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기업법, 형평성 논란에 국회 계류
尹 대통령,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 필요”
글로벌 연기금이 복수의결권에 반대하는 켐페인에 돌입했다. ‘평등한 투표를 위한 투자자연합(ICEV)’이다. 참여기관이 운용하는 자산은 1조 달러(약 1300조원)에 달한다. 복수의결권은 1주 당 2개 이상의 의결권을 갖는 제도로 ‘경영권 방어’와 ‘주주 형평성’ 사이에서 찬반의견이 극명하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논란에 복수의결권을 다룬 ‘벤처기업법’이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상장 시 3년 후 보통주로 전환되는 일몰조항을 비롯해 국내 벤처기업법엔 충분한 주주 보호장치가 마련돼있다”며 “업계입장에선 일몰조항이 도입된 부분이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통과라도 되었으면 하는 입장”이라고 <녹색경제신문>에 전했다.
‘1조 달러’ 굴리는 글로벌 연기금, ‘복수의결권’ 반대…일몰조항 여부 관건
미국, 영국 연기금이 복수의결권 제도에 반대하는 이니셔티브(ICEV)를 발족했다. 영국 철도 연기금 ‘레일펜(Railpen)’과 미국 연기금협회 ‘기관투자자위원회(CII)’가 주도하며 미네소타주 투자위원회, 뉴욕주 공적퇴직기금 등이 참여한다. 이들 기관이 운용하는 자산은 약 1조 달러다.
이니셔티브는 모든 복수의결권 제도에 반대하지 않는다. 특정기간 후 권리가 자동소멸하는 ‘일몰조항(sunset clause)’이 없는 복수의결권에만 반대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장기적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많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05년 이후 수행된 38개 관련 실증연구를 분석한 결과 이 중 22개 연구에서 복수의결권 도입이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연구에선 일몰조항을 가진 기업이 영구적 복수의결권을 가진 기업보다 기업가치가 높게 나오기도 했다.
자본시장연구원 남길남 선임연구위원은 “최근의 실증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구적 차등의결권 기업의 가치는 일몰조항이 있는 차등의결권 기업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더 하락하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며 “차등의결권의 영구화를 억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에 이니셔티브는 투자자들의 켐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입법적 변화도 꾀하고 있다. CII가 공개한 법안 초안은 증권거래소가 7년 일몰조항이 없거나, 주주들이 상장 후 7년 동안 복수의결권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상장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잇다.
캐롤린 에스콧 레일펜 시니어 투자매니저는 “일몰조항이 없는 복수의결권 구조는 장기투자자들이 한 손을 등 뒤에 묶인 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 꼴과 같다”며 “이번 켐페인을 통해 복수의결권 논쟁에 전환점을 맺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복수의결권’ 도입 10년 째 제자리…“일몰조항 있다” vs “눈속임이다”
연초부터 국내에도 복수의결권 도입 논의가 뜨거웠다. 복수의결권을 담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벤처기업법)’이 작년 말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가 지분율 30% 미만일 때 주당 10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허용한다.
다만 벤처기업법은 지난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넘지 못했다.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컸다. 당시 법사위를 앞두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외 8개 경제시민단체는 “상법 상 1주 1의결권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비상장 벤처기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육성하는 것과도 무관하다”는 반대 성명을 냈다
이러한 비판에 중소벤처단체는 “재벌 대기업의 편법 경영권 승계 악용 차단, 엄격한 주주동의를 통한 발행, 소수주주 및 채권자 보호를 위한 복수의결권 행사 제한 등 부작용 방지를 위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마련됐다”며 이런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시민단체는 여기에 “일몰조항으로 인해 상장 후 일정한 존속기간이 지나면 급작스러운 소유구조의 변화가 초래될 것이고, 이 경우 일몰조항 때문에 유니콘 기업이 거래소 상장조차 할 수 없다거나 창업자가 경영권을 잃게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며 “일몰조항 자체를 삭제하는 법 개정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맞섰다.
이 가운데 기업규제에 완화적인 윤석열 정부가 제도도입을 재추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윤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규제는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 “벤처기업에 대한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 등 글로벌 기업환경에 맞게 기업 관련법을 정비해 기업 활력과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새 정부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벤처기업법은 통과되지 말아야 할 명분이 적다. 법사위가 제대로 구성된다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다만 업계 입장에선 이 시간이 자꾸 늦춰지는 게 힘든 점이다”라고 <녹색경제신문>에 전했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