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누적 60조원 규모 감세정책 추진
“영국은 우리와 다른 방향”…재정건전기조 강조
단 복지예산 감축우려에 야당 반대 산 넘어 산
“영국은 열흘 만에 감세 조치를 철회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초부자 감세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영국이 열흘 만에 부자감세안을 철회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정책을 둘러싼 잡음이 확대될 전망이다. 영국 정부는 주로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연간 72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물가상승, 재정난 우려에 이를 급히 철회했다. 이 기간 중 영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이 한 단계 강등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최고 법인세율 인하, 주식양도소득세 면제 한도 확대 등 추정 60조원 규모의 세제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과 비교해 재정여력이나 재정준칙도입 등 지출 구조조정 계획에 있어 차이가 뚜렷하다. 그렇다고 모든 우려가 사라진 건 아니다. 특히 복지예산 축소를 우려한 야당 측 반대에 개편안 통과여부가 불투명하다.
영국 총리, 부자감세 철회…금융충격 우려에 한 발 물러나
리즈 트러스 영국 내각이 현지시각 3일 대규모 감세정책 추진을 철회했다. 금융위기 우려 때문이다. 리즈 총리는 지난달 23일 연 소득 15만 파운드 이상에 대한 소득세율을 5%p 낮추는 안을 발표했다. 이로 인한 감세효과는 연간 450억 파운드, 우리 돈 약 72조원으로 추정됐다.
발표 직후 정책을 둘러싼 우려가 확산됐다.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세수가 감소하면서 재정난을 겪을 것이란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 27일 성명을 내고 “물가압력을 고려할 때 현시점에서 대규모 재정 패키지를 권장하지 않는다”는 이례적인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30일 영국 국채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며 이러한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이 영향으로 미 달러화 대비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인 1.03달러까지 추락했다. 이른바 ‘파운드화 쇼크’에 리즈 총리는 결국 이달 감세안을 철회했다.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은 3일 자신의 SNS에 “45% 세율 폐지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에 따라 영국이 직면한 도전 극복을 위한 우리 임무가 산만해졌다”고 밝혔다.
영국 유턴에 한국은…여야 부자감세 두고 정면충돌
영국의 부자감세 유턴사례는 비슷한 정책을 추진 중인 윤석열 정부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러한 감세정책이 윤 정부에서 추진하는 물가안정 및 재정건전화 정책과 모순이라는 지적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윤 정부가 추진하는 대표적 부자감세 정책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다. 기업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5%에서 22%로 낮추는 안으로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확정됐다. 법인세 인하 외 주식 양도소득세 면제 기준 상향,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중과 폐지 등이 윤 정부의 주요 부자감세 정책으로 꼽힌다.
민간 공공재정 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가 추정한 이로 인한 향후 5년간 누적 감세액은 60조원으로 추정된다. 감세분만큼 시중에 돈이 풀리며 물가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며, 세수감소에 따른 재정여력도 악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만 영국과 국내상황을 단순 비교하기엔 차이가 크다. 영국과 비교해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을 절반가량으로 낮다. 전년 기준 영국 95.9%, 한국 42.6%다.
추경호 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국감에서 영국의 유턴사례를 두고 “소위 말하는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무리한 정책”이라면서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국내와 상황이 다름을 강조했다. 되레 5일에는 “영국이 감세정책을 고민했을 때 대한민국에서 8월에 제출한 감세안을 참고했으면 이런 사태가 안 났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정부는 감세가 경기부양을 이끌어 결과적으로 더 큰 세수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추 부총리는 지난 8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분명히 기업의 투자 여력을 키우고 투자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조금 세수가 감수되더라도 이들이 우리 경제의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고 세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야당은 줄어든 세수만큼 복지예산이 감축될 것이란 우려에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감세와 재정준칙을 동시에 도입할 경우 지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이 부분이 복지예산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169석 다수당인 만큼 민주당의 동의가 없으면 세제 개편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2일 위원총회를 열고 이러한 초부자 감세에 대한 반대입장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초강수를 두고 있다. 이날 박홍근 원내대표는 “미국 바이든 정부는 법인세 최저 세율을 도입했고, 억만장자 부유세 신설도 고민하고 있다. 독일·영국·EU(유럽연합) 등은 횡재세 도입을 추진 중”이라며 “민주당은 법인세 인하 등 60조원에 달하는 초부자 감세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우리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 국면에서 야당으로서는 정부의 잘못을 시정하는 역할에 주력해야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최대 다수당으로서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된다는 측면도 있다”라며 “우리가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으로서 최소한 개악은 막을 수 있다”고 반대의사를 거듭 밝혔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