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은 아직까지 ‘인간본성’ 탓
시스템 개선 포기한 패배의식
가장 큰 문제는 안이한 경영진 인식체계
우리금융그룹이 지난 20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작년 700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여 만에 공개된 첫 개선안이다. 전 직원이 내부통제 관련 업무경력을 갖추도록 하는 등의 ‘임직원 인식 제고 및 역량 강화’가 골자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금융 경영진(임원)들의 인식이 한참 제고되어야 할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열린 설명회에서 회사 경영진은 느닷없는 ‘인간본성론’을 꺼냈다.
작년 일어난 횡령사건에 대한 질의에 장광익 우리금융지주 부사장은 “촘촘한 시스템을 뚫고 사건·사고가 나는 걸 보면 인간의 본능이 무섭다는 것을 가끔씩 느낀다”며 “본능까지도 감지하고 잡아낼 혁신방안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재화 우리은행 준법감시인(상무)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는 “사건이 일어난 건 죄송스럽지만 조기에 발견해서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건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인간 본성을 못 이긴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미안하지만 회사 시스템에는 잘못이 없고, 지난 횡령 사건은 단지 인간 본성의 문제’라는 말이다. 당당했다. 두 경영진의 관점은 횡령 사건이 ‘터졌다’가 아니라 ‘잡혔다’에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다시 한번 짚어보자. 단지 한 직원의 악한 본성이 빚어낸 일탈이었을까.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를 보면 ‘촘촘하다’던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본점 기업개선부 직원 A씨의 횡령은 총 8년(2012~2020년)에 걸쳐 일어났다. 전체 8번의 횡령 중 4건은 윗선 수기결재를 받았다. 거액인 600억원을 3차례에 걸쳐 꺼내는 동안 이상거래 발견 모니터링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 사이 A씨는 외부파견을 간다고 허위 보고하고 1년간 무단결근했다. 이 기간에 A씨는 9000만원을 추가로 빼돌린다.
직원 A씨는 10년간 한 부서에만 근무했다. “10년이요?” 타 시중은행 현직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들은 한 명이 업무를 독점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시중은행은 내부 일탈을 막기 위해 2~4년 주기의 순환근무제를 시행한다.
내부통제는 그물 짜는 작업에 비유할 수 있다. 구멍이 촘촘할수록 물고기는 빠져나가지 못한다. 우리은행 그물에는 700억원 크기의 구멍이 난 셈인데 경영진들은 고래 한 번 낚았다고 ‘촘촘한 시스템’을 운운한다.
경영진들의 인식이 이러하니 결과는 뻔하다. 물고기가 또 새어나갈 수밖에. 지난 5월 우리은행 지점 직원은 고객 예금 7만 달러를 빼돌렸다. 코인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날 우리금융은 내부자 신고 포상금을 최고 10억원까지 상향 조정했다. 이 10억원이란 금액은 경영진들의 인식 때문인지 조직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직원에 대한 공로라기보단, 돈을 좇는 인간의 본성을 이용한 당근책으로 들린다.
직원들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된 제도는 결국 내부 불신만을 키울 수밖에 없다. 신고자는 돈 때문에 동료를 배신했다는 낙인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일까. 이미 하나은행, KB국민은행이 10억원 포상금을 내걸었으나 이들 은행의 내부자 신고 실적은 거의 전무하다.
내부통제는 기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물을 짜는 일은 고된 반복이다. 그동안 괜찮다고 생각했던 곳이 막상 들춰보니 찢어져있을 수 있다. 결국 반복해서 확인하고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 ‘인간본성’을 탓하는 건 이러한 작업을 사전에 포기해 버린 패배의식에 가깝다.
물론 우리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은행권 횡령사건을 취재할 때마다 내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내부통제가 잘 작동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답한다. 이들이 자평하는 동안 고객들의 불안함만 커져 나간다.
우리금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뚜렷하다. 지난 혁신안에서 발표했듯 ‘임직원 인식 제고 및 역량 강화’다. 가장 먼저 제고되어야 할 건 이러한 방안을 고안해 내고, 감독하는 경영진들의 인식이다. 문제는 악한 인간본성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태도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