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들, 경영자에게 제언..."공학 지식 갖춰야"
"고부가가치 핵심기술,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 중요"
<녹색경제신문>이 창간 13주년에 맞춰 <녹경 빅픽처> 시리즈 기획을 진행합니다. 우리나라가 향후 차세대 첨단산업 등을 선점하기 위한 미래성장동력의 '큰 그림(Big Picture)'을 그려보자는 취지입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뉴노멀(New Normal), 엔데믹(Endemic) 등 시대 변화는 물론 '한류(Korean Wave, Hallyu)' 확산에 따른 AI(인공지능), 로봇, 미래차,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K-인더스트리(K-Industry) 전반의 시너지까지 고려한 기획입니다. <녹색경제신문>이 어려움 속에서 성장해왔듯이 대한민국 기업들이 글로벌 위기 극복을 넘어 큰 도약으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註)]
수년 전부터 산업 성장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산업계, 학계, 금융계 등을 막론하고 높아지고 있다.
중국 등 개도국들이 무섭게 우리 주력 산업을 따라오면서 그동안 한국을 대표해온 주력산업의 수익성이 무섭게 추락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을 먹여살린 반도체의 위상이 꺾일 만큼 한국 산업에 한파가 찾아오자 이는 곧바로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에게도 혹독한 겨울이 왔음을 나타냈다.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2.7% 감소했고, 순이익은 57.6% 하락했다.
즉각적 성과보다 '축적'을 해야 할 때
지난 2015년 축적의 시간과 2017년 축적의 길이 발간된 후 국내에선 인문, 공학, 경제 등 전 분야에서 '축적'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언제나 트렌드를 쫓기 바쁜 한국 산업에 경종을 울린다.
이건우 서울대 공과대학 명예교수는 "우리 산업이 처한 핵심적인 경쟁력의 위기는 고부가가치 핵심기술,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의 부재에 있다"며 "이런 역량들은 마음먹는다고 금방 확보되거나 돈이 있다고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건우 명예교수는 '축적의 시간'이란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간을 들여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고, 숙성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확보되는 역량"이라며 "한국의 기업과 정부 그리고 학교 등 모든 집단이 힘을 합쳐 창조적 축적을 지향하는 사회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해야 축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제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산업, 나아가 사회 전체가 더 무게 있고, 천천히 가면서, 시행착오를 꼼꼼히 누적해가는 성숙한 루틴으로 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의 사회에 대한 제언은 사회라는 토양 위에 문화와 공동체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산업이라는 꽃이 피고 수익성이라는 열매가 맺을 수 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된다.
개념설계 역량의 부족이 발목을 잡는 시대, 이미 도래해
공학 전문가들은 각자가 전공한 학문을 뛰어넘어 K-산업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합일점을 찾았다. 바로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석학들은 개념설계를 청사진을 제시하는 개념설계 역량이야말로 고부가가치 영역이면서, 산업의 패러다임을 설정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발돋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역량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해당 역량은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무형의 지식과 노하우가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라는 데 있어 우리 스스로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역량이다.
산업을 경영하는 데 공학을 아는 CEO가 없다?
한국의 에너지 관련 회사들이나 에너지 공기업이나 공통적으로 공학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가능한 회사들이 거의 없다.
신창수 전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돈이 있으면 중요한 기술 개발 결과는 논문도 쓰지 말고, 특허도 내지 말아야 한다"며 "자본을 투입해 스스로 스케일 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창수 교수는 "한국은 기술이나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들, 특히 비즈니스만 해오던 사람들이 의사결정 라인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기술을 이해하는 경영자가 적으니 기술 축적을 하는 데 관심이 없고, 아웃소싱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꼬집었다.
끝으로 그는 "원래 단순성에서 창의성이 나오고, 복잡성에서는 테크닉이 나온다"며 기본적인 개념을 몸으로 확실히 체득해서 알아야 창의적 엔지니어링의 기본 정신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문제 푸는 테크닉이 아니라 정말 기초가 되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계, 관계 당국의 도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
모든 산업을 포괄할 수 없어 조선을 예로 든다. K-조선은 전 세계 1위부터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부가 가치의 선박을 건조하고 수주하기 위해 연구개발 센터를 개소하고 비용을 높이고 있다.
<녹색경제신문>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국내 최초로 영국 로이드선급에서 암모니아 추진 선박에 대한 선급 기본인증서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 9월 가스텍(Gastech)에서 ABS(미국선급협회)로부터 암모니아 추진 및 운반선에 대한 기본인증(AIP)를 획득했다.
삼성중공업은 ABS와 함께 암모니아 연료 탱크와 공급 및 환기 시스템의 기술 연구를 통해 네오-파나막스(1만2000~1만6999TEU)급 암모니아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설계 개발에 성공했으며, 한화오션은 2020년 10월 영국 로이드 선급에서 2만3000TEU급 암모니아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대한 기본 인증을 획득했다.
김유일 인하대 조선공학과 교수는 <녹색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조선 업체들은 시장을 선도하는 1위 기업들”이라며 “정부 부처에서도 연구개발(R&D) 사업을 계획할 때 조선업의 비중을 더 높여주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기술력이라면 친환경 연료는 실현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정부의 도움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했다.
정치와 정책이 답할 차례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장도 공학 전문가가 아니고 당국을 견재하고 입법을 추진하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위) 위원 30명 중 공학을 전공한 이는 6명으로 20%에 불과하다.
산업을 육성하고 벤처기업을 키우며 통상을 열고 자원을 획득하는 데 최선봉에 있는 국민의 대표 중의 대표인 국회 산자중위가 정작 산업의 기본이 되는 공학을 이해할 수 있는 인원은 단 6명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현재 한국의 연구관리 지원 기관에서 공지하는 과제 제안서 지원 안내나 과제 개요를 보면 개발의 타당성이 부족한 것이 제법 있다"며 "좀 더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와 방법을 도입하고,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절차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입법적 정치적 과제로 남는 부분이 있다. 국회에서 매일 수십 건의 세미나와 포럼이 열린다. 세종시에서 담당과를 이끌 과장들은 출장 준비에 바쁘고, 교수들의 필요성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K-산업의 도약을 위해 이제는 입법부가 메아리에 답해야 할 차례다.
최지훈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