털사이언스 대표 컨설턴트로 기술사업화와 시장성 분석, 글로벌 라이선싱 등을 자문하고 있다.
임상개발·시장성 등 사업 언어로 전환 훈련해야
올해 글로벌 대형 제약사의 파이프라인 확보 경쟁이 K-바이오기업과의 계약 체결로 이어지지 않은 데 대해 이 대표는 중국 바이오텍의 약진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바이오 기업의 사업화 역량을 꼽았다. 임상 개발과 시장성, 타깃 환자군, 경쟁약물 대비 차별성 등을 사업적 언어로 전환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술수출 건수는 지난해 23건 내외에서 8월 현재 10건 내외로 2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말 4865.56포인트를 기록했던 KRX헬스케어지도 7월 말 3374.97포인트로 연초 대비 약 30.6% 가량 감소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은 약효 데이터가 좋고 안전성이 높다는 취지로 기술을 설명하는 데 익숙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업 관점에서 무엇이 좋아지는지를 설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며 "약효가 우수하다는 데이터로 예를 들면 이 데이터가 임상기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지, 개발 성공 가능성을 얼마나 높이는지,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등을 연결해 설명해야 기술의 사업적 가치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을 도입하는 대형 제약사 역시 기술의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어 리스크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여부를 계약 시 핵심 요건으로 꼽는다고 했다. 이 대표는 "글로벌 빅파마 역시 아무리 검토해도 이 기술이 실제로 성공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며 "이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는 요소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술수출 필요 조건은 'TPP'
'TPP(Target Product Profile·목표제품 프로파일)'는 기술 상업화 과정에서 선행돼야 하는 조건이다. 개발 의약품이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상업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개발 단계 상의 목표를 말한다. 효과 좋은 항암제 개발에 멈추지 않고 기존 치료제 대비 어떤 이점을 환자에게 제공할지 개발 초기부터 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췌장암 치료제를 개발한다고 하면서 '고형암에 다 된다'고 접근하면 안 된다"며 "우선 췌장암 환자 가운데 어떤 환자군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기존 치료제와 어떤 경쟁을 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며 "기존 치료제가 존재하는 경우 환자의 병기나 유전자 변이, 동반질환 등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만큼 미충족 수요가 있는 환자군을 찾아 그곳을 초기 타깃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TPP 수립에 실패하면 임상 후반까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고도 상업화가 중단될 수 있다. 반면 개발 단계별 목표와 성과 기준을 사전에 설정하면 각 단계에서 객관적으로 다음 단계 진행 여부를 미리 판단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은 이 같은 '스테이지 게이트(Stage-Gate)' 방식이 진행된 사례로 꼽힌다.
개발 당시 전임상에서 빠른 면역반응을 확인한 뒤 임상 1·2상에서 안전성과 면역원성을 검증했고, 임상 3상에서 95% 예방효과를 확인한 후 긴급사용승인(EUA)을 신청했다. 각 개발 단계에서 성과를 확인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개발을 신속하게 진행한 결과다.
TPP 수립은 초기 개발 단계부터 타깃 환자군을 좁혀 개발하는 글로벌 제약사 전략과도 맞물린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이후 임상 결과와 허가를 바탕으로 적용 환자군을 확대하는 전략을 활용하는 전략은 글로벌 제약사의 전략과도 닿아있다"며 "기존 치료제가 충분히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군을 찾아 경쟁력을 증명하는 과정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TPP 수립 인식은 국내 바이오 지원체계와도 관련이 있다. TPP가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시장성과 사업화 가능성을 구체화해 R&D와 투자·기술이전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R&D)에만 집중된 정부 지원이 R&D 이후 투자, 기술이전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대한 지원은 많지 않다.
그는 "연구비뿐만 아니라 투자 유치와 기술이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사업개발과 시장분석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초기 기술이 어느 정도 검증된 기업들이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해 사업을 중단하는 '데스 밸리(Death Valley)'를 줄이기 위해서는 프리시리즈A 단계부터 시리즈A 단계까지의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보영 기자 re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