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가격 결정 시 고려사항은 원재료 값만 있는 게 아냐"
한국은행, "지난해 기업 이윤과 물가 큰 관련 없었다"
최근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이 유통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드플레이션’은 탐욕과 물가 상승의 합성어로, 기업들이 전쟁 등 외부 환경을 핑계로 상품의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식품업계에서 마치 마녀사냥처럼 ‘그리드플레이션’ 기업 색출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다. 밀가루 값이 내려가면서 라면과 과자 등도 당연히 가격인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기업이 가격 유지를 하거나 오히려 인상을 하게라도 되면 뭇매를 맡기 십상이다.
3일 <녹색경제신문>은 이처럼 국내 식품업계의 ‘그리드플레이션’ 의혹과 이와 관련되어 흔히 발생하는 오해에 대해 취재를 종합했다.
최근 밀가루 가격이 하향 조정되면서, 라면과 과자 등 식품업계도 당연히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증폭되고 있다. 원재료 값이 내렸는데도 일부 기업들은 가격을 내리지 않아 이윤에 눈이 멀었다는 지적도 받는다.
실제로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으로 지난 6월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등 제분업체들이 일제히 밀가루 가격을 인하했으며, 이에 농심·오뚜기·삼양뿐 아니라 SPC·뚜레쥬르 등 제빵 업계는 일부 제품의 가격을 내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조처에도 여전히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높다는 평가다. 가격 조정을 하지 않은 기업들은 물론 가격 조정을 했던 업체들까지도 인기제품들의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흔히 원재료 가격이 내렸으니 제품 값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식품업계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사실상 원재료 값이 인하되더라도 총 원가에는 큰 영향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업계의 설명에 따르면 라면의 경우 밀가루가 원재료이나, 스프마다 원가가 천차만별이라 밀가루 가격 흐름을 일제히 가격 조정을 하는데 반영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스프에는 고기 분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고기 값에 영향을 받을뿐더러, 면의 경우도 반죽 시 밀가루 뿐 아니라 닭 육수 등이 첨가되는 제품들도 있기 때문에 닭고기 가격 등락에도 영향을 받는다.
한 라면업체 관계자는 3일 <녹색경제신문>에 “밀가루 값을 내렸으니 그만큼 라면 값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고려사항이 빠진 계산법”이라며 “원재료가 밀가루인 라면은 부재료 값이 훨씬 더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프에 따라서도 원가 등락이 천차만별”이라며 “특정 맛을 살린 스프라든지, 액상 스프가 들어가는 제품의 경우는 더욱 밀가루 값이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적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업계는 제품 가격이 원가뿐 아니라 판관비 등 부대비용의 영향까지 고려해 결정되는 보다 복잡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 특히, 기업 이윤과 직결되는 부분은 원가 외에도 인건비와 물류비 등이다.
최근 한국은행 조사국도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기업 이윤이 물가에 미친 영향이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은행이 블로그에 게시한 ‘기업이윤과 인플레이션: 주요국과의 비교’는 기업의 이윤보다도 수입물가의 영향이 컸다는 골자다.
한편 최근 러시아가 흑해 곡물협정을 중단하면서 국제 곡물 가격은 다시 인상될 것으로 예고됐다. 이에 식품업체들의 이윤도 이전보다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서영광 기자 market@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