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소심 재판부 'SK 주가상승 최태원 기여도' 이례적 수정…대법원 심리 '복잡'
- 이형희 "SK, 6공 지원받아 성장한 기업 아냐…회사 명예·구성원 자부심 회복할 것"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문의 치명적 오류를 수정하면서 '법조판 팻 핑거(Fat Finger)'라는 비판이 나온다.
'팻 핑거'란 직역하면 뚱뚱한 손가락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증권시장에서 숫자 입력이나 클릭의 실수로 일어나는 잘못된 주문을 가리켜 사용된다.
따라서 '세기의 이혼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대법원은 1조3808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 분할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심리는 물론 판결문 수정의 적법성까지 다루는 등 경우의 수는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17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문을 경정(수정)했다.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 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의 주식 가치를 주당 100원에서 1000원으로 변경한 것이 골자다.
그 결과 해당 주식의 가치가 15년새 4456배 커진 과정의 기여도 판단도 달라졌다.
애초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분을 각각 355배와 12.5배로 판단했는데, 오류 수정에 따라 각각 35.6배와 125배로 뒤바뀌게 됐다.
최태원 회장 측은 이날 항소심 재판부가 수정한 부분이 '치명적 오류'라는 점에서 단순히 판결문 수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기존 판례라고 주장한다.
최태원 회장 측은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판결의 실질적 내용을 새로 판단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재판부의 단순 경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재판부의 잘못된 주식 가치 계산 실수에 대해 '법조판 팻 핑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천문학적 금액이 오가는 증권시장에서는 '팻 핑거' 실수로 인해 증권사가 문을 닫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3년 한맥투자증권의 파산이 있다. 당시 한맥투자증권 직원이 옵션 가격의 변수가 되는 이자율을 '잔여일/365'로 입력해야 하는데, '잔여일/0'으로 잘못 입력해 터무니 없는 가격에 매도·매수 주문을 냈다.
한맥투자증권은 한 직원의 주문 실수로 인해 손실액이 462억원에 달했고, 결국 문을 닫았다.
삼성증권에서 2018년 발생한 '팻 핑거' 사태도 있다. 당시 삼성증권은 조합원들에게 1주당 배당금 1000원을 입금해야 하는데 한 직원의 실수로 주식 1000주가 배당됐다.
당시 삼성증권 1000주는 3800만원 상당이었다. 이로 인해 원래 지급돼야 할 배당금 28억1000만원이 아닌 28억1000주가 배당됐다. 무려 112조원에 달하는 주식이 발행된 것.
설상가상으로 몇몇 조합원이 이렇게 받은 주식 중 501만주를 주식시장에 매도해 삼성증권 주가가 장중 큰 폭으로 하락했다. 결국 이들은 유령 주식을 내다 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은 자본시장법 등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했다.
또 일본 대형 증권사 미즈호증권에서 2005년 발생한 '팻 핑거' 사례도 유명하다. 미즈호증권 한 직원이 61만 엔짜리 주식(제이콤) 1주를 팔려다가 이 주식 61만주를 1엔에 내놓는 일이 벌어졌다.
미즈호증권 직원의 황당한 주문 실수로 인해 주식은 하한가로 곤두박질쳤고, 도쿄 증시도 폭락했다. 미즈호증권의 손실은 약 400억엔(약 4000억원)에 달했다.
최태원 회장의 경우도 항소심 재판부의 사실상 '팻 핑거' 실수로 인해 재산 분할은 물론 지배구조 등에 큰 영향을 받게 됐다는 얘기다.
'10 단위' 하나의 차이일 뿐이지만 실제 최태원 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도 차이는 100배로 벌어졌다. 재산 분할은 1조3808억원이나 됐다. 원래 비율을 단순 감안하면 재산 분할은 138억원에 그친다.
항소심 판결 직후 주식시장에서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 때문에 SK㈜ 주가가 급증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하지만 노소영 관장 측 법률대리인 이상원 변호사는 "일부를 침소봉대해 사법부 판단을 방해하려는 시도는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태원 회장 개인의 송사를 SK그룹이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도 매우 부적절하다"며 "차라리 판결문 전체를 국민에게 공개해 판단하는 방안에 대해 최태원 회장이 입장을 밝히는 것을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이로써 대법원이 심리할 이혼소송 상고심은 3가지 경우의 수가 발생했다.
우선 대법원은 1차로 항소심의 판결문 수정이 적법한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적법하다고 대법원이 판단한다면, 수정된 '1000원'을 전제로 1조3808억원의 재산 분할이 타당한지를 심리하게 된다.
만일 수정이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항소심 판결이 바로 파기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 잘못된 수치 100원으로 기재된 판결을 바탕으로 한 항소심의 결론이 타당한지 여부를 가리게 된다.
잘못된 수치로 판단했음에도 항소심의 결과가 타당하다면,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한 채 경정 결정만 파기할 수도 있다.
또한 '100원'이라는 판단이 항소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대법원은 항소심 결과를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도록 서울고법에 돌려보낼 수도 있다.
그리고 최태원 회장 측은 민사소송법 211조 2항에 따라 항소심의 수정 결정에 불복해 즉시 항고장을 낼 수도 있다.
만약 최태원 회장 측이 항고까지 하게 되면 대법원은 항고심과 상고심을 각각 별도로 배당해 두 사람의 이혼 사건을 각각 심리해야 한다.
따라서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심리 최종 결정은 앞으로도 1년 반 이상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 이혼소송에서 '팻 핑거'라는 조롱을 받는 계산 실수가 발생한 것은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한 셈"이라며 "'세기의 결혼과 이혼'은 '세기의 팻 핑거' 사례로 남게 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300억원 비자금 관련 항소심 판결에 대한 강한 반박...SK그룹 명예 걸고 진실 규명
한편, 이날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이 유입돼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취지의 항소심 판결에 대한 강한 반박도 이어졌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은 "이번 항소심 결과로 SK그룹이 6공 비자금과 비호 아래 성장한 것이라는 정의가 내려져 버렸다"며 "SK에는 15만명에 가까운 구성원과 많은 고객, 투자자가 있는데 진실을 소명하는 것이 SK 회사 차원의 숙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형희 위원장은 SK 차원에서 규명이 필요한 사안으로 ▲ 300억원의 정확한 전달 방식과 사용처 ▲ 기존에 밝혀지지 않은 비자금의 별도 존재 여부 ▲ SK에 제시했다는 100억원 약속 어음의 구체적 처리 결과 ▲ 현직 대통령 시기에 특혜로 거론됐던 내용과 사실 유무 등을 꼽았다.
이형희 위원장은 "SK는 6공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기업이 아니고, 오히려 6공과의 관계가 이후 오랜 기간 회사 이미지와 사업 추진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이번 판결은 입증된 바 없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회사의 역사와 가치를 크게 훼손했다. 이를 반드시 바로잡아 회사의 명예를 살리고 구성원의 자부심을 회복하겠다"고 강조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