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안건동향 선정…주주제안·소유분산·E&S
여느 때보다 시끄럽던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ESG 평가 및 의결권 자문기관 서스틴베스트는 지난 정기주총을 뒤흔든 대표 안건 이슈 3가지를 선정했다. ▲주주제안 ▲소유분산기업 ▲이사회 환경·사회(E&S) 리스크다.
이번 주총 시즌에서 주주제안 안건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정기주총에서 주주제안을 상정한 기업 수는 44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8곳 대비 57% 증가한 규모다.
안건 유형별로는 이사·감사선임 27건, 현금주식 배당 25건, 정관변경 17건, 자사주취득·소각·처분 10건 순으로 높은 비중을 나타냈다.
개인투자자들의 인식 제고가 이유로 꼽힌다. 코로나19 이후 풍부한 시중 유동성에 힘입어 주식투자자 수가 늘어났다. 투자자들은 공격적인 매수세로 코스피 3000선을 뚫기도 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마주해야 하기도 했다. 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인 지배구조다.
이러한 개미들의 응어리를 터뜨린 건 행동주의 펀드였다. 얼라인파트너스, 안다자산운용 등 행동주의 세력은 기업에 현금배당, 자사주 취득·소각 등의 주주가치 제고안을 제안했고 주주들의 호응에 에스엠, BYC 등 관련 기업 주가가 고공행진했다.
대부분 고배를 마셨지만 성과를 낸 곳도 존재했다. 특히 3%룰이 효과를 입증한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 3월 에스엠과 사조오양 정기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추천한 감사후보, 감사위원회 위원이 모두 이사회에 진입했다.
3%룰은 상장사의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는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된 규정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시즌에선 소유분산기업이 화두로 떠올랐다. 논란은 KT에서 불거졌다. 지난 2월 국민연금은 구현모 KT 전 대표이사의 연임을 공개 반대하면서 지배구조 논란에 불을 붙였다. 구 전 대표가 지난해 1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이력 때문이다.
이후 KT는 차기 대표이사로 윤경림 사내이사를 선정했으나 불투명한 선임절차 등에 후보가 자진사퇴하는 등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관치 논란도 나왔다. 경제개혁연대는 KT 이사회의 책임을 물으면서도 “보다 심각한 문제는 KT에 대한 정부나 정권의 노골적인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과 밀착된 이사회 구성으로 마찬가지로 경영 독립성을 저하할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관료출신인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의 우리금융지주 대표이사 선임안에 찬성하면서 이러한 우려를 더 키우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이를 두고 '낙하산 관치금융의 결정판'이란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또 다른 이슈는 ESG와 연결돼있다. 서스틴베스트는 이번 주총 시즌부터 재선임 이사 후보의 적격성 판단 기준에 환경, 사회 리스크(E&S) 관리역량을 추가했다. 중대 산업안전사고, 기후규제 대응 능력 등의 E&S 관리의무가 기업 이사회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스틴베스트는 최근 3년간 중대 산업안전사고가 발생한 기업이 이사를 재선임했을 때 해당 이사가 이사회 내 ESG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경우 반대 권고했다. 또한 기후공시성과가 저조한 기업에 대해선 개선 의견을 전달했다.
대표 사례는 현대건설이다. 서스틴베스트는 회사의 두 사외이사 재선임 안에 반대 권고를 내렸다. 두 사외이사가 재임한 기간 근로자 사망사고가 일어난 탓이다. 두 이사는 이사회 내 소위원회인 투명경영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서스틴베스트는 사고의 직접적 관리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미 해외에선 E&S 관리역량이 이사회 적격성 평가기준에 반영되고 있는 추세다. 캐나타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BCI), 온타리오교직원연금(OTTP), 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등 해외 연기금은 E&S 리스크 관련 이사회 감독 기능이 부족할 시 반대표를 행사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서스틴베스트는 “당사의 이사 재선임 후보에 대한 의견 권고에 있어 이사회의 E&S 리스크 관리는 점차 더 중요한 적격성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며 “이사회 재선임 안건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에서 이사회의 E&S 리스크 관리 수준이 중요한 적격성 판단 기준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증시 저평가) 해소를 천명한 만큼 향후 정기주총 내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를 통해 주주, 기업가치 제고를 중심으로 ESG 이슈에 대한 중요성도 부각될 것으로 예측된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기후 공시 체계 표준화가 진행되고 있고 산업재해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의결권 행사에서 환경과 사회 이슈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민감도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 박세연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취약한 지배구조는 외국 상장사에 비해 주식 평가 수준이 낮게 형성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핵심은 공시체계 개선을 위한 투명성 강화와 소액주주 권리 보호다. 금융당국이 선진화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배당절차 개선, 상법개정을 통한 전자주주총회 제도 도입 등이 가속화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