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이어폰, AI스피커, 무인자동차 등 소프트웨어 기업 넘어서려는 노력 지속
삼성 등 안드로이드 진영 파트너들과 관계 악화에도 플랫폼, OS 발판으로 하드웨어 시장 공략하는 이유는 빅데이터, 생태계 구축
지난해 직원 채용하는 등 픽셀6 한국 출시 준비한다는 소문 돌아 … 5G 테스트베드 vs. 통상적 활동
구글이 올해 플래그십 스마트폰 차기작 ‘픽셀7’과 첫 폴더블폰 ‘픽셀 노트패드’를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그동안의 픽셀 시리즈가 운영체제(OS)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생산함으로써 ‘구글이 생각하는 안드로이드’를 제시하는 정도였다면 올해는 폴더블폰까지 내놓으며 명실상부한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올라서겠다는 포부로 해석된다.
픽셀7·픽셀 노트패드로 ‘MS의 꿈’ 이룰까
OS를 제공하는 기업이 하드웨어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운영체제를 통해 세계 컴퓨터 시장을 장악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실패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운영체제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비교적 이른 시점인 2003년부터 스마트폰 OS ‘윈도우 모바일’을 내놓았고, 윈도우 모바일의 성공을 위해 ‘노키아(Nokia)’를 인수하며 스마트폰 제조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윈도우 모바일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설계되어 유료로 배포되었기 때문에 무료인 안드로이드 OS에 밀릴 수밖에 없었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스마트폰 관련 사업은 침몰하게 된다.
그런 마이크로소프트도 최근 다시 태블릿 시리즈인 ‘서피스’를 출시하고 있고, 안드로이드 OS를 장착한 스마트폰 ‘서피스 듀오’까지 내놓은 상황이니 하드웨어 사업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은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라 할 만하다.
2005년 작은 신생 기업이었던 안드로이드를 인수한 후 무료 오픈소스를 무기로 스마트폰 OS 시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려온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처럼 하드웨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구글은 스마트폰 외에도 무선이어폰, AI스피커, 무인자동차 등 다양한 하드웨어 시장에 진출해있다. 검색 엔진으로부터 OS에 이르기까지 소프트웨어 시장에서의 압도적인 강점을 발판 삼아 하드웨어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들이 원하는 결과는 애플과 비슷한 모델로 보이기도 하지만, 윈도우와 안드로이드 모두 애플의 iOS·맥OS보다 범용성이 훨씬 높은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성공하기만 한다면 수익성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객과 경쟁하면서까지 이루려는 꿈은 빅데이터 확보와 생태계 구축
이렇게 구글이 하드웨어 제조에 나서면서 그동안 구글과 협력해온 제조업체들과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의 경우 구글이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OS를 사용해온 수많은 기업들 입장에서 구글이 경쟁자로 등극하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드로이드 진영의 ‘맏형’격인 삼성전자다. 삼성은 자체 OS인 ‘타이젠’의 실패 이후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하고 있고, 갤럭시 워치에는 구글이 타이젠과 안드로이드를 통합해 개발한 ‘웨어 OS’를 도입했다. 하지만 구글이 하드웨어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이러한 동맹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비록 구글이 퀄컴 등으로부터 독립해 자체 칩 개발에 나서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와 협력했지만, 파운드리 업체이자 AP 생산업체이기도 한 삼성전자에게 이 역시 긍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구글이 ‘안드로이드계의 애플’이 될 경우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업체들은 스마트폰 사업과 AP 사업 모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글이 이런 긴장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하드웨어 시장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스마트폰이나 각종 하드웨어 기기가 수익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위험을 감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구글이 오픈소스 기반의 개방형 시스템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보기도 한다. 구글-안드로이드-픽셀 등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냄으로써 장기적인 수익을 보장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애플이 OS와 하드웨어의 편리하지만 폐쇄적인 생태계를 구축해 장기 고객을 확보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빅데이터 수집의 확대가 꼽힌다. 사용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매일 지니고 다니며 각종 활동에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OS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 다양한 하드웨어를 판매할 경우 고객의 일상을 더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픽셀 한국 상륙’ 소문만 무성 … 아니 땐 굴뚝일까?
업계에서는 지난해 픽셀6 출시를 앞두고 구글이 한국에 픽셀을 출시하려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구글이 통신사와 협력 경험이 있는 국내 개발 인력을 모집했고, 국립전파연구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몇몇 기기의 전파 인증을 신청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하던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그 공간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나름의 현실적인 분석도 소문의 신빙성을 더했다. 한국이 IT 강국으로서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5G 테스트베드’로 한국을 선택할 수 있다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현실적인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할 때 픽셀6이 아닌 1년 후 픽셀7을 대비한 포석이라는 평이 많았고, 결국 픽셀6은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다.
직장인 SNS 앱인 ‘블라인드’에는 구글 내부 직원이 이러한 소문에 대해 “모집된 개발 인력은 어느 현지 사업에서나 늘 선발해온 정도의 조건이고, 전파 인증은 내부 실험용이지 출시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는 취지의 댓글을 남겨 픽셀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기도 했다.
한 국내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전파 인증은 꼭 판매 목적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유로 신청을 하기 때문에 전파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출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구글 픽셀 출시에 대해 전달받은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구글의 픽셀을 사용하는 방법은 개인이 해외직구로 구매하는 방법뿐이다. 다만 이 경우 국내 전파인증을 받고 정식 출시된 스마트폰이 아니기 때문에 VoLTE(Voice over LTE, LTE 망을 이용한 음성통화 기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어 통화 품질이 떨어질 수 있고, 일반 통화를 지원하지 않는 LG유플러스 이용자의 경우 통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판매는 허가되지 않기 때문에 중고 시장에 재판매할 경우 불법이 된다.
다만 구글이 올해 하반기 소문대로 폴더블폰까지 출시하며 스마트폰 사업에 본격적으로 투자한다면 삼성전자의 안방이자 5G 선도국가인 한국도 충분히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픽셀이 한국에 출시될 것인가는 어쩌면 그 자체로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구글이 스마트폰 대량 생산 및 전 세계적인 출시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플랫폼 기업에서 하드웨어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공룡’으로 거듭날지 여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시금석일 수는 있다. 구글의 스마트폰 사업이 실험의 수준에 그칠지, 아니면 새로운 시장을 여는 열쇠가 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준용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