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행동주이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절묘한 타이밍 포착에 삼성은 물론 현대차그룹도 긴장하고 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합병비율에 대한 문제제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지난 2일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대한민국 전임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의 배상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엘리엇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이를 공식화 했다.
지난달 23일과 30일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안이 주주들의 기대에 못미친다며 지주회사 구조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엘리엇은 "현대자동차의 주주로서 경영진이 발표한 자사주 일부 소각 및 추가 주식 매입 후 소각 계획이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이는 긍정적인 발전이기는 하지만 주주들이 경영진에 기대하는 바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이 보다 효율적인 지주회사 구조의 도입 뿐만 아니라 자본관리 최적화, 주주환원 개선, 그룹 전반에서 기업경영구조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채택할 것을 재차 요청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엘리엇은 지난달 4일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현대차그룹의 10억 달러 규모 보통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엘리엇이 정부 상대 ISD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은 현대차에 경고를 날린 것"이라며 "사실 삼성과의 관계는 소송을 통해 엘리엇의 패배로 일단락 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일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취지로 조사 결과를 통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기업가치를 의도적으로 높여 유리한 합병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장부를 고의적으로 꾸몄다는 의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다음날인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 결과를 전면 부인했다. 당국이 분식회계로 최종 판단할 경우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엘리엇의 ISD 제소 소식 하루만에 금감원의 삼성에 대한 조치가 전해지며, 엘리엇이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벌그룹들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정부의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린 상황에서 재계 1, 2위 그룹인 삼성과 현대차를 압박해 최대이익을 실현하기 적절한 시기라는 점이다.
특히 이미 종료된 것으로 여겨졌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을 다시 언급한 것은 현대차와도 오랜 기간 갈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압박용이라는 설명이다.
엘리엇이 문제삼는 것은 합병 비율이다. 총수 일가의 승계를 위해 시장가치가 적절히 반영된 합병비율이 왜곡돼 주주들이 손해를 본다는 논리다.
삼성 합병 당시 적용된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대 삼성물산 0.35였다. 당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구는 적정 합병비율을 1대 1.21로 봤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적당한 합병비율은 1대 0.46으로 추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대 0.35라는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기 위해 삼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통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였다는 것이 엘리엇의 관점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 하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밝히면서 0.61대 1의 합병비율을 제시했다.
현대차그룹은 순자산 가치 비율로 이를 계산했다.비상장회사로 간주되는 현대모비스 분할 사업 부문과 상장회사인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은 전문 회계법인이 자본시장법에 준거, 각각 본질가치 및 기준주가를 반영해 산정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한 회사를 상장지주회사인 현대차홀드코와 상장사업회사인 현대차옵코로 분할하고, 현대차홀드코가 현대차옵코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기아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홀드코 및 현대차옵코 지분에 대한 전략적 검토를 통해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기아차의 자본을 확충할 것도 요청하고 있다.
이같은 엘리엇의 제안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대규모 주주환원을 요구하고, 현대모비스 분할합병 비율에 대한 반대로 읽힌다.
한편, 검찰은 지난 2일 엘리엇의 관계자들을 소환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 지분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이른바 '5%' 룰을 어기고 몰래 지분을 늘린 것에 대한 조사 차원이다. '5%룰'은 유가증권시장 등에서 투자자가 해당 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했을 경우 이를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하는 규정이다.
백성요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