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대다수 예외모형 선택할 것이라는 우려에 방침 급변... 사실상 원칙모형 적용 강요
보험업계 "금융당국, IFRS17의 제1전제인 자율성 간과하고 있어"
[녹색경제신문 = 이준성 기자] 보험업계가 금융당국이 제시한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개편안'을 두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당국이 개편안 적용에 있어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당초 방침을 며칠 만에 뒤집고 사실상 원칙만을 강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상당수의 보험사는 지난 7일 당국이 내놓은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개편안의 원칙모형 적용을 검토 중이다. 무·저해지 보험은 보험료 납입 기간 중 해지 시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대신 일반 보험상품보다 보험료가 10~40% 저렴한 상품으로, 만기 전 예상 해지율이 높을수록 보험사의 기대 이익이 상승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간 보험사들은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높게 가정해 실적을 부풀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당국이 개편안을 제시하며 교통 정리에 나선 이유다. 올 연말 결산부터 무·저해지 보험의 납입 중 해지율 산출 시 완납 시점 해지율이 0.1%에 수렴하는 원칙모형을 적용하되,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면 예외모형을 채택할 수 있다는 것이 해당 개편안의 핵심이다.
그러나 제한적으로나마 예외모형을 허용하겠다던 당국의 방침은 며칠 만에 급변했다. 사실상 원칙모형 적용만을 인정하겠다는 자세가 됐다. 대다수의 보험사가 실적 쇼크를 피하기 위해 예외모형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자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지난 11일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주요 보험사 경영진 등을 만난 자리에서 "주주와 임기제 경영진간 이해가 상충되는 회사만 예외모형을 선택할 것으로 본다"며 "합리적 선택이 아닌 경영진 실적 유지를 위한 자의적 모형선택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의 실적 악화를 감추고자 예외모형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추정할 때 원칙모형이 아닌 예외모형을 적용하는 회사 중 원칙모형과의 보험계약마진(CSM) 차이가 큰 회사는 2025년도 우선 검사대상으로 선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원칙모형을 적용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각 보험사에 경고를 보낸 셈이다.
이처럼 당국이 예외모형 선택을 자제하라며 강력하게 압박하자 보험사들은 혼란 속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당국이 지난해 도입된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의 '제1전제'인 자율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이전까지 예외모형 채택을 검토하던 몇몇 보험사는 당국의 압박에 원칙모형 적용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각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자사에 적합한 계리적 가정을 적용하는 것이 IFRS17 체제의 근본 원칙"이라며 "금융당국을 보면 짜장면, 짬뽕, 볶음밥 중에 짜장면만 시키라고 심하게 눈치를 주는 부장님이 떠오른다"고 전했다.
이어, "당장 밀가루 못 먹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원칙모형 적용 시 자산이나 자본 규모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소형사는 물론이고 일부 대형사도 실적과 건전성 등에 불가피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IFRS17 도입 이후 매년 가이드라인이 나오고 있다"며 "IFRS17의 대원칙인 자율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예외모형을 택한 보험사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모든 보험사가 원칙모형을 적용한다면 무·저해지 상품의 보험료는 오를 수 밖에 없다"며 "보험사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는 잦은 제도 변경이 소비자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준성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