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강화·시총 과대평가 논란도
최근 유통업계의 주가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일부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확대하고 나섰다. 주주친화 경영을 통한 ‘주가방어’와 ‘내부결속’을 다지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자사주가 주주환원보다 경영인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남용되고 시가총액을 왜곡한다며 비판한다.
‘자사주’ 매입 확대하는 유통가
자사주(자기주식)는 상장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재매입한 것을 말한다. 통상 기업이 내부자금을 활용해 자사주를 취득하면 발행주식 총수가 감소하고 주식 가치가 제고된다. 따라서 자사주 매입은 배당과 함께 ‘주주환원’ 정책 중 하나로 여겨진다.
국내 기업도 주가가 떨어지거나 이익잉여금이 생기면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자사주 취득을 확대해왔다. 주주 입장에서도 양도소득세가 높은 배당 보다 자사주를 통한 주가 제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유통업체도 잇따라 자사주 매입 확대에 나서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원자재 및 금리인상과 더불어 글로벌 공급병목 현상이 지속되면서 유통업종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주가방어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한샘은 오는 10일부터 5월 10일까지 3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을 진행한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지난해 11월 300억원 규모 1차 자사주 매입에 이어 2개월 만에 두 번째 프로그램이다. 이 같은 자사주매입 시행은 최근 주가하락세가 가속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샘 주가는 14일 13시 32분 기준 71900원을 기록하면서 사모펀드 IMM PE 인수 당시 최고가(14만6500원)에 비해 두배 넘게 하락했다.
뷰티업종 아모레퍼시픽도 2019년부터 화장품사업 불확실성이 커지자 주가방어와 임직원 성과급 지급을 위해 꾸준히 자사주 매입을 확대해왔다. 지난 1월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까지 3년간 1186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 및 처분했다.
식음료업종 삼양식품도 오너리스크 이미지 쇄신을 위해 자사주 매입을 확대하고 주주친화 정책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삼양식품은 지난 8일 이사회를 열고 7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과 더불어 배당금 상향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삼양식품은 주식가치 제고와 더불어 임직원 성과 보상 방안을 위해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자사주 매입, '경영권 강화', '시가총액 과대평가' 논란도…
이처럼 기업들은 자사주를 ‘주주환원’을 통한 주주친화 정책의 일환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자사주가 주주환원 보다 장기적인 경영권 방어로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또한 자사주가 ‘자산’으로 취급되면서 발행주식 총수에서 제외되지 않아 시가총액을 왜곡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국내 자사주는 매입과 동시에 ‘소각’처리 되는 미국과 달리 기업의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자산’으로 인식된다. 상법상 규정도 전무해 자사주 매입 후 경영권 방어에 유리한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은 지난 9일에 열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세미나에서 “국내 자사주는 소수주주권 행사 방어부터 인적분할, 지주회사 전환, 주식교환 시 자사주 마법을 통한 지배력 강화에 활용되기도 하고, 본인이 소유한 재단에 출연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며 “국내에서 자사주 매입은 주주환원이 아니라 지배주주 경영권 보호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해 GS리테일은 GS홈쇼핑 흡수합병과 더불어 자사주에도 신주배정을 감행하면서 ‘자사주 마법’ 논란을 키웠다. 사실상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GS리테일 신주로 발행되면서 오너일가 지배력 확대를 위해 사용됐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네이버의 자사주 교환을 통한 전략적 제휴도 속내는 오너의 경영권 강화를 수단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네이버 이해진 창업주 지분율이 3.7%로 미비한 만큼 자사주 활용을 통한 지배력 강화가 목적이란 관측이다.
이처럼 자사주 관련 논란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자사주 처분도 신주발행에 준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소각하지 않고 보유한 자사주를 처분하는 행위는 사실상 신주발행과 같은 행위라는 지적이다.
이에 관해 한 재계 관계자는 14일 “자사주 자율 처분은 근본적으로 주주평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며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나 상여금 지급을 위해 사용된다면 특정인은 특혜를 받고 일반주주는 기회비용을 잃을 수 있다”고 <녹색경제신문>에 전했다.
한편 학계에서는 자사주가 발행주식총수에 포함되면서 시가총액을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에서 자사주를 제외하고 시가총액을 계산하는 국제기준과 달리 국내는 자사주를 발행주식 총수에 포함시켜 가치를 과대평가한다는 것. 이에 따라 경영진의 인센티브를 왜곡하고 과도한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활용된다는 지적이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외 2인은 논문 ‘자사주 포함 관행이 시가총액 및 주당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국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은 실제에 비해 평균 6% 과대평가된 상태”라고 밝히며 “특히 EPS는 평균 3.6% 과소평가, PER은 평균 4.2% 과대평가”됐다며 시가총액에 자사주가 포함되면서 일반투자자의 수익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자사주 관련 논란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상법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업지배구조가 기업 생존문제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진정성 있는 주주친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용준 기자 market@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