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된 통화정책’ 유로존, 두 번째 시험대 오른다…제2 재정위기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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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된 통화정책’ 유로존, 두 번째 시험대 오른다…제2 재정위기 오나
  • 김윤화 기자
  • 승인 2022.06.21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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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앙은행, 11년 만에 금리인상 예고
남유럽 국가 10년 전보다 재정 더 악화
유로존 회원국 간 국채금리 격차 확대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위기가능성 농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출처=ECB]

“2012년 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며 ‘유로존 재정위기’가 10년 만에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코로나19를 통과하며 남유럽 국가 재정은 10년 전보다 더 악화됐다. 제2의 디폴트를 우려한 투자자들은 국채를 내던졌고 이탈리아 국고채 금리는 8년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19개국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ECB 체제도 위협받는다. 통화정책이 ‘따로 노는’ 금융분열 현상에 ECB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분열방지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한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계획은 부재한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까지 더해진 유로존에 ‘암운(暗雲)’이 드러워졌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유로존 11년 만에 금리 올린다…통계 작성 이후 물가 최고치


지난 달 기준 유로존 물가상승률 1년 추이. [출처=트레이딩이코노믹스]

유럽중앙은행이 이달 초 11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현지시각 20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오는 7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할 예정”이라며 이러한 의사를 재확인했다.

지난 2016년 3월 이후 ECB는 6년 여간 제로금리(0.00%)를 유지하고 있다.

ECB가 기존 정책방향을 튼 결정적 이유는 ‘물가’ 때문이다. 5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8.1% 올랐다. 97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이에 라가르드 총재는 “9월 더 높은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며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 가능성도 열어뒀다.

더군다나 최근 미국이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밟으며 정책적 여유도 부족해졌다. 달러강세에 밀려 유로화 가치는 5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왔다.

SK증권 신얼 연구원은 “인플레이션발 쇼크에 의한 금융 및 실물경제의 급변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ECB의 물가대응 차원의 정책이 요구된다”며 “다급한 금리인상 시그널은 불가피했고 물가에 민간함 통화당국 태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10년 전보다 더 악화된 남유럽 재정…금융분열 리스크 높아져


이탈리아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출처=트레이딩이코노믹스]

11년 만의 금리인상에 제2의 ‘유럽 재정위기(Eurozone crisis)’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2012년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는 등 남유럽 국가전역에 연쇄적 재정위기가 일어난 적 있다.

이러한 우려가 나오는 첫 번째 근거는 2012년보다 악화된 남유럽 국가재정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50.8%로 10년 전보다 24.3%p 늘어났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각각 193.3%, 118.4%로 2012년 대비 31.3%p, 28.4%p 늘어났다.

두 번째 근거는 치솟는 남유럽 국채금리다. 지난 14일 ECB의 금리인상 예고에 남유럽 국채를 내던지는 투매현상이 일어났다. 더 나빠진 재정여력에 채무를 못 갚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지난 14일 이탈리아 10년물 국채금리는 4.17%까지 올랐다. 8년여 만에 최고치다. 이날 그리스, 스페인 10년물 금리도 4.65%, 3.18%까지 올랐다.

이 영향으로 유로존 회원국 간 금리격차가 벌어지며 ‘금융분열 리스크’도 높아졌다. 금융분열(fragmentation)은 하나의 통화정책이 국가별로 다른 영향을 주는 현상을 뜻한다. ECB 통합체제를 흔드는 직격탄과 같다.


ECB, 분열방지 프로그램 개발한다…“시행 전까진 금리격차 확대될 것”


루이스 데긴도스 ECB 부총재. [출처=ECB]

이러한 위기조짐에 유럽중앙은행은 즉각대응에 나섰다. ECB는 16일 긴급회의를 열고 펜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 만기 도래분을 재투자한다고 밝혔다. 주요 투자대상은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가 될 전망이다. 또 회원국 간 금리격차를 관리하는 도구(anti-fragmentation instrument)를 개발할 계획을 공개했다.

루이스 데긴도스 ECB 부총재는 “금융분열은 우리 집행위원회가 늘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라며 “(긴급회의에서 발표한 조치 등으로 미루어) 금융분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에 대해 시장은 어떠한 의심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조치로 지난 14일 25bp(1bp=0.01%p)까지 벌어졌던 독일-이탈리아 10년물 금리차는 최근 20bp까지 축소됐다.

다만 캐피탈이코노믹스 잭 앨런 레이놀드 선임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7월 정책회의에서 스프레드(금리격차) 관리도구에 대한 합의가 나올지 미지수이다. 이 도구가 나오기까진 금리격차는 지속적으로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가운데 유로존 위기우려가 단순한 기우라는 의견도 있다. 런던비즈니스대학 루크레치아 라이힐린 경제학 교수는 “유럽과 ECB 관점에서 우리는 이번 위기를 더 잘 대처할 위치에 서있다”며 “(과거 독일이 ECB 국채매입을 반대한 것과 같은) 여러 금기가 이미 깨졌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상황은 10년 전과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에 글로벌 경기침체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 이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경제학자 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중 44%가 향후 1년 내 경기침체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SK증권 신얼 연구원은 “위험신호의 부상과 함께 다가온 악재는 유로존의 경기 모멘텀 악화”라며 “아직 금리 인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물가상승세는 거침이 없다. 유로존을 둘러싼 암운은 보다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리스크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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