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파라 2647억에 인수했지만 손실 지속
[녹색경제신문 = 민보영 기자] 지난달 제1회차 전환사채(CB)에 대한 첫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 청구를 받은 루닛이 2회차 CB에 대해서도 풋옵션 행사 청구를 받게 됐다. 최근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확보한 2115억원 중 절반을 조기상환 자금에 투입할 예정이지만, 조기상환청구일을 기다렸다는 듯 풋옵션 행사를 청구한 모양새여서 루닛의 향후 사업 전망에 암운이 드리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5일 공시를 종합하면 루닛은 1일 제1·2회차 CB에 대한 공시를 제출했다. 1일은 제2회차 CB에서 설정한 조기상환청구일 2026년 5월 31일의 다음날이다. 발행액 50억원의 15.9%인 8억원을 현금으로 상환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연복리 8.0% 이자에 따라 투자자가 취득하게 되는 현금은 9억2000만원이다.
같은 날 나온 제1회차 CB 풋옵션 행사 정정공시는 CB 발행 방식을 기존 공모에서 사모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회사 '루닛 인터내셔널(구 볼파라)' 인수자금 1665억원 관련 풋옵션 행사 등 기존 내용은 그대로 유지됐다. 1회차 CB 투자자의 취득일은 2026년 5월 4일로, 조기상환이 가능한 2026년 5월 3일의 다음날이다. 총 청구 금액은 발행액 9.7%인 162억원, 연복리 8.0% 이자에 따라 투자자가 받은 금액은 187억원이다. 1·2회차 투자자 모두 앞다퉈 CB의 조기상환을 청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루닛은 채무상환·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앞두고 지난 4월 20일 발행한 투자설명서에서 "전체 발행된 CB 50%에 해당하는 985억원을 조기상환 대응 자금으로 확보하고자 한다"며 "CB 만기가 도래하는 2029년 5월까지 사내에 유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4월 20일 발행가액을 2만6750원으로 확정한 루닛은 청약을 거쳐 790만6816주를 2115억원에 발행했다. 서범석 대표·백승욱 의장 등 주요 특수관계인의 유상증자 참여가 이어졌지만, 지분 5.48%를 보유했던 주요주주 삼성자산운용은 지난달 7일 루닛 주식을 기존 162만3355주에서 153만3198주(4.12%)로 줄이는 등 엑시트 신호도 내비쳤다.
볼파라 인수 결과는 '외화내빈'
냉담한 시장 평가의 중심에는 루닛이 2024년 5월 2647억원을 들여 인수한 루닛 인터내셔널의 효용성이 있다. 인수 당시 볼파라였던 루닛 인터내셔널 순자산 가치는 270억원, 영업권(프리미엄) 가치는 2376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2023년 말 연결 기준 17억원이었던 무형자산은 2024년 말 2745억원으로 폭증했다. 지난해 말 루닛 무형자산은 2787억원으로, 루닛 인터내셔널 기술력·특허·소프트웨어 등 기술 가치에 대한 평가가 포함됐다. 2787억원은 같은 기간 루닛 연결 자산총계 4350억원의 64.1%다.
무형자산 취득에 따른 감가상각비, 해외 조직 유지 비용 등 판매관리비는 당기순손실 확대의 요인이 됐다. 2024년 말 827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던 당기순손실은 지난해 말 47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인수 이전인 2023년 말 368억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올 1분기에는 지난해 손실 절반 수준인 17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루닛 연결 기준 매출이 831억원을 기록하는 등 외형 확장에도 불구하고 루닛 인터내셔널 인수가 '적자 부메랑'으로 돌아온 배경이다.
루닛 인터내셔널 인수에 따른 부담은 우발부채로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볼파라로부터 '유방암 발생 위험도 예측 기술자산'을 사들이는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면서다. 계약에는 향후 미래 성과(마일스톤)에 따라 최대 500만달러를 추가 지급하기로 하는 조건부 약정도 포함됐다. 지난해 말 기준 장부상 인식된 부채는 없지만, 향후 볼파라가 성과를 내는 순간 최대 500만달러의 현금 유출 가능성이 상존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루닛 인터내셔널이 뉴질랜드 국책은행 키위뱅크(Kiwibank)로부터 자산 취득을 위해 대여한 900만뉴질랜드달러(NZD, 한화 약 81억원)의 차입금에 지급보증을 제공하기도 했다. 루닛 인터내셔널 경영 악화로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루닛이 원금과 이자, 금융수수료 전액을 부담하는 구조다. 대규모 CB를 발행하며 수천억 단위 인수합병을 성사한 결과가 연구개발비와 무형자산, 우발부채 부담으로 돌아온 셈이다.
미미한 ROI...추정 손익도 '미달'
루닛 인터내셔널 투자 대비 성과도 줄어드는 추세다. 2025년 말 루닛 인터내셔널의 자산총계는 727억원으로, 2024년 648억원 대비 79억원 늘어났다. 같은 기간 자본 315억원이 300억원으로 감소하는 사이 부채는 333억원에서 427억원으로 증가해서다. 지난해 506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당기순손실 규모를 2024년 50억원 대비 31억원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순손실 구조다.
루닛은 2022년 상장 당시 2024년 흑자 전환을 자신하며 추정 매출, 손익은 각각 915억원, 86억원으로 제시했다. 실제 사업보고서에 찍힌 2024년 매출, 손익은 542억원, -680억원이다. 루닛 인터내셔널 인수 비용을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본업인 루닛 인사이트, 스코프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는 미국 시장에서의 극적인 외형 확장에 주목하고 있다. 루닛 인터내셔널의 현지 의료기관 유통망을 활용해 루닛 인사이트, 스코프 등의 교차 판매를 빠르게 끌어올려 매출을 극대화하면 비용도 줄어들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잔여 CB 물량에 대한 잇따른 풋옵션 청구를 막기 위해서는 주가 부양이 필수"라며 "고정비 구조를 효율화해 시장에 약속했던 흑자 전환 시점과의 괴리를 좁혀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녹색경제신문>은 1·2회차 CB 풋옵션 행사 청구에 대한 입장, 1분기 실적 등 회사 경영 사항에 대해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민보영 기자 re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