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원화 SLB 발행 0건…"과제 만만치 않아"
지속가능연계채권(SLB)이 주눅든 ESG 채권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SLB는 지난해 ESG 채권 중 유일한 성장세를 띠는 등 차세대 지속가능채권으로 주목받는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원화 SLB가 발행된 적 없는 등 첫발도 제대로 못 뗀 상황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SG 채권은 전년 대비 19% 감소한 발행량 8630억 달러(1070조원)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첫 하락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정책에 나서면서 크레딧 시장 전반이 위축된 영향이 크다.
전통적인 ESG 채권 3형제(녹색·사회적·지속가능채권)가 모두 위축된 가운데 지속가능연계채권만 전년 대비 21% 증가하는 오름세를 띠었다.
지속가능연계채권은 사전에 설정한 지속가능 목표(KPI) 달성 여부에 따라 지급금리가 달라지는 구조의 ESG 채권이다. 친환경 기업이 아니라도 개선을 위해 조달자금을 사용할 수 있으며, 환경·사회적 목표 달성여부에 따라 지급금리가 달라져 그린워싱 우려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지난해 9월 한국거래소 ESG 채권플랫폼에 SLB 세그먼트가 개설되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발행 기반을 마련하는 추세다.
현대차증권 이화진 연구원은 “(SLB는) 투자자 입장에서 명확한 목표, 사후 보고, 그린워싱 리스크에 대한 추가 이자 수익의 장점이 있다”며 “적격 프로젝트가 없거나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금액이 크지 않아 ESG 채권발행이 어려운 기업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된다”고 말했다.
국내 ESG 채권시장은 그간 양적 성장을 지속해왔지만 질적으로는 부족함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ESG 채권 중 절반 이상이 사회적 채권에 치우쳐 있으며 이마저도 대부분 민간이 아닌 공공기관 발행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다.
한국거래소 사회책임투자채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사회적채권 발행량은 45조6723억원으로 전체 중 79%를 차지했다. 주요 발행주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장학재단 등 공공기관으로 지난 한 해 LH가 발행한 사회적 채권은 665종, 잔액 104조원으로 전체 중 66%를 차지한다.
지속가능연계채권 발행이 물꼬를 틀 시 이 같은 공공적 성격과 거리가 먼 민간기업들의 참여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일찍이 SLB 발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1일 만기 5년, 10억 달러 규모의 지속가능연계채권을 발행했다. 탄소배출량 집약도를 2020년 실적 대비 57%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으며 이를 미달성할 시 금리 75bp(1bp=0.01%p)를 상향 조정한다.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리며 SK하이닉스는 금리를 최초 제시금리 대비 0.4%p를 낮추기도 했다.
다만 아직까지 원화 SLB는 발행된 적 없다. 이미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등 3대 신용평가사들이 SLB 채권 인증 평가기준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발행 여건이 부족한 탓이다.
인증 및 평가방법 고도화 밖에도 중요한 문제는 데이터베이스다. 지속가능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비교검증하기 위해선 국내기업들의 ESG 데이터가 필요하다. 다만 우리나라는 지속가능성 정보 공개를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만큼 이러한 정보기반이 부실한 편이다.
지속가능 목표가 달성하기 쉽게 설정되거나 또는 과도하게 책정돼 기업의 대응동기를 낮추는 등의 ‘SLB 워싱’이 가능한 지점이다.
이에 자본시장연구원 최순영 선임연구위원은 “SLB의 국내 도입은 녹색채권 발행과 민간기업 참여가 부족한 국내 ESG채권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SLB가 국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기반 여건과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며 “무엇보다 SLB가 국내 시장에서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해주기 위해서는 초기 시장 신뢰의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