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유업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열어
- 공정위, 남양유업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123억원 부과
- 불가리스 코로나 항바이러스 효과 논란
유업계에서 잘 나가던 남양유업이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2013년 대리점들이 본사의 제품 강매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그해 5월 한 영업사원의 대리점주를 향한 막말 녹취 파일이 세상에 공개된 이후,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대리점 갑질 파문에 2013년 5월 김웅 대표와 임원들이 모두 허리를 굽혀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소비자들에겐 진심으로 와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8년이 흐른 현재, 남양유업은 창사 이래 또 다른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간 남양유업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약속하며 대리점과 상생하겠다는 의지를 비쳤고, 개선된 제도를 마련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장기화된 현 시점에 무리수를 범했다는 뭇매를 받고 있다.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발표 이후 허위 혹은 과대광고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4월 30일 경찰이 남양유업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고, 소비자 불매운동도 여전히 뜨겁다. 또 표절시비와 오너 일가 비리 의혹까지 소비자들에게 각인되면서 남양유업의 이미지는 더욱 악화됐다.
결국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지난 4일 본인의 사퇴와 함께 경영권 세습 포기를 선언했다. 불가리스 사태가 불거진 지 3주 만에 "책임을 지겠다"며 눈물과 함께 퇴진한 것이다.
◆ 그날
남양유업 대리점 갑질 파문...김웅 대표 및 임원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2013년 5월 9일 남양유업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김웅 대표를 비롯한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이 참석했다.
당시 남양유업은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과 대리점에 강제로 떠넘기는 이른바 ‘밀어내기’가 드러난 음성파일이 공개돼 급속도로 논란이 커지고 있었다. 음성 파일은 3년 전 일이었고 해당 영업직원은 남양유업에서 퇴사한 상황이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남양유업 불매운동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사실상 남양유업의 대리점에 제품 밀어내기에 대한 논란은 음성파일이 공개되기 전부터 있었다. 2013년 1월 말 남양유업이 지역 대리점에 물건을 밀어내기(강매)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양유업 본사가 재고가 많아 남거나 판매 부진한 제품을 대리점의 동의 없이 보내놓고 수금해간다는 것이었다.
본사가 주문 시스템을 조작해 대리점주가 주문한 양의 두 배를 유통했다. 이에 대리점이 울며 겨자먹기로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처리하기 위해 '1+1 행사'를 하거나 자체 폐기 처분한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결정적으로 그해 5월 욕설과 강매 내용이 섞인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5월 7일 편의점 가맹점주 연합을 비롯, 150여개 시민사회·직능·자영업 단체는 600만명의 자영업자들은 남양유업 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은 홈페이지에 김웅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올렸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히려 본사를 대상으로 한 항의한 대리점주들에게 보복성 계약해지를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전국민적인 공분과 불매운동까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그간 문제였던 관행을 개선하고 해당 대리점주를 상대로 한 모든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남양유업과 대리점주들간의 고소전이 있었다. 2013년 2월 14일 남양유업은 이창섭 남양유업 피해자협의회 대표를 고소했다. 혐의는 남양유업은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이었다. 대리점주들로 구성된 피해자협의회가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일 때 사용한 피켓·전단에 적힌 물품 밀어내기, 떡값 요구, 불법 리베이트 등 문구를 두고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피해자협의회도 맞고소로 응대했다.
2013년 7월 8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조사 결과 피해 대리점주들이 주장했던 대로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가 사실로 드러났다. 앞서 공정위는 막말 파문이 본격 시작되기 전 불공정행위 관련 조사를 시작했다. 대리점들이 본사가 2008∼2012년 제품을 대리점에 강매했다며 공정위에 1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신고하면서다.
