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재정삭감 강조…경기부양책 위축 되나
미국 정부가 재정 지출 한도를 넘기면서 1년 만에 국가부도(디폴트) 우려가 재점화됐다. 이전과 다른 문제는 경기침체 우려와 맞물려있다는 점이다.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만큼 협상 과정에서 바이든표 경기 부양책이 고꾸라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각)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미 의회에 서한을 보내 비상조치(Extraordinary Measures)에 돌입했음을 밝혔다. 지난 13일 협조 요청서를 보낸 지 1주일여 만이다.
옐런 장관은 ”(비상조치 등에 따른)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은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전 세계 모든 거래에 사용되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역할을 분명히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정부는 의회가 정한 부채한도를 넘으면 국채발행 등을 통한 자금조달이 불가능해진다. 1900년 초반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을 경계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 때문이다.
현재 미국 정부의 부채한도(debt limit)는 31.4조 달러다. 지난 10일 31조 달러를 넘으며 임계치에 도달한 상태다.
부채한도를 넘을 경우 정부는 비상조치를 시행하게 된다. 공무원 기금, 우체국 건강보험기금 등 주요 3개 기금에서 자금지급 중단 등으로 마련한 재원을 사용한다.
이마저도 바닥이 나면 만기가 도래한 부채를 갚을 수 없게 된다. 국가부도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2011년 부채한도 조정을 둘러싼 의회 대립에 70년 만에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기도 했다. 당시 충격으로 미 증시(S&P500)는 3달간 약 20% 하락하기도 했다.
부채한도는 의회가 지정한 만큼 의회만이 풀 수 있다. 현재 공화당 측은 지출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대신 재정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경기침체 우려에 경기부양을 위한 지출을 줄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협상 주도권은 공화당 하원의장이 쥐고 있다. 케빈 메카시 공화당 의원은 15번의 투표 끝에 부채한도 상향 조정에 반대하는 조건으로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섣불리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 어려운 위치다.
이미 칩 로이 등 일부 공화당 의원은 민주당과의 타협 시 메카시 의장의 해임안 제출을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메리츠증권 이종빈 연구원은 “2021년은 민주당이 상, 하원을 장악해 예산조정권으로도 한도를 증액할 수 있었던 반면 지금은 표면상 미 하원과 원만한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며 “(메카시 의원의 선출조건이) ‘지출 삭감 없이 부채한도를 높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21년 연말 공화당, 민주당 양당이 줄다리기 끝에 파국을 피해 갔듯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협의안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경기부양책 등에 쓰이는 정부 재정지출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 미 경기둔화 회복속도가 더뎌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다.
대신증권 이다은 연구원은 “미국의 디폴트 사태 이후 경제적 충격을 감안하면 미국 부채한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재차 상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한도 상향 조정 이후에도 제한적인 재정지출 가능성을 감안할 경우 과거처럼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강한 경기 부양책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