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만 요란한 ESG경영...성적표는 국내 주요 금융기관 100곳 중 꼴찌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버려지고 밟힌다는 말이 있다. 모든 공공기관은 당초 설립목적과 공익에 충실해야 한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됐다. 이렇게 정권이 교체된 이유를 하나의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주요 공기업들의 공공성 상실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녹색경제신문>은 공기업이 새정부의 국정 슬로건인 '공정과 상식'을 잘 실천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문제점들을 짚어 나간다...<<편집자 주>>
한국산업은행(회장 강석훈)은 은행 코드 002번을 쓰는 국책은행이다. 001번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산업은행은 공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으로 기업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1954년 설립됐다.
산업은행에는 3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지난해 평균 1억1300여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는 공공기관 중 가장 많은 액수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말 연결기준 약 300조원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산은, 헷갈리는 정체성...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누구의 기관?
산은은 이처럼 거대한 공공기관이자 국책은행이지만, 일반은행과 같은 여수신업무도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마다 사업보고서를 공시하고 한국노총 금융노조에 가입돼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대선과정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산은의 부산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현재 부산이전 추진이 공식화된 상태다.
그런데, 산은 노조는 이를 적극 반대하면서 지난 8일 첫 출근에 나선 신임 강석훈 산은 회장의 출근길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산은은 국책은행인가 시장형 공기업인가 하는 것이다. 정부가 100%의 지분을 가진 국책은행인데, 노조가 있고, 이 노조는 신임 수장의 출근길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은 국민의 세금으로 세워졌다는 뜻이고, 국민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정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사실, 산은만큼 정체성이 헤깔리는 국책은행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이동걸 전 회장은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이라고도 했다가 국책은행이라고도 했다.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이라면서 임금을 더 올려야 하고, 재무적 성과를 자랑하기도 했다가, 국책은행이라면서 부산 이전은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선명하지 못한 정체성으로 인해 장기적 국가정책보다는 정권의 임기나 수장의 임기 동안의 단기적 경제 성과가 우선시되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정권이 바뀌면 수장이 교체된다. 이는 수장이 해당 정권에만 충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이명박정부에서는 공공기관 지정을 해제하고 산은지주를 해체해 부분 민영화를 꾀하기도 했지만, 박근혜정부에서 다시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과정이야 어떻든 현재는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는 '공공기관이란 정부의 투자·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으로서 일정 요건에 해당하여 기획재정부장관이 매년 지정한 기관'으로 명시하고 있다.
산은은 한국은행같은 독립 기관이나 수익성을 추구하는 공기업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부 소유의 공공기관이다. 따라서 진짜 주인은 국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공부문이 확대되면서, '신의 직장'으로 불리기 시작한 몇몇 공공기관이 있다. 산은도 그 중 하나다.
공공기관 중 가장 보수가 좋아 이른바 뛰어난 스펙이 있어야 입사할 수 있고, 그래서 상당히 우월한 집단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집단이 된 것은 아닌가 돌이켜봐야 한다.
스펙이 좋다고해서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산은 임직원이 2조원 가량의 임금을 받고 이룬 성과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다.
대우조선해양, 쌍용차, KDB생명 매각은 모두 무산됐고, 대한항공과 금호아시아나의 기업결합은 아직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
매각에 성공한 대우건설은 우량기업을 헐값에 넘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재무적성과 ESG경영도 말만 요란...국내 금융기관 중 꼴찌
산은은 지난 3월말 공시한 '2021년 한국산업은행 현황'에서 올해 경영목표를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혁신성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KDB'로 제시했다.
그리고, 중점추진목표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녹색금융 선도 ▲혁신성장 지원을 통한 미래성장동력 확충 ▲포스트 코로나 연착륙 및 국내 산업ㆍ기업 체질 개선 ▲글로벌·IB 경쟁력 제고를 통한 금융 선진화 선도 ▲포용적 금융을 통한 사회적가치 확산 주도 ▲정책금융의 지속성장 기반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섯가지 중 3가지 이상이 ESG경영과 관련이 있다.
ESG경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ESG경영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 5일 '세계환경의 날'을 맞아 국내 기후환경 싱크탱크인 기후솔루션(대표 김주진)이 발표한 국내 주요 금융기관 100곳의 탈석탄 정책 평가자료인 ‘FFOC(Finance for Our Climate)’에 따르면, 산은과 자회사인 KDB생명은 최저점를 기록했다.
▲재무적 성과도 형편 없어,,,HMM 성과 CB 전환으로 훔친 것 빼면 '별로'
산은의 재무 성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산은은 지난해 약 2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이중 약 2조원은 HMM(대표이사 김경배)에 지원했던 3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얻은 수익이다. 이로써 HMM은 2조원 규모의 파생상품관련 손실을 입게 됐고, CB전환으로 인해 주가는 폭락했다. 국민연금과 신용보증기금,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공공기관들이 큰 피해를 입게됐다.
산은은 이 과정에서 3000억원의 채권 회수를 포기했고, 주가가 폭락해 손해를 봤지만 CB전환에 따른 이익 부분만 공시에 반영했다.
산은의 CB전환 영향으로 한국해양진흥공사(사장 김양수)도 지난해 10월 6000억원 규모의 CB를 주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산은의 HMM 지분이 약 5% 감소했는데, 산은이 올해 공시한 결산 자료에는 이것이 반영되지 않고 25%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나와 있다.
지난해 산은이 올린 2조원 규모의 CB전환 수익은 HMM이 국제적인 물류대란과 해상운임 상승에 힘입어 얻은 성과를 훔쳐 자기 성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한편, 산은은 한국전력공사(사장 정승일)의 32.9%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지난 5년 동안 주가가 반토막 났다. 올해는 30조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산은, 공공기관 본분 회복하고 대통령과 정부에 따라야
산은은 국책은행으로서 재무구조와 상관없이 신용등급이 국가신용등급으로 적용된다. 또한 지난 2020년 4월 국회를 통과한 기간산업안정기금법에 의해 조성된 40조원 규모의 기금을 사용할 수 있다.
이같은 특권은 산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은이 국민경제와 건전한 금융시장발전에 기여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부산이전을 반대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강석훈 회장의 출근길을 막는 산은 노조는 다분히 공적 사명과 존재 이유를 망각했다는 지탄을 피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공공기관의 주인은 직원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사실과 대통령은 국민이 선택한 권력 위임자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이 산은 노조가 왜 부산 이전을 이토록 반대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김의철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