공정위가 발표한 ‘남양유업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제품의 수요예측 실패 등에 따라 발생한 재고부담을 조직적으로 대리점에 떠넘겼다. 전산시스템에서밀어내기 물량을 조작해 임의 할당했다.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남양유업 전국 1800여 개 대리점을 대상으로 밀어내기가 확인된 품목은 전체 71개 품목 중 26종이었다. 주로 대리점들이 인기가 없어 대리점들이 취급을 기피하는 품목이거나 신규출시 후 마케팅에 힘쓰는 제품이었다. 그중에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는 대리점이 오후에 전산 주문을 마감하고 주문량이 목표량에 미달하면 지점 영업직원이 일방적으로 수정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2010년부터는 전산 프로그램상에서 대리점의 최초 주문기록을 삭제하기도 했다. 최종 주문량만 나타나게 해 밀어내기 사실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남양유업에 대리점을 상대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123억원을 부과했다.
남양유업 사태로 불거진 ‘갑질’ 논란은 국회로까지 이어졌다. 법안 중에는 제품 밀어내기 등과 같은 '갑(甲)의 횡포'에 대해 손해액의 최대 10배까지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부터 대리점들이 법적으로 본사에 대항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를 전면 도입하는 방안도 있었다.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우유, 커피 등 남양유업 제품의 5월 매출이 반토막났다. 불매운동으로 인해 오히려 대리점이 피해를 입는 양상도 벌어졌다, 이에 대리점주 1000여명이 힘을 모아 남양유업 매출 회복을 위해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 그 후
공정위 조치에 따라 상생 제도 마련
2013년 6월에도 남양유업 홈페이지에는 팝업 공지로 대국민 사과문이 게재됐다.
그해 7월 8일에는 김웅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절대로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공장 증설에 이어 신규 투자 공급량이 늘어나다 보니 밀어내기 행태가 일부 있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김 대표는 사태 해결을 위해 봉사활동 등 사회 환원을 통해 남양유업의 이미지를 회복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만큼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개선하고 정비하겠다고 했다.
남양유업은 대리점을 대상으로 상생·복지 제도와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상생회의를 진행했다. 대표이사를 비롯해 임직원, 전국 대리점주 대표들이 모여 영업현장 애로사항 수렴 및 논의 안건 등을 영업정책 등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또 2020년 5월엔 협력이익공유제를 도입해 농협 하나로마트에 거래해 받은 영업이익의 5% 해당하는 이익을 납품담당 대리점과 분배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남양유업이 공정위로부터 처벌을 받지 않는 대신 5년간 대리점주들과 이익 일부를 공유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은 불매운동 여파로 대리점 매출이 줄면서 그 이듬해 대리점에 지급하는 수수료율을 2%가량 올렸다가 2016년에 다시 내린 바 있다.
남양유업은 대리점과 수수료율을 정할 때도 업계 평균 이상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한 대리점주들이 구성한 이익단체인 대리점협의회에도 매월 활동비 200만원을 지급키로 했다.
대리점 단체의 교섭권을 강화하기 위해 계약서상 중요 조건 변경 시 상생위원회 회의를 열어 협의 및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또한 본사가 공정거래법령 등을 위반할 경우 대리점 단체는 근거를 바탕으로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 공정거래법령 준수에 관한 감시·감독·권한을 갖게 됐다.
대리점 자녀를 위한 ‘패밀리장학금’도 2013년부터 시작했다. 현재까지 총 677명의 대리점 자녀를 대상으로 누적 9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대리점 출산·양육 제도도 마련했다. 기존 세 자녀 출산 대리점주 대상 300만원 지원 정책을 확대해, 자녀 수에 상관없이 출산할 때마다 50만원 상당의 ‘육아용품’ 지급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첫 손주 출산 시에도 동일 적용된다고.
장기근속 대리점 포상과 긴급생계자금 지원제도도 있다. 25년 이상 대리점주 대상 100만원 상당의 장기포상 시행-제주도 여행권을 지원한다. 현재 대상은 34명이다. 무이자 긴급생계자금 대출 제도를 통해 질병 및 상해로 인한 긴급 자금이 필요할 때 이용 가능하다는 게 남양유업 측의 설명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남양유업은 공정위 주관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서 2년 연속 최우수 등급 획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실적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1994년을 기준으로 영업적자를 낸 적이 없을 만큼 국내 유제품 상위 사업자로 안정적인 이익을 내던 기업이 2013년 약 174억의 적자를 냈다. 매출은 1조2298억원으로 전년보다 9.9% 감소했다.
