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U 내 원자력 찬반 국가들 간 갈등 예상돼
[녹색경제신문 =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유럽이 다시 친(親) 원자력 기조로 에너지 정책을 재편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를 이끄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집행위원장이 3월 10일(화요일=프랑스 파리 시간)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ancy, 이하 IAEA)에서 열린 핵에너지 서밋(Nuclear Energy Summit) 본회의 개막 연설에서 유럽이 지난 15년 가까이 추진해 온 탈원전 정책은 전략적 실수였다고 발언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포함한 독일어권 국가에서 강한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또 지금부터 약 30여 년인 과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발전된 총 전력량의 3분의 1이 원자력 에너지 섹터에서 생산됐으나 현재 그 비율은 15%로 감소했다고 지적하고, 원자력 폐지 정책으로 인해 고비용의 불안정한 공급망을 통해 수입되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에 의존해야 하는 에너지 구조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그녀가 독일인 정치가로서 이제와서 다시 지난 15년에 걸쳐 추진 완결된 독일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친 원전 정책으로 전환하는 행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 반(反) 원전 국가들 강경한 반발
유럽이 탈원전 정책 노선을 선택한 때는 지난 2011년이다.
당시 재직 중이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전 독일연방총리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우려와 강한 반감이 고조되자 독일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탈원전 정책 노선을 채택했다고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과거 메르켈 총리의 결정을 사실상 비판한 것이다. 당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메르켈 총리 행정부 내각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었다.
독일은 단계적 탈원전 정책을 꾸준히 실시한 결과, 지난 2023년 4월 마지막 원자력 발전소 3곳 — 이사르 2,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 엠즈란트 등—의 가동 중단을 끝으로 현재 원전 제로 탈 원전국이 됐다.
폰데어라이엔의 이 같은 IAEA 발언이 나오자마자 독일 정계의 주요 정치인들은 반대 성명을 일제히 내놨다. 현 독일 환경부 장관인 카르스텐 슈나이더(Carsten Schneider)는 '폰데어라이엔의 발언은 과거지향적’이라고 비판하고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는 방사성 폐기물을 배출하는 원자력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라며 신재생에너지 섹터 옹호 입장을 재확인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독일 연방 총리는 독일은 탈원전 정책이 전략적 실수였음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이제 와서 독일의 원전 폐기 정책을 되돌이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오스트리아에서는 빈 시의회 환경부 위르겐 체르노호르스키(Jürgen Czernohorszky) 의원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사례로 들며 원자력은 환경에 부정적 위험을 주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라며 EU의 친 원전 유턴 정책의 재고를 촉구했다.
♢ EU 회원국별 찬반 여론 불구, EU 집행위의 차세대 신원전 정책 의지 확고해
폰데어라이엔은 이 연설을 통해 EU가 향후 첨단 차세대 원자력 기술을 확대 포용할 의사가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EU 집행위가 환경친화적이고 저렴한 비용의 혁신적 소형 모듈러 원자로(SMRs) 핵 발전 기술을 보유한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약 2억 유로(우리 돈 약 344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EU는 27개 EU 가입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 없이 원자력 에너지 사업 직접 투자를 위한 예산 편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EU 집행위 측은 일단 유럽연합 탄소배출권 거래제(EU ETS)를 통해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밝히고, 원전 에너지 구축은 범 유럽적 에너지 사업인 만큼 차세대 SMR 기술의 안정성과 효율성이 입증되면 EU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시사했다.
유럽의 대표적 친 원전국 프랑스는 유럽의 제조업 부문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해 저(氐) 탄소 배출이 안정적 에너지 공급 확보에 원자력 에너지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가동을 위해 농축 우라늄 공급량의 거의 절반을 러시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유럽의 친 원전 정책 회귀는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체제 이행에 주력해온 유럽의 에너지 정책의 모순적 일면이기도 하다.
현재 EU 회원국들 중에서 프랑스가 주도된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과 체코공화국, 헝가리, 폴란드 등 대다수 남동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13개국이 EU의 원자력 에너지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덴마크, 포르투갈 5개 국을 대표하는 에너지 장관들은 원전 정책을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입장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흥미로운 점은 기후변화에 대한 높은 경각심과 반전 여론이 대세를 차지해오던 스위스(非 EU 회원국)의 국민들 사이에서 친원전주의적 태도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2025년 6월 EU 내 원자력 산업 무역 협회인 뉴클리어유럽(Nucleareurope)과 딜로이트 경영 자문 그룹이 공동 실시한 영향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력 에너지 부문은 EU 경제권에 연간 약 2억 5000만 유로(약 4300억 원) 규모의 경제 효과를 발생시키고 100만에 가까운 일자리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gogree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