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협력하겠다면서도 물밑에선 ‘난색’ … “5G 투자 집중해야 할 시기”, “통계의 오류”
요금제 다양화는 5G 시대 본격화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반응도
중간요금제보다 정권 교체기 단골 메뉴 ‘통신비 인하 요구’ 나올까 전전긍긍
통신 공약 없었던 尹-인수위 중간요금제 추진 발표에 통신사들 ‘당황’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이동통신사들에게 ‘중간요금제’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민들의 요금제 선택 폭을 넓힌다는 취지인데, 통신사들은 협력을 약속하면서도 복잡한 속내를 애써 감추는 모양새다.
남기태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 인수위원은 지난달 28일 '차세대 네트워크 발전전략 수립 추진' 브리핑에서 "5G 서비스에 대한 불만과 선택권 제한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고, 네트워크 장비 산업은 정체되어 있는 등 해결할 과제가 많은 상황"이라며 5G 요금제를 다양화해 서비스 사용자들의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 위원은 구체적으로 “5G 이용자의 평균 데이터 이용량은 1인당 23GB 정도지만, 통신사가 제공하는 요금제에서는 10GB 아니면 100GB기 때문에 그 간극을 메꿀 방안이 고려될 것”이라고 언급해 이른바 ‘중간요금제’ 도입 추진을 시사했다.
윤석열 당선자는 통신 공약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윤 당선자의 후보 시절 공약에도 통신 관련 내용은 없었다. 이번 발표는 인수위 국민제안센터에 올라온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사들은 인수위의 첫 통신 공약인 만큼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5G 망 확대 등 이슈 대응에서 새 정부와의 관계가 중요하고, 중간요금제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된 문제이기에 협력하지 않을 명분은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인수위가 근거로 든 이용량 부분에 대해서 통신사들은 크게 동의하지 않는 데다, 내부적으로 “먼저 나서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실제 도입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통신사들은 요금제 인하 정책이 추가로 나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사, “5G는 아직 손익분기점 못 넘어” 통계 오류 지적도
통신사들은 무엇보다도 5G 자체가 아직 투자를 지속해야 할 단계라는 입장이다. 5G 망 보급도 확대해야 하는 데다 이른바 밀리미터파로 불리는 28GHz 망도 과제로 남아있기에 아직은 ‘돈을 써야 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때문에 통신사들은 사실상 요금이 할인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중간요금제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인수위가 검토 중인 중간요금제는 데이터 제공량 기준 10GB(월 5만 5000원)와 110GB(월 6만 9000원) 사이 구간에서 설정될 전망이다. 30GB에서 50GB 정도의 요금제가 신설될 경우 가입자 1인당 월 평균 7000원 정도의 통신비 인하 효과를 누리게 되고, 반대로 통신 3사의 매출액은 분기당 약 15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사들은 이러한 계산에 따라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아직 수익보다 투자에 집중해야 할 시기인데, 너무 앞서 나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라며 “현재 기준이 되는 두 요금제의 가격 차이가 1만 4천원밖에 되지 않아 중간요금제 가격 설정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인수위가 판단 근거로 든 ‘평균 사용량’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계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한 달에 50GB 이상 사용하는 ‘헤비 유저’가 10-15% 정도 되는데, 이들이 평균을 끌어올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사용자들이 2-30GB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용자들 때문에 평균값이 높게 나타난 것뿐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상위 10% 사용자의 5G 트래픽은 전체의 43.4%를 차지하고 있고, 대부분 사용자들은 10GB 미만의 데이터 사용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간요금제 크게 나쁘지 않아” 긍정적 시각도 … 요금제 인하가 진짜 문제
반면 업계에서는 이번 중간요금제가 통신사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금제를 다양화해서 사용자를 확대하는 것은 3G나 4G LTE 때도 있었던 흐름이었다. 이번에 중간요금제가 도입되면 5G로 넘어오지 않고 있는 기존 4G 요금제 사용자들을 유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요컨대 중간요금제 등의 요금제 다양화 논의 자체가 이동통신 세대가 바뀔 때마다 보편적인 서비스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으레 나오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지난 2월 기준 5G 사용자는 2228만명으로, 4771만명의 사용자를 유지 중인 4G LTE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4G 사용자를 5G 요금제로 끌어올 수 있다면 중간요금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이같은 시각을 가진 한 전문가는 "중간요금제가 도입되면 단기적으론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이 떨어질 수 있겠지만, 3G나 4G LTE 저가 요금제 고객을 5G로 흡수하면 매출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러한 패턴 자체가 과거 3G, 4G 전환기에 반복되어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수익성 악화 우려로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존재한다. 장기적으로 어떻든 간에 단기적으로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점이다.
더구나 통신사들이 진짜 걱정하는 문제는 요금제 인하 요구다. 과거에도 정권 교체기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어온 ‘전례’가 있는 데다, 중간요금제에 비해 파괴력이 큰 이슈이기 때문이다. 통신사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볼 만한 부분도 별로 없다.
이 때문에 인수위의 이번 발표에 대해 통신사들은 “큰 화는 피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새 정부가 물가 인상 등을 이유로 통신 요금을 문제 삼을 경우 대응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여론도 호응할 가능성이 높다.
통신사들은 인수위나 이후 출범할 새 정부에서 통신비 인하 요구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단 인수위가 통신사들을 대상으로 한 ‘초강수’는 피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편 통신사들은 이번 중간요금제 도입 논의에 대해 인수위와 협의하겠다면서도 먼저 나서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간요금제에 대해 통신사 관계자들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구체적인 안은 없다”고 밝혔다. 우선 인수위와 새 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준용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