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조항 부재…尹 정부 반여성정책에 묻혀가나
2022년 유리천장 지수 OECD 꼴등 망신
韓 남녀이사 비율 98 대 2…국회 법안개정 필요
지난 3월 국내 기업들의 정기주주총회가 열렸다. 최대 이슈는 단연 ‘여성이사’였다. 대기업들은 앞다퉈 여성이사를 선임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가 신규 선임한 사외이사 중 32.9%(68명)가 여성이었다.
이들은 갑자기 왜 여성이사를 선임했을까. 지난 2020년 통과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제165조20)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이사회를 하나의 성(性)만으로 구성해선 안 된다.
이때 하나의 성이란 남성이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이사회도 문제가 되겠지만, 브란튼베르그의 소설(이갈리아의 딸들)만큼이나 먼 이야기다.
법안은 2년 유예기간을 거쳐 이달 5일부터 시행됐다. 그런데 여전히 법안 적용기업 중 18%가 여성이사를 두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에 법안이 시행된 5일 “성별을 포함한 다양한 가치를 의사 결정에 반영하는 것은 처벌 여부를 불문하고 공공뿐 아니라 사적 영역에도 당연히 지켜야 할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어긴 기업은 어딜까. 주로 철강, 조선 등 중후장대 기업들이다. “마땅한 전문가가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그러나 2년이란 기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무얼 했는지 의문이다.
최근 이들 기업 중 한곳에 문의한 적이 있다. 자본시장법이 곧 시행되는데 임시주총을 여는 등 대응방안에 관해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게 뭔가요?”였다.
우리나라 유리천장지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다. 지난 3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2022년 OECD 회원국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20점(100점 만점)을 받았다. 29개국 중 29위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 상장기업 이사 98%가 남성이라며 “심각할 정도로 균형이 무너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여성정책은 더 퇴행할 조짐을 보인다. 이대로라면 향후 5년간 유리천장 꼴등은 따놓은 셈이다. 이 흐름에 묻혀 일부 기업들도 어물쩍 묻혀 가려한다. 선진국과 비교해 가장 약한 여성이사 최소 1명이란 룰마저 지키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ESG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이러한 느긋한 태도는 주주피해로 연결될 수도 있다. 각국 책임투자 스크리닝(심사과정)에서 걸러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올해 이사회 다양성이 부족한 기업에 936건의 이사 재선임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는 지난 4월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책임투자 평가지표에 추가했다.
현실적으로 법안이 사문화되지 않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는 처벌규정이다. 이를 위한 국회입법이 필요하다. 지난 2020년 법안개정 당시 일부 의원들은 과도한 기업규제라며 반대입장을 냈는데, 남녀이사 비율이 98대 2로 기울어진 균형을 다시 보길 바란다.
금융당국의 변화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당시 개정과정에서 금융위원회는 “우리기업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반대했으나 준비조차 시도한 적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최근 ESG 경영으로 나름 유명한, 모 대형 증권사에 다니는 지인을 만났다. 자신이 근무하는 부서에서 남녀직무를 차별한다고 말했다. 똑같은 스펙의 여성직원은 제대로 된 업무를 맡고 싶어도 애초에 채용과정에서부터 이를 막는다고 말했다. 유리벽(glass wall)이다.
이렇게 만연한 유리천장과 벽 문제를 풀기 위한 첫 단추가 개정 자본시장법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기업 의사결정구조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조직 내 여성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선 외부 사외이사보단 여성 사내이사가 더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자체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여성 리더, 전문가 풀을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여성의 목소리를 기업의사결정 구조에 담아야 한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바뀌고 있다. 하나의 성(性)만으로 구성된 거버넌스는 장기존속을 기대하기 힘들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