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구조도·3선 방어 강화 기조 속 내부통제 실효성 시험대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우리은행이 AI 기반 내부통제·안전관리 시스템을 전 영업점에 확대 도입하면서 은행 조직 운영 방식에 적지 않은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예방과 내부통제 강화라는 명분 아래 본부의 실시간 개입 범위가 넓어질 경우, 기존 ‘지점장 책임 경영’ 체계 역시 재정의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술 도입을 넘어 통제 권한의 무게추가 어디로 이동하느냐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전국 영업점 CCTV 영상을 AI로 상시 분석하고, 고액 현금 취급, 금고 출입, 이상 행위 등 특정 이벤트 발생 시 본부 관제 인력이 즉시 확인하는 중앙 관제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전 영업점 데이터를 본부 시스템으로 집적해 이상 징후를 실시간 탐지하는 구조다. 다만 모든 영상을 사람이 상시 모니터링하는 방식이 아니라, AI가 1차 분석을 수행하고 경보 발생 시 인력이 개입하는 체계로 알려졌다.
국내 은행권은 이미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과 AI 기반 내부통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등도 AI를 활용한 이상거래 탐지 및 내부통제 고도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의 이번 조치는 이를 영업점 현장 영상 분석 영역까지 확대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도적 배경도 분명하다. 2023년 금융권 내부통제 부실 논란 이후 금융당국은 대표이사까지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추진해왔다. 금융회사는 내부통제 기준을 구체화하고 책임 소재를 문서화해야 하며, 실효성 있는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화됐다. ‘3선 방어’ 체계에 따라 영업점이 1차 통제를 맡고, 준법·리스크 부서가 2차 통제를, 감사 부서가 3차 점검을 수행하도록 내부통제를 실질화하라는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은행의 AI 기반 실시간 관제 시스템은 이러한 감독 기조에 대응해 통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기존 영업점 운영은 ‘지점장 책임 경영’ 구조가 기본이었다. 금고 관리, 고액 현금 취급, 내부 규정 준수 여부에 대한 1차 책임은 지점장이 부담해 왔다. 중앙 관제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법적 책임 구조 자체가 즉각 변경되는 것은 아니지만, 본부의 실시간 개입 가능성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현장 자율성은 일정 부분 조정될 수 있다. 내부통제 판단의 상당 부분이 데이터 기반으로 기록·관리되는 만큼, 의사결정 과정 역시 보다 표준화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조직 문화 변화의 신호로 해석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AI 기반 실시간 관제는 사고 예방 측면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다”면서도 “현장에서는 관리 강도가 높아졌다고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사고 한 건이 초래하는 재무적 손실과 평판 리스크를 고려하면, 사전 통제 강화는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평가했다.
기술적 과제도 존재한다. AI 영상 분석의 정확도, 오탐지 가능성, 통신 장애 등 시스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경보가 과도하게 발생할 경우 현장 업무 효율이 저하될 수 있고, 반대로 탐지 실패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복잡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상 징후 정의, 경보 기준, 사후 조치 프로세스 등을 명확히 설계하는 것이 관건으로 꼽힌다.
비용 측면에서도 초기 투자 부담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 영업점 영상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서버 인프라, AI 분석 시스템, 24시간 대응 인력 운영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사고 발생 시 손실액과 제재 비용, 평판 훼손에 따른 장기적 손실을 감안하면 예방 중심 투자가 비용 효율성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건은 이러한 중앙집중형 데이터 관제 모델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 여부다. 사고 예방 효과가 가시화될 경우 다른 시중은행들도 유사 체계 도입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현장 부담과 효율성 저하 문제가 부각될 경우 보완 모델이 모색될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조치는 단순한 보안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넘어 내부통제의 작동 방식을 재정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지점장의 책임 경영 체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통제 구조를 보조하는 비중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은행의 실험이 은행 조직 운영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금융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AI 관제가 강화되면 형식상 책임 구조는 유지되더라도 실질적 통제 권한은 본부로 더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사고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중앙집중 통제가 일상화되면, 지점장의 권한과 역할은 재정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제는 본부가, 책임은 현장이 지는 구조로 인식될 경우 내부 긴장도 커질 수 있다”며 “기술 도입 못지않게 권한·책임 체계의 정교한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금재 기자 financi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