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합리적인 판단... 전체적인 맥락 고려 필요
'젠더 이슈'가 다시금 게임업계를 달구고 있다. 지난 메이플스토리의 '엔젤릭 버스터' 영상에서 남성 혐오를 상징하는 손가락 모양이 발견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이에 게임사들이 발 빠르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영상들을 비공개로 전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넥슨이 가장 발 빠르게,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넥슨의 PV 영상을 제작해오던 '스튜디오 뿌리'가 논란에 불을 지핀 '메이플스토리'를 비롯해 '블루 아카이브', '던전앤파이터'와 같은 게임 영상 제작에도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는 긴급 라이브 방송을 통해 "메이플스토리를 '유린'하게 두지 않겠다"라는 강한 워딩과 함께 회사 차원의 조치를 예고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넥슨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우선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9개 단체는 판교에 위치한 넥슨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넥슨이 ‘집단적 착각’을 근거로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넥슨은 착각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하는 상징의 특성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해외의 개구리 ‘페페’를 예시로 들어보자. 유쾌한 ‘밈’으로 사용된 해당 캐릭터는 점차 ‘혐오’의 상징으로 변질됐다. 인종주의자, 극우주의자 집단이 ‘페페’를 나치 상징과 결합시키는 등의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집게손가락도 마찬가지다. 이는 보통 양의 적고 많음을 표현하는 손동작이다. 그러나 '메갈리아’ 커뮤니티로 부터 말미암아 이는 넷상에서 ‘한국 남성의 작은 성기 크기를 비하’하는 제스처로 변질됐다. 당연히 타당한 맥락에서 사용되는 집게손가락 제스처는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장면에서 등장하는 집게손가락은 ‘혐오’를 위시한 욕설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논란이 된 영상들에서 표현된 집게손가락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맥락에서 쓰였다.
그렇기에 성별 문제를 떠나서, 불쾌함을 유발하는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이를 여성 혐오에 기인한 ‘마녀사냥’으로 판단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장혜영 국회의원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역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우선 장 의원은 넥슨이 올린 사과문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쩔 수 없다. 넥슨이 논란이 터진 당일 즉각 후속조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입장 표명보다 즉각적인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한 것은 당연지시다.
“고객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라는 비판도 그렇다. 회사는 '타겟층'을 겨냥한 제품을 팔아 가면서 몸 담은 직원들의 '밥그릇'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굴리는 존재다. 당연히 여론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일전에도 존재한다. 페이퍼게임즈의 '러브앤프로듀서'라는 게임이 있다. 해당 게임은 4명의 남자와 감정을 교류하는 여주인공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러브앤프로듀서'의 주 고객층은 여성이다.
여기서 '이택언' 캐릭터를 연기한 정재형 성우가 마이크를 내려 놓게된 일이 있었다. 본인의 X(舊 트위터) 계정에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나시'와 관련된 게시물을 게재한 것이 문제가 됐다. 해당 드라마가 포르노 업계에서 이름을 날린 '무라니시 토오루(村西とおる)'의 전기라는 점을 들어, 여성 유저들이 해당 성우가 성 착취물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연달아 제기했다. 이에 페이퍼게임즈는 성우를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했을 때, 다른 성별에 무작정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비판할 수 있겠다. 다만 이는 그만큼 게임 업계가 고객의 니즈에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를 소홀히 하거나, '니즈'를 오판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주는 예시는 게임 업계 밖에서도 찾을 수 있다. 버드와이저 사의 '버드라이트' 맥주는 20여년 동안 미국 내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국민 맥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올해 그 자리를 '모델로 스페셜'에게 뺏겼다. 트렌스젠더 인플루언서와 계약을 맺고 마케팅을 진행한 것이 악수로 작용했다. 버드라이트의 주요 고객층인 보수적 성향의 중장년 백인들에게 큰 반감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에 시달린 버드와이저는 마케딩 담당자를 교체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
이런 사례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어느 누가 같은 전철을 밟고 싶을까. 넥슨은 기업으로서 최선의 수를 놓고 있는 것 뿐이다.
더불어 장 의원은 “고객층 이전에 시민과 노동자의 기본권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고 언급했다. 당연한 말이다. 다만 이번 사태는 기업간 협업 과정에서 자의식에서 기인한, 사회적으로 민감도가 높은 심볼을 영상에 집어넣으면서 발생했다. 회사 평판에 큰 손실을 입힐 수 있는 행위다. 특히 보여지는 ‘이미지’가 중요한 게임업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리스크를 불러 일으킨 노동자에게 인사 조치가 내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넥슨이 이를 조장한 것도 아니다. 영상을 제작한 애니메이터에 대한 후속 절차는 외주 업체인 ‘스튜디오 뿌리’ 내에서 진행됐다.
따라서 이를 ‘도를 한참 넘은’ 백래시라고 평한 장혜영 의원의 언급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넥슨에 대한 비판은 전체적인 맥락을 배제한 체 여성 노동자에 대한 해고 조치라는 지엽적인 사실에 집중해 오판한 결과다. 이러한 소모적인 프레임 논쟁은 페미니즘에 대한 피로감을 부추길 뿐이다.
이지웅 기자 game@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