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대면 업무 비중 높아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모로코에서는 돈만으론 안 되는 일이 많다.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혼자 집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끔은 관공서에 방문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빌려야 하는데 이 때 생각지 못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모로코에서 사업을 계획하고 있거나 국제결혼 등 많은 절차가 필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면 정말 많은 시간을 아껴놔야 한다. 단 한 페이지의 서류를 발급받는 데만 하루가 걸릴 수도 있다.
온라인을 통해 거의 모든 행정업무 등을 처리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모로코에서는 아직 대면 업무가 중심이다. 간단한 서류를 받기 위해서도 직접 관공서를 방문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약 없이 담당 공무원을 기다려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관공서의 운영 시간 동안 담당자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가끔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오픈런'을 한다 해도 오전 안에 일을 처리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모로코인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듯 하다. '인샬라'(신의 뜻대로)라는 이슬람 관용구를 되뇌이며 오늘 못했다면 내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차가 느릴 뿐만 아니라 까다롭기도 하다. 한 관공서에서 서류를 하나 발급받았다고 해도 바로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기관에서 서류를 검증한 뒤 도장을 받아오라고 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러 기관의 협업을 거쳐 서류 하나가 완성되는 셈이다. 담당 공무원이 일을 빨리 처리해준다고 해도 이곳저곳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때문에 관공서를 방문해야 하는 날이면 다른 모든 계획이 뒤로 미뤄지는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업무에 필요한 공식적인 양식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은 점도 일처리가 늦어지는 데 한 몫을 한다. 한국인의 기준에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직도 수기로 문서를 작성하는 관공서가 많다. 공식 문서를 직접 한 줄씩 적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질 때가 많지만 어쩌겠는가. 모로코에선 모로코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수기로 문서를 만드는 방식은 불필요한 혼선을 빚기도 한다. 문서를 발급해주는 담당자가 본인의 기억과 노하우에 의존해 일을 하는 탓에 오늘은 된다고 했던 것이 내일은 안 될 수도 있다. 관공서마다 생각하는 절차가 다를 때도 있어 헛걸음을 하는 일도 항상 각오해야 한다.
다만 모로코식 일처리가 항상 불편한 경험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한 공무원과 여러번 대면하고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유대감을 쌓게 되기도 하고 일이 마무리될 때쯤엔 함께 해낸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수많은 서류를 다시 살펴보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신중해지고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덤이다.
모로코에서 여행이나 사업 등 어떤 일을 앞두고 있다면 계획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특히 여러 관공서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라면 하루이틀을 생각해선 안된다. 왕복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 전이라면 꼭 계획보다 일주일 정도를 더 여유롭게 생각해 티켓을 구매해야 낭패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기다림에 지칠 때가 다가온다면 모로코인들을 따라서 되뇌어 보자. 인샬라.
박금재 기자 re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