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살만 왕세자 중심 사우디 줄곧 앞서...이슬람교, 중동아프리카 기반
-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 구광모 등 재계 총수 앞장 서 유치전 전개 '솔선수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계가 앞장 섰던 2030 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전에서 부산이 충격적인 탈락을 했다.
부산은 28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진행된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29표를 획득, 119표를 쓸어담은 1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큰 격차로 패했다.
3위 이탈리아 로마는 17표를 얻었고 기권표는 없었다.
정부와 재계 등이 총력을 다해 외교전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왕권 강화를 위해 국민 충성·지지를 확보하는 일종으로 엑스포 등 대형 이벤트를 추진했다. 또 천문학적인 개발 차관과 기금을 주는 역할을 해서 금전적인 투표가 이뤄진 것이 주효했다.
김영일 중동전문가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중심으로 먼저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줄곧 앞서 나갔다"며 "더욱이 중동아프리카 맹주로서 지역적 기반은 물론 전 세계 적으로 이슬람교 국가가 많은 점, 신도시 '네옴시티' 후광효과 등이 승리 요인으로 꼽힌다"고 분석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에서 "국민들의 단합된 유치 노력은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한국 산업의 글로벌 지평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며 "각 나라들은 소비재부터 첨단기술, 미래 에너지 솔루션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한국과 파트너십을 희망했다"고 전했다.
이어 "부산엑스포가 제안한 문제해결(솔루션) 플랫폼은 '각 나라별 당면과제를 맞춤형으로 풀어보겠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세계인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다"며 "경제계는 정상들의 긍정적 피드백과 세계인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켜 한국과 지구촌이 공동 번영하는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인협의회는 논평을 통해 "전 국가적 노력과 염원에도 불구하고 좌절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비록 이번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정부는 물론 경제계, 국민 모두가 원팀이 되어 보여준 노력과 열정은 대한민국이 하나로 뭉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엑스포 유치 노력 과정에서 이뤄진 전 세계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 역시 향후 한국 경제의 신시장 개척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며 "엑스포 유치를 위한 노력과 경험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리더를 넘어 글로벌 리딩국가(세계 선도국)로 나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유치전 후발주자로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한 경쟁이었지만, 민관이 힘을 합한 '코리아 원팀'으로 추격전에 나섰다.
특히 재계는 국익을 위해 부산엑스포 유치전에 앞장 섰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민간위원회 구성부터 개최지 선정 투표까지 550일간의 여정을 살펴봤다.
지난 2021년 7월 세계등록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가 출범했다. 김영주 전 한국무역협회장이 유치위원장을 맡았고, 각계각층 인사 78명이 유치위원으로 나섰다.
재계 인사로는 당시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권오갑 HD현대그룹(옛 현대중공업)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도 유치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새로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직을 다시 꾸렸다.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롯데 등 경제계가 중심이 된 '부산엑스포 유치지원 민간위원회'가 출범했다. 최태원 회장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공동으로 유치위원장을 맡았고,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신세계, CJ 등 11개 기업이 위원회에 참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총수들이 위원으로 참여한 것.
각 그룹은 각각 중점 담당 국가를 선정해 교섭활동에 나섰다. 아프리카·개도국을 대상으로 사절단을 파견하고, 정부와 함께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등의 행사를 개최했다.
최태원 회장은 올해 초 미국 IT전시회 'CES'와 스위스 다보스포럼, 프랑스 파리 등에서 엑스포 주요 관계자들을 만났다. 또한 유럽 주요국을 돌며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호소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6월 BIE 총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에 목발을 짚고 등장했다. 발목 부상을 당해 깁스와 목발을 한 것. 이는 부산엑스포 유치에 강한 의지로 비춰졌다. 개최지 투표를 앞두고는 이달에만 중남미와 유럽 등 7개국 강행군을 했다. SK그룹 경영진도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에 힘을 보탰다.
이재용 회장을 비롯해 삼성 경영진 또한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전력을 다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부터 중남미와 유럽 곳곳을 돌며 부산엑스포 지지를 요청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영진도 세계 각국에 직접 가서 부산을 알렸다. 이재용 회장은 BIE 총회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27일 귀국하면서 감기가 걸려 쉰 목소리로 "다들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1년 8월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그룹 차원의 전담조직인 부산엑스포유치지원TFT를 구성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스위스 다보스포럼이나 G20 정상회의, BIE 총회 기간 등에 아트카를 투입해 유치 지원 활동을 지속했다. 정의선 회장은 미국, 유럽, 아세안 등 세계 곳곳을 돌며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요청했다. 정의선 회장은 특히 최태원 회장과 함께 BIE 투표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켰다.
LG전자를 중심으로 한 LG그룹도 부산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폴란드 총리를 직접 예방하고 부산엑스포에 대해 알렸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외교부장관 특사 자격으로 아프리카까지 가서 지지를 요청했다.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 사장은 파리에서 열린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국경일에 참석해 BIE 회원국 대사 70여명을 만나 지지를 요청했다.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한 롯데그룹은 전사적으로 부산엑스포 유치에 진심을 보였다. 신동빈 회장은 자신이 설립한 민간외교 단체 아시아소사이어티코리아 네트워크를 가동했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내 인맥을 풀가동했고, 일본은 투표를 며칠 앞두고 부산엑스포 공개 지지했다.
부산시는 부산의 뛰어난 역량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2035년 엑스포 유치에 다시 한번 나서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