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 대비 5배 증가…금리인하 기대
금투업계 채권개미 모시기 '구슬땀'
“주식 같은 투자 트렌드로 자리매김”
<녹색경제신문>이 창간 13주년에 맞춰 <녹경 빅픽처> 시리즈 기획을 진행합니다. 우리나라가 향후 차세대 첨단산업 등을 선점하기 위한 미래성장동력의 '큰 그림(Big Picture)'을 그려보자는 취지입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뉴노멀(New Normal), 엔데믹(Endemic) 등 시대 변화는 물론 '한류(Korean Wave, Hallyu)' 확산에 따른 AI(인공지능), 로봇, 미래차,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K-인더스트리(K-Industry) 전반의 시너지까지 고려한 기획입니다. <녹색경제신문>이 어려움 속에서 성장해왔듯이 대한민국 기업들이 글로벌 위기 극복을 넘어 큰 도약으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註)]
K-채권(원화채권)에 개인 투자자들이 모인다. 금리 정점 기대감에 이자수익과 매매차익을 노린 수요다. 작년 개인투자자들의 채권 순매수액은 전년 대비 5배 늘어났다. 연초 이후 매수세도 거침없다. 4개월 연속 순매수액 3조원을 넘겼다.
금융투자업계는 채권개미 모시기에 분주하다. 직접 엄선한 채권을 판매하는가 하면, 이전에 없던 채권형 펀드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기업 자금조달 과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금융 및 산업계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는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거래액은 총 24조9478억원으로 전년 대비 92%(11조9621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주목할 점은 순매수액이다. 개인 채권 순매수액은 21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4조5000억원 대비 약 5배 늘어난 모습을 보였다. 기관, 외국인을 포함한 전체 순매수액이 13.5%(79조8225억원)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금리인하 가능성에 매매차익 기대...단기채 보다 수익률 높은 장기채에 몰려
이러한 매수세는 해를 넘도록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4월 개인 채권 순매수액은 4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93%(3조1320억원) 불어났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의 금리인상 절차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이자수익과 매매차익을 모두 노릴 수 있는 점이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것으로 풀이된다.
작년 연말 금융당국이 은행권 수신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면서 대체재인 채권이 떠올랐다. 5%대 시중은행 예·적금 상품이 자취를 감춘 가운데 작년 말 회사채(무보증 3년) ‘AA-‘, ‘BBB-‘ 등급 수익률은 각 5.231%, 11.166%를 기록했다.
연초 들어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매매차익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채권은 금리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면서 금리인하 시 수익률이 올라가는 구조다.
매매차익을 노린 수요는 단기채보다 수익률이 높은 장기채에 몰리는 모습을 보였다. 만기 20년 국채인 ‘국고채 19-6(국고 01125-3909)’는 7일 종가 기준 작년 10월 저점 대비 수익률 18.4%를 기록했다.
미국, 일본 등 해외보다 국내채권이 더 인기다. 지난해 한국거래소에 상장한 국내, 해외채권 ETF(상장지수증권) 일평균 거래대금은 각 3722억원, 19억원으로 200배 가까이 격차가 났다. 국내 채권형 ETF 거래대금이 전년 대비 13.3%(1639억원) 늘어난 반면 해외는 0.1%(13억원) 내렸다.
해외채권과 비교해 금리 경쟁력이 높고, 환율 등 변동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점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일 해외채권 투자 시 환율 변동에 유의해야 한다는 공문을 내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러한 채권개미 모시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국내 증권사는 직접 선별한 채권을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장외채권 서비스를 확대했다. 증권사별로 취급하는 채권이 다른 만큼 상품조달 능력이 경쟁력으로 부각됐다.
한국투자증권은 투자자들의 수요에 발맞춰 만기 5년 이상 장기채권 비중을 지난 1분기 동안 15%p 늘렸다. 같은 기간 신용등급 ‘A-‘부터 ‘AAA+’ 등급 우량 회사채 비중을 전체 중 99%까지 확대했다.
회사는 자체 신용으로 발행하는 발행어음 리테일 판매에 나섰고 흥행에 성공했다. 작년 토스뱅크와 4.3% 금리(6개월)로 내놓은 상품은 출시 4일 만에 완판됐다. 이러한 노력에 지난해 연간 소매채권 판매액 34조원을 기록했다. 4월 말 기준 연초 이후 판매액은 약 13조원이다.
