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미래는 전기차 시대'라는 굳은 믿음 하에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전기차와 배터리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그 중에서도 제조업 중심인 한국 기업들은 공장 신설과 R&D에 수십조를 쏟아부으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배팅을 했다.
전기차 개발에 투자한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LG, 삼성, SK, 포스코 등 국내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배터리 산업에 청사진을 그리며 제조 인프라 및 소재 개발에 거액을 투자한 상태다. 전기차 충전기 제조와 충전 인프라 사업에 투자한 업체까지 합하면 관련 업계의 폭은 더 커진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예상만큼 드라마틱하게 이뤄지지 않으며 기업과 투자자들은 당황을 넘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전기차가 주류가 될 것' 이라는 큰 기조의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는 추세다.
이에 그간의 취재를 바탕으로 '전기차 시대는 반드시 온다'고 확신하는 업계의 의견을 조명하고, 국내 모빌리티 산업의 과제를 짚어본다.
▲ 脫노조 꿈꾸는 기업... "자동화 생산은 전기차여야"
업계에서는 기업의 의지가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면 기업들이 노조 활동에 따른 리스크를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의 경우 수 천개의 부품이 정교하게 조립돼야 하기 때문에 자동화가 거의 불가능하고 숙련공의 노동력이 대량 투입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진과 변속기는 미세한 오차에도 내구성에 영향이 크고, 각각의 공정마다 요하는 기계 라인도 다르다.
반면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부품 수가 1/3 수준이고, 가공보다는 조립 위주의 방식이라 제조 공정 자체가 단순하다. 테슬라 기가팩토리의 경우 약 95% 자동화 수준을 달성했으며, 용접 공정은 거의 100% 자동화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테슬라는 공장 위치 선정이 자유롭고, 미국 내에서도 노조 활동이 없다. 이는 미국 주류 자동차 회사 중 유일한 사례다.
강력한 노조 활동을 항상 리스크로 관리해야하는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전환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 빅3 제조사들의 경우 그간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지속적으로 임금과 복지 수준을 높이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왔다.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차량 생산 대수 당 인건비는 한국과 일본의 20% 이상으로, 미국으로 제조시설이 집중되는 현 추세에서는 더더욱 전기차 비중 확대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포드는 최근 미국 공장에 자동차 전면부와 후면부, 배터리 모듈을 각각 생산해 한번에 조립하는 '어셈블리 트리' 형식을 도입한다는 전략을 내놨고, GM은 전기차 전용 생산공장인 팩토리 제로(Factory Zero)에 더해 오리온과 페어팩스 공장의 일부 라인을 전기차 전용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미국의 전기차 보급률이 10%에도 못미치지만 시장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같은 추세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ID 시리즈로 전기차 판매량에 호조를 보이는 폭스바겐의 경우, 이미 상당한 공정을 자동화했다. 츠비카우 공장의 경우 EV 생산으로 전환한 이후에 약 8~10% 정도의 인력을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그룹은 2030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생산 공장에서 약 3만명의 생산 근로자가 자연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품질인증 분야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생산 라인에서 전기차의 비중을 높이게 되면 세계 모빌리티의 큰 흐름은 전기차로 갈 수 밖에 없다.
자동차처럼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산업은 수요가 공급을 만들기 보다는 공급이 수요를 만든다"며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일몰시키는 등 단기적인 부침은 있지만, 기업들의 방향성이 명확한 만큼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파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전기차 전환에 출혈 심했던 美... 한국도 노사갈등 불가피
국내 완성차 업계도 전기차 라인에서 자동화 비중을 높이며 제조 효율화를 서두르고 있다.
현대차는 울산과 아산 공장 일부를 전기차 전용으로 전환하고, 로봇 용접·배터리 조립 자동화 시스템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올해 7월을 기점으로 국내 월간 신차 출고량 중 전기차 비중이 18%를 넘어서며 ‘스마트 팩토리’ 전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고용 구조 재편이 본격화되면 이를 둘러싼 긴장은 불가피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은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한 차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지난 2023년 GM·포드·스텔란티스 미국 ‘빅3'는 UAW의 대규모 파업을 맞았다.
UAW는 전기차 생산 확대가 기존 내연기관 고용을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를 앞세워 임금 40% 인상과 신규 전기차 공장까지 동일한 단체협약 적용을 요구했다. 이 협상으로만 세 기업이 떠안은 인건비 부담은 향후 4년간 1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는 법안 성격상,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노조의 협상력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국내에 전기차 판매량이 크지 않아서 미국처럼 해당 문제로 뚜렷한 노사갈등이 불거진 적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국내에서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 생산량을 위협하면 노조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급진적인 변화로 노동자들이 궁지에 몰려서도 안되겠지만, 노조가 기업의 미래 산업을 방해해 경쟁력을 잃게 만들어서도 안된다"며 "미국 제조사들은 글로벌에서 다소 뒤쳐져도 내수로 충분히 커버가 됐지만, 한국은 빨리 시장 변화를 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