그간의 만행에 대한 후폭풍은 당연한 결과라는 게 행간의 반응이었다. 2013년 실적 발표 당시 남양유업 측은 이익 감소의 주요인으로 대리점 긴급 지원에 200억원을 지출한 것이라며, 대리점 등과의 적극적인 상생협력을 통해 정상화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 그리고, 앞으로
불가리스 코로나19 항바이러스 효과 논란...홍원식 회장, 눈물의 퇴장
그간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함에 따라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수년간 이어져왔다. 심지어 바코드를 찍으면 남양유업 제품인지 아닌지 구분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
8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남양운동 제품 불매운동이 조금씩 잊히는가 싶었지만, 새로운 악재를 만나게 됐다.
사건 발생 직전 해인 2012년 1조3600억원의 매출과 63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적자 규모는 2013년 17억원, 2014년 26억원으로 커져갔다. 2015년엔 매출 개선과 함께 흑자 전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2018년 85억원에서 4억원대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771억원 적자 전환했다. 설상가상 최근 남양유업은 또 다른 논란에 휩싸였다.
2021년 4월 13일 한국의과학연구원이 주관하고 남양유업 및 대외 연구진이 함께한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이 열렸다.
앞서 남양유업 홍보전략실은 지난 4월 9일 '불가리스, 감기 인플루엔자(H1N1)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 확인 등'의 문구를 담은 홍보지를 30개 언론사에 배포하고 심포지엄 참석을 요청했다. 이어 지난 13일 29개 언론사 등을 대상으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음을 국내 최초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편의점과 마트에서는 불가리스 제품 불티나게 팔렸고, 남양유업 주가는 8% 이상 급등했다.
남양유업이 배포한 자료에는 “불가리스’ 발효유 제품의 실험실 실험 결과 인플루엔자바이러스(H1N1)를 99.999%까지 사멸하는 것을 확인 또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억제효과 연구에서도 77.8% 저감효과를 확인했다”고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이어 “주로 구강 및 비강을 통해 유입되는 바이러스의 특징을 고려시, 구강내 바이러스에 대한 억제효과를 가질 것으로 예상한다”는 결론을 냈다. 문제는 동물시험이나 임상시험 등을 거치지 않은 채 발표한 결과라는 것.
사태가 커지자 정부도 나섰다. 질병관리청이 불가리스의 연구는 사람 대상 연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코로나19 예방 효과에 대해 가능성을 일축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4월 15일 자사 발효유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남양유업은 4월 16일 관련 공식 입장문을 냈다. "발표 과정에서 세포실험 단계에서의 결과임을 설명했으나, 인체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아 효과를 단정지을 수 없음에도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는 내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남양유업은 같은 날 세종시로부터 세종공장의 2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 부과 사전통보를 받았다. 세종시의 행정처분이 확정되면 세종공장에서 생산하는 불가리스를 비롯한 분유, 유유 등 제품 생산이 2개월 중단된다. 이에 남양유업은 영업정지 시행 이전에 이들 협력사와 고객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4월 30일에는 경찰이 남양유업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남양유업이 불가리스에 대한 코로나19 억제 효과 발표한 경위와 허위 광고 의도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이쯤되자 남양유업의 입지에 대해 여러 목소리가 나온다. 제품 품질에 비해 마케팅에 무리수를 둔다는 것. 한창 전염병으로 예민한 시국에 인체에 검증되지 않은 효과를 특정상품을 내세우며 홍보한 것이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남양유업은 5월 3일과 4일, 이광범 대표이사에 이어 홍원식 회장까지 사퇴하며 철저한 반성을 다짐했다. 홍원식 회장은 경영권 세습 포기까지 선언하며 눈물을 흘렸다. 불가리스 사태가 불거진 지 3주 만에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것. 하지만 8년 간의 암흑기는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높다.
한 기업의 실적은 얼마나 좋은 제품을 내놓느냐에 따라 소비자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하지만 기업 이미지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이제 남양유업은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지에 내몰린 남양유업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관건이다.
김지우 기자 market@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