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힘 대표 만나 지원 요청했다지만 "이미 기울어진 판"
과거 PP 상대로 갑질, '황금알 낳는 거위' 믿고 안일한 경영한 결과라는 지적도
통신사 거대 자본이라며 비판, 공익성 말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나을 것 없어"
미디어 시장 재편 부정하기보다 적절한 지원 통해 연착륙 유도해야
유선방송사업자(SO) 시장이 IPTV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IPTV 점유율이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 기존 사업자의 점유율을 제친 가운데 케이블TV 업계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관심과 지원을 요청해 눈길을 끈다.
지역 중소 케이블TV업계 모임인 전국개별SO발전연합회는 19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통신 3사가 주도하는 IPTV가 휴대폰에 저가의 유선상품(인터넷, 방송)을 결합해 경품, 할인 등으로 케이블TV 사업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최근 논의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해 “IPTV 통신 3사의 결합상품 관련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고, 지역 중소 케이블TV가 이통3사와 상생할 수 있는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제 조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준석 대표는 케이블TV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인정과 함께 공정 경쟁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시장 자체가 이미 기울어져 ‘대세’를 막긴 어렵다”며 이 대표의 반응도 원론적 수준의 ‘덕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SO 시장 제패했던 케이블TV, IPTV로 몰락
과거 유선방송사업자(SO) 시장은 지역 기반의 케이블TV가 장악하고, KT스카이라이프 등 위성방송이 일부를 나눠 갖는 시장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케이블TV 사업에 대한 높은 관심과 정부의 육성 기조로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까지 인식됐지만, 인터넷·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TV 중심의 사업 전반이 위기를 맞았다. 여기에 지난 2009년 SK브로드밴드, KT 등 통신사업자들이 인터넷 기반의 IPTV(Internet Protocol TV) 상품을 출시한 후 인터넷·통신 요금제와의 결합 판매로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이면서 기존의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 '2021년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IPTV 가입자는 1854만명으로 전년 대비 8.2% 증가했지만 케이블TV 가입자 수는 1313만명으로 전년 대비 2.6% 감소했다. IPTV 가입자 수는 2017년 케이블TV 가입자 수를 넘어섰고, 마침내 20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유료 방송 가입자 수는 2019년 3303만 명, 2020년 3394만 명, 2021년 3510만 명으로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2021년 약 110만 명이 늘어난 것도 IPTV 가입자 수가 증가한 것으로, 케이블TV나 위성방송 가입자 수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일반 시청자들이 SO를 접하는 방법은 이렇다. 시청자가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지상의 송신탑을 통해 전파를 전달하는 지상파 방송(MBC, KBS, SBS, EBS)을 제외한 나머지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서는 접시 모양의 안테나로 인공위성으로부터 신호를 받는 위성방송이나 유선(케이블)으로 신호를 수신하는 케이블TV, 인터넷망을 통해 방송을 보는 IPTV 중 하나를 이용해야 한다.
1995년 케이블TV가 개국한 이후 채널이 늘어나며 시장이 확대되어왔고, 이 시장은 2009년 IPTV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실상 케이블TV의 ‘단독 무대’였다. 과거에는 케이블TV가 거의 독점 사업자라고 보아야 할 만큼 압도적인 상황이 지속되며 KT스카이라이프로 대표되는 위성방송이 일부 점유율을 갖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가 열리고 통신사들이 통신 상품을 앞세워 IPTV를 출시하면서 변화를 맞게 된다.
‘독점의 폐해’ 보여줬던 케이블TV, 뒤늦게 영세사업자 자처하지만 시청자들 반응은 ‘썰렁’
앞서 설명한 시장지배적 위치 때문에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Program Provider)에 대해 ‘갑’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이 기간 PP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케이블TV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무기 삼아 횡포를 부린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채널 편성권을 가진 SO는 채널을 통해 방송 콘텐츠를 공급해야 하는 PP 입장에서 갑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SO 사업자들은 PP 및 콘텐츠제공사업자(CP, Contents Provider)에게 소위 ‘갑질’을 하는 폐단이 자주 지적돼왔다. 특히 광고주나 대행사, 납품업체 등과 결탁해 무자료 거래를 통한 불법 및 부당한 자금을 만들고, 이를 다시 PP 및 CP가 SO 측에 행사비 등의 명목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자주 이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2006년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가 SO의 지역 독점화를 인정하는 정책 결정을 내리면서 한 지역에는 원칙적으로 1개의 SO만 존재하게 됐다. 때문에 아파트가 많은 한국의 특성상 아파트 단위로 사실상 케이블TV 계약이 강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주민들에게 가입을 종용하거나 탈퇴를 막기 위해 각종 편법적 수단이 동원되는 등 현장의 폐해가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케이블TV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지 못했기에 이번 이준석 대표와의 간담회에서와 같이 영세사업자를 자처하며 공정 경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이다. 통신사들이 상대적으로 거대 자본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케이블TV가 국가적으로 지원해줄 만한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지역 사업자로서 지역사회의 공익성에 기여해왔다는 케이블TV 업계의 항변도 과거 사실상의 강제 가입이나 해지 방해, 과도한 영업활동 등으로 반감을 갖게 된 시청자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공익성 증진 등) 그런 부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중요한 건 양질의 서비스를 좋은 가격에 공급했느냐 하는 부분인데 그런 면에서는 케이블TV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돌이킬 수 없이 기울어진 판”, “위기 자초한 것” 비판도 … 연착륙 고민해야
케이블TV 업계의 호소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재편이 마무리되어가는 시장 구조를 돌이킬 수는 없다는 시각이 많다. 통신사들의 IPTV 상품이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규제할 명분도 실리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케이블TV가 상대적으로 약자라는 결과만으로 시장을 다시 바꿀 만한 제도적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국회에서 논의되는 내용도 IPTV가 독과점이 되면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 너무 쏠리지 않게 적절한 지원을 하자는 정도의 취지”라며 “시장이나 산업 전반이 그렇게 된 걸 국회나 정부가 바꿔줄 수는 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전해왔다. 개별 사업자의 문제라기보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중심으로 콘텐츠 시장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면서 벌어진 구조적 변화라는 것이다.
케이블TV 업계가 ‘잘 나가던 시절’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준비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점적 지위에 취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영원할 거라고 착각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예상이나 경고가 없었던 게 아니다. 미리 연구하고 대비했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한 업계 관계자는 지적했다.
이 때문에 결국 국회를 중심으로 한 법적·제도적 지원도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최소한의 시장 다양성을 확보하고, 케이블TV 업계가 사업 다각화를 통해 다른 수익 경로를 확보하거나 안전하게 시장에서 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출구전략’ 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판을 바꾸기엔 늦었으니 연착륙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LG헬로비전, SK브로드밴드 등 케이블TV 사업을 인수한 통신사들과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 등은 전기차 충전소·알뜰폰 등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영세 케이블TV SO들도 인수합병을 통한 이합집산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IPTV로 급격하게 쏠린 유선방송 시장에서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이 어떤 생존전략을 구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준용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