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오랜 연구와 투자로 차별화된 기술력 인정받아
-삼성SDI, R&D로 가장 빠른 전고체 배터리 양산 자신해
-SK온, 공격적인 투자로 후발주자의 불리함 극복해
<녹색경제신문>이 창간 13주년에 맞춰 <녹경 빅픽처> 시리즈 기획을 진행합니다. 우리나라가 향후 차세대 첨단산업 등을 선점하기 위한 미래성장동력의 '큰 그림(Big Picture)'을 그려보자는 취지입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뉴노멀(New Normal), 엔데믹(Endemic) 등 시대 변화는 물론 '한류(Korean Wave, Hallyu)' 확산에 따른 AI(인공지능), 로봇, 미래차,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K-인더스트리(K-Industry) 전반의 시너지까지 고려한 기획입니다. <녹색경제신문>이 어려움 속에서 성장해왔듯이 대한민국 기업들이 글로벌 위기 극복을 넘어 큰 도약으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註)]
취재를 하다보면 다양한 직업·연령·성별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을 만나 자동차·배터리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라고 소개하면 다음은 주식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국내 배터리사 중 어떤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기업의 주식을 매수해야 하는지, 고점에 물렸는데 매도 타이밍을 언제로 잡아야 하는지 등.
때로는 배터리 관련 유튜버의 주장을 팩트체크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배터리 제조사에서 곧 테슬라와 계약을 맺는다는 데 진짜인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어떤 배터리 회사에 돈을 싸들고 와서 배터리를 공급해달라고 하는데 정말인지, 새롭게 해외 진출을 발표하거나 공장 증설을 하는 배터리 제조업체가 어디인지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의 주식을 1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기업들의 해외 진출과 협력 관계에 관해서는 절대로 미리 알 수 없다고 답할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지만 진짜로 모른다. 실제로 기업의 계약 체결 공시에서도 계약 금액·상대방·조건 공개가 유보됐다는 안내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주식 투자를 떠나서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의 미래에 대해 묻는다면 할 말이 많다. 뛰어난 기술력·다양한 제품군·신속한 개발력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내연기관차를 퇴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의 성장세를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SNE리서치가 발표한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살펴봐도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세계 3위, SK온은 세계 5위, 삼성SDI는 세계 6위로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1·2위는 중국 기업으로 내수 시장 공급량이 상당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대단한 성적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녹색경제신문>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는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의 매력과 경쟁력이 무엇인지 각각 짚어봤다.
■ LG에너지솔루션, 연륜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자신감
“저희는 뭐 늘 하던 대로 하는거죠”
LG엔솔 측은 향후 계획과 전략을 묻는 질문에 항상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할 것이라고 답한다. 처음에는 이 근거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고, 지금까지 얼마나 잘해왔길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LG엔솔의 과거와 현재를 알게된 후,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면 되겠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LG엔솔의 배터리 개발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1992년 리튬이온배터리 연구개발을 시작했고, 1999년 원통형 리튬이온배터리 양산을 시작했다. 초기 투자비용이 높고, 수율이 안정화될 때까지 추가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각형 배터리 개발에 실패하는 등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현재 원통형·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든든한 협력업체로 자리매김했다. LG엔솔은 GM과 배터리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설립해 배터리 생산에 나섰고, 현대자동차그룹과 합작공장을 설립해 배터리셀을 생산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최근에는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7조 2000억원을 투자해 신규 원통형 배터리와 ESS용 LFP 배터리 공장을 신설한다는 계획도 발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해당 공장의 생산능력은 43GWh로 글로벌 배터리 생산 단독 공장 중 최대 규모이기 때문이다.
LG엔솔의 ‘광폭’ 행보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올해 1분기 실적부터 AMPC(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를 반영하면서 역대급 수치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배터리 생산능력과 협력관계에 있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을 고려할 때 LG엔솔의 성장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 삼성SDI, 멀리보고 높이뛰기 위한 준비에서 나오는 자부심
“저희 만의 계획과 전략에 따라 움직입니다”
다른 배터리 제조사들의 해외 진출 소식을 취재하면서 종종 삼성SDI측에 왜 이렇게 투자에 소극적인지 묻는다. 그럴 때마다 삼성SDI 측은 우리만의 계획과 전략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 투자를 망설이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실제로 삼성SDI는 필요한 순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GM(제너럴 모터스)·스텔란티스 등과 배터리 합작 공장을 건설해 각형·원통형 배터리 등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폭스바겐·포드·BMW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고급 차종에도 삼성SDI의 배터리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가 해외 진출만큼 공을 들이는 것은 R&D(연구개발)로, 국내 배터리 제조사 3사 중 가장 많은 비용을 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투자 덕분에 삼성SDI가 배터리 끝판왕으로 알려진 전고체 배터리의 양산 시점을 가장 빠르게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양적성장보다 질적성장에 집중해 온 삼성SDI가 올해 1분기 실적발표에서 해외 진출과 신규 고객사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삼성SDI가 다양한 제품포트폴리오와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손을 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SK온, 후발주자의 불리함을 넘어설 수 있었던 추진력
“공격적인 투자가 결실을 맺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SK온은 배터리 제조사 중 후발주자지만 북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지금도 SK온의 광폭 행보가 계속되면서 업계에서는 어디서 투자금을 끌어올 지, 언제쯤 흑자로 전환될 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SK온측은 항상 투자를 위한 계획된 적자·전략적인 적자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투자업계는 SK온측이 올해 1분기 실적부터 AMPC 혜택을 반영할지 관심을 가졌다. LG엔솔처럼 1분기부터 AMPC 혜택을 반영할 경우 오랜 적자를 벗어나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SK온은 AMPC 혜택을 반영하지 않았고, 또다시 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번 분기가 SK온의 마지막 적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올해 2분기부터는 AMPC 혜택이 적용될 것이고, 2025년까지는 현재의 3배 이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시키겠다는 목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든든한 파트너사인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 3위로 올라서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상황에서 SK온이 현대차그룹과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박시하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