한국투자증권 김성환 개인고객그룹장은 "최근에는 채권에 한 번 투자를 경험한 고객이 재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양한 채권을 시장 상황에 맞춰 빠르게 공급하고 관련 상품에 대한 일선 직원 교육을 확대하는 등 개인 투자자의 관심 증가에 대응해 시장 경쟁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는 채권형 펀드상품 출시에 힘주고 있다. 공모펀드보다 투자접근성이 높은 ETF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만기존속형, 단일·소수종목 ETF 상품 출시를 허용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에 탄력이 붙고 있다.
지난 한 해 거래소에 신규 상장한 채권(주식혼합형 포함) ETF는 총 34개로 전체 신규종목 중 24.4%를 차지했다. 국내 채권형 ETF에는 같은 기간 3조8063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작년 대비 4배 넘게 증가한 크기다.
가장 큰 흥행을 거둔 상품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로 작년 말 기준 순자산 3조3340억원으로 전체 666개 종목 중 2위를 차지했다. 지난 2월에는 순자산 5조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펀드는 금융투자협회가 매일 고시하는 CD(양도성예금증서) 91일물 수익률을 추종한다. 매일 이자가 복리로 쌓이고, 은행 예금과 달리 쉽게 현금화가 가능해 파킹형 ETF로 주목받는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김남기 ETF운용부문 대표는 “금리 인상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는 상품으로 일반적 파킹통장이나 예·적금과 달리 복리 효과까지 누릴 수 있어 경쟁력이 높다”며 “앞으로도 투자자들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자세로 장기 투자에 적합한 상품을 발굴해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ISA 비과세 대상 금융상품에 회사채 추가...신용등급 낮은 비우량채에 세제혜택 지원
이달 한국투자증권이 카카오뱅크와 새롭게 손잡고 발행어음 거래 서비스를 출시하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미국 채권 투자 ETF 2종을 신규 상장하는 등 채권 투자수요를 노린 금투업계의 노력은 거듭되고 있다.
다만 채권 투자 시 고려해야 할 위험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자차익을 노릴 경우 관련 소득에 대한 15.4% 과세를 고려해야 한다. 매매차익은 금융상품 관련 거래, 환매수수료가 관건이다.
최근 매크로 환경이 채권 가격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점도 변수다.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 Fed)은 7월 기준 금리인상을 시사했다. 패트릴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1일 “이번 (6월) 회의에서 우리는 금리인상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건너뛰어야 한다는 쪽에 있다”고 밝혔다.
난항을 겪던 부채협상이 극적 타결됐으나 미국 재무부가 현금보유액을 확보하기 위해 단기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 연준이 양적긴축을 시행하는 만큼 공급발 가격하락이 예측되는 지점이다.
다만 이러한 변동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신영증권 박소연 연구원은 "단기간에 금리 인하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동결이 예상돼 금리 추가 상승도 제한적일 것"이라며 "국채 장기물은 분할 매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한국 채권에 대해선 ”6∼7월 한국은행의 매파적 스탠스와 3분기 중순까지 수급 잡음을 반영한 금리 상승을 투자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같은 개인 채권 매수세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과정에도 도움을 주는 등 예상 밖 효과를 내기도 한다. 지난달 한국토지신탁은 기관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을 기록했으나 개인 리테일 수요에 힘입어 되레 300억원을 증액 발행했다.
정부도 시장 안정화를 위해 이러한 채권개미의 힘을 빌리고 있다. 정부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대상 금융상품에 회사채를 추가했다. 또 신용등급이 낮은 비우량채에 대한 세제혜택(분리과세)을 지원한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채권시장은 기업 자금 조달의 일차적인 통로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회사채에 인센티브를 줘서 개인투자자의 투자를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이전에도 금리가 내린 적은 있지만 채권에 대한 수요가 이렇게 높진 않았다. 재테크 방식이 이전보다 넓어진 것이 체감된다”며 “우리 회사를 찾는 고객도 작년보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주식처럼 채권도 하나의 투자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