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거용 오인 영업·호객행위 여전, 가계약 제도 개선 시급
[녹색경제신문 = 문홍주 기자] 지인의 친구에게서 제보를 하나 받았다. 강원도에 들어설 생활형 숙박시설(생숙) 분양 과정에서 겪은 일이다.
10월 준공을 앞두고 시행사 측은 고령자를 동원해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식권 한장 받는 일이라며 읍소하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들어간 소비자는 현장에서 50만원을 가계약금 명목으로 냈다.
그러나 찜찜한 마음에 지인을 통해 본지 기자에게 문의를 했다. 피해자는 기자에게 "50만원 가계약금을 냈다"고 말했고, 기자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너무나 고전적 사기 수법이란 걸 알아차렸다.
기자는 피해자에게 "계약한 건물이 혹시 생활형 숙박시설이냐?"고 물어보았다. 피해자는 "생활형 숙박시설이 뭐냐?"며 전혀 모른다고 했다. 분양관계자에게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분양 건물 위치와 정보를 찾아보니 생활형 숙박시설이 분명했다.
기자가 피해자에게 생숙이 어떤 것인지, 지금까지 어떤 문제가 있었으며, 왜 주의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줬다. 그제서야 "전단지에 '생숙'이라고 적혀있는걸 지금 봤다"고 했다. 놀란 피해자는 분양관계자에게 곧바로 환불을 요구했다. 그러자 신분증 사본과 통장 사본을 제출해야만 환불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심지어 신분증 사본 뒷자리를 가리고 보내자, '전부 공개해서 보내라'고 까지했다.
피해자는 분양 관계자가 '본 계약금을 내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계약사실을 알리지 말라'며 '계약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질투를 해서 못사게 한다'는 말을 했단다. 이정도면 명백한 불완전 판매이며, 고의적 사기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피해자는 이런 사기에 당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환불에 대한 의지를 스스로 반쯤 꺾어버린 상태였다.
이런 종류의 소액 사기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기자의 말이 먹혀들었던 것인지 피해자는 일단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했다. 그리고 경찰의 조언대로 은행에 가서 이체취소를 신청하던 중에 분양관계자로부터 환불요청서를 받았다. 이체내역과 영수증을 들고가니 취소해주겠다는 답변 역시 받았다고 했다.
아직도 이런 사기에 가까운 영업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50만 원이라는 액수를 가계약금으로 걸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라며 소통을 차단한 뒤 본 계약금 300만원을 받아내는 것이다. 50만 원은 소비자 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미끼다. 그러면서 “부담 없이 예약해라, 우선권을 준다”는 말로 현장에서 즉석 결정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수법도 사용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계약을 철회하려고 하면 환불 과정에서 별의별 조건을 붙인다. 신분증 사본을 요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뒷자리까지 전부 제출하라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통장 사본 역시 과도한 요구다. 계좌번호만 있으면 환불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절차적 장벽은 소비자가 환불을 포기하게 만드는 압박 도구일 뿐이다.
생숙 분양 피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애초에 숙박시설을 주거용으로 둔갑시켜 팔아온 관행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정부가 수차례 경고했지만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 금융 규제, 세제 불이익, 환금성 문제까지 겹친 구조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처럼 살 수 있다’는 말만 믿고 계약에 나서는 이들이 여전히 생겨나는 이유다. 그 사이 시행사와 분양대행사들은 소액 계약금을 무기 삼아 책임을 회피한다.
50만 원 가계약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소비자를 옭아매는 낚시줄이며, 제도 사각지대에서 반복되는 기만적 영업의 상징이다. 이제는 이런 소액 사기성 분양 행위를 단속하고, 소비자 피해를 예방할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구체적으로는 환불 절차 표준화 및 개인정보 최소 요구 의무화, 생숙 분양 광고에 ‘주거 불가’ 표시 의무화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시장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건설·부동산 시장의 음지를 바로잡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문홍주 기자 real@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