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가격 재결정 명령 검토…제재 수위 주목
계란·과자·돼지고기까지 조사 확대, 식품업계 긴장
[녹색경제신문 = 서영광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밀가루 담합 혐의 사건을 전원회의에 올리면서 식품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국내 B2B 밀가루 시장에서 가격과 물량을 조율한 혐의를 받는 7개 제분사가 심판대에 섰다. 이들이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약 88%, 심사관이 산정한 관련 매출 규모는 5조8000억원에 달한다.
아직 위법 여부와 제재 수위는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담합 제재를 넘어선다.
무엇보다 ‘속도’가 이례적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 조사에 착수한 뒤 약 4개월 만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통상 담합 사건에 1년 이상 소요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편이다.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집중 조사에 나섰고, 심의 전 단계에서 공개 브리핑까지 진행했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했다는 설명이지만, 시장에는 보다 분명한 메시지로 읽힌다.
민생과 직결된 품목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강도 높은 집행에 나서겠다는 신호인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가격 재결정 명령’ 검토다. 이는 사업자가 스스로 가격을 다시 정하도록 요구하는 조치로, 사실상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효과를 갖는다. 담합 사건에서 이 조치가 거론되는 것은 20년 만이다. 관련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면 과징금이 최대 1조원대를 넘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실제 부과 규모는 관련 매출 인정 범위와 감경 사유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크다.
더 주목할 부분은 조사 범위의 확대다. 공정위는 밀가루와 설탕을 넘어 계란, 음료, 과자, 돼지고기 등 주요 식품 시장에 대해서도 담합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이미 현장조사가 진행된 상태다. 먹거리 전반을 ‘정밀 점검’하겠다는 기조가 분명해졌다.
이로써 기업들은 가격 정책 전반을 재점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국면했다. 원재료 가격 상승이나 환율 변동 등 외부 요인이 가격 인상의 배경이 될 수 있지만, 시장 점유율이 높은 사업자들이 유사한 시점에 비슷한 폭으로 가격을 조정할 경우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렵다. 과징금뿐 아니라 형사 절차, 평판 리스크까지 감안해야 하는 국면이다.
다만 경쟁정책의 강화가 곧바로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담합 근절은 시장 질서 회복의 기본 전제지만, 국제 곡물 가격과 물류비, 인건비 등 구조적 비용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는 상황에서 가격 흐름을 단번에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결국 이번 밀가루 사건은 단순한 담합 판단을 넘어, 경쟁정책이 물가정책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가격 재결정 명령까지 현실화할 경우 이는 과징금 제재를 넘어 ‘시장 가격 형성 과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선례가 된다.
다만 문제는 일관성이다. 특정 시점의 물가 상황에 따라 집행 강도와 기준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확산할 경우 기업들은 가격 결정 과정에서 법적 리스크뿐 아니라 정책 리스크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명확한 판단 기준과 증거에 기반한 제재가 이뤄진다면 이는 과점적 시장 구조에서 경쟁 압력을 복원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전원회의의 판단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향후 식품업계 전반의 가격 전략과 공정위 집행 기조의 방향성을 가늠할 첫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서영광 기자 market@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