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제 전환·공동 구축 인정 등 각종 구제에도 ‘민망한 결과’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국회 과방위 “현실 고려하자”며 출구전략 고심
“세계 최초 5G 상용화”, “LTE보다 20배 빠른 5G” … ‘용두사미’ 허탈한 결말
이동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5세대 이동통신(5G) 28GHz(기가헤르츠) 기지국 구축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실상 28GHz 상용화에 실패했다는 평이 나온다. 정부와 국회는 “현실을 고려하자”며 28GHz 보급을 포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기술 현실의 한계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애초 정부와 통신사들이 자신했던 ‘진짜 5G’는 결국 신기루였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약속 간신히 이행한 통신사들 … 업계는 “눈 가리고 아웅” 지적
이동통신 3사는 지난 4월 진행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중간점검에서 5G 상용화 당시 약속한 기지국 의무 구축량의 11.2%를 달성해 기준인 10%를 겨우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10% 미만일 경우 주파수 할당이 취소된다.
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윈회(과방위) 양정숙 의원이 과기정통부에서 받은 4월 말 기준 28GHz 기지국 구축현황에 따르면. 3사가 구축해야 할 기지국 수는 각각 1만 5000국씩 총 4만 5000국이다. 그러나 실제 구축 완료된 기지국 수는 5059국으로 의무량 중 11.2%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지난해 점검 방식을 신고제로 전환해 올해 4월까지 시간을 연장해준 셈이 됐고, 3사의 공동 구축을 인정해 구축량을 3배로 ‘뻥튀기’해주는 등 정부가 갖은 ‘기술’을 동원한 결과다. 5059개 기지국 중 4578개는 3사가 공동으로 구축한 기지국을 중복으로 인정받은 수치여서 실제 구축된 기지국 수 자체는 3분의 1인 1500여 개에 불과하다. 중복 계산을 걷어낼 경우 3사가 구축한 기지국은 총 2000여 개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별로는 LG유플러스가 일반기지국 342개와 공동기지국 500개로 총 842개를 구축해 가장 많은 구축량을 기록했다. 이어 SK텔레콤이 각각 79개, 516개로 총 595개를 구축해 2위로 나타났다. KT는 각각 60개, 510개 등 총 570개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중간 점검의 결과를 과기정통부가 약속 이행으로 인정한 것과 별개로 28GHz 기지국 구축을 통한 상용화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약속 이행을 인정해준 건 주파수 할당 취소라는 파국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노력의 결과일 뿐”이라며 “지금 중요한 것은 3사가 약속한 4만 5000개 중 2000개밖에 이행을 못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국회 출구 전략 고심 … 허위과장 광고 책임은 누가 지나
국회 과방위 위원들은 28GHz 보급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정부에 ‘정책 전환’을 주문했다. 과방위 소속 양정숙 의원은 "미국, 일본 등 28GHz 5G 상용화를 먼저 선언했던 국가들도 초고주파 대신 중저주파를 이용해 5G 서비스의 속도와 커버리지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며 "실현 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강구하기 위해 내년 주파수 이용 기간 만료 전 시장과 기술 현실을 고려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자는 말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 역시 인사청문회 관련 서면 질의에서 ‘28GHz 대역 주파수 활성화 대책’과 관련해 "28GHz 활용도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기술적 특성, 해외동향, 서비스 수요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과방위와 마찬가지로 기술 현실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정부와 국회가 사실상 ‘28GHz’ 포기 선언을 준비하는 데는 애초에 일반인을 상대로 상용화되기 어려운 28GHz의 기술적 특성도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한 전문가는 “밀리미터파(28GHz)는 전파의 직진성이 강하고 회절성(휘어지거나 통과하는 성질)은 약하기 때문에 장애물을 만났을 때 피하거나 통과하지 못한다”며 “산이 많고 도시가 발달한 한국의 지리적 환경에서는 상용화가 더욱 어렵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28GHz는 전면적인 상용화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기술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통신사들이 이후 점검에서 또다시 의무 이행률을 놓고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이 앞다퉈 ‘대안 마련’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치권과 국회가 통신 소비자이자 전파의 ‘주인’인 국민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LTE보다 20배 빠르다’고 광고할 때는 언제고, 결국 5배 정도 빠른 것 아니냐는 지적에 할 말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허위 광고를 넘어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정부와 국회가 이번 중간 점검에서 벌어진 ‘꼼수’ 인정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속은 기분’을 느낄 국민은 잊혀진 채 ‘통신사 구하기’에만 나선다는 인상 역시 지울 수 없다. 5G 상용화 과정에서 나왔던 약속들에 대해 정치권과 통신사들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용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