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DNA는 성장이다. 생존과 증식, 성장을 향한 기업 DNA의 투쟁은 오늘의 문명과 과학, 기술, 높은 삶의 질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기업 DNA가 지나치게 치열해 더러는 반사회적, 반인류적이어서 성장에 걸림돌이 되거나 인류를 위기에 빠트리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했다. 이에 기업들은 무한성장 DNA에 신뢰와 책임의 강화를 모색한다. 그것은 환경적 건전성(Environment)과 사회적 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바탕으로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는 경영과 기업이다. 이에 <녹색경제신문>은 한국경제를 이끌어 가는 기업들이 어떻게 ‘ESG’를 준비하고, 무슨 고민을 하는지 시리즈로 심층 연재한다. <편집자 주(註)>
▲EU, 탄소국경세 도입...탈석탄, 탈탄소 서둘려야
지난 14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결정했다. 일종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30년까지 EU의 평균 탄소 배출량을 1990년의 55% 수준까지 줄인다는 계획이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철강산업의 경우, 수소환원철의 상업화를 서둘러야 하지만 그린수소(탄소발생없이 얻어지는 수소)의 생산이 관건이다. 물을 전기분해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석탄발전 의존도는 여전히 40%를 넘는다. 이는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석탄발전 비중이다.
철강업계에서는 향후 연간 3조원 이상의 탄소국경세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동차나 조선업계도 이로 인한 부담이 확대될 수 밖에 없다.
이제 탈석탄, 저탄소, 더 나아가 탄소중립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탈석탄, 탈탄소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기업 중 하나는 두산중공업이다. 지난해 까지만해도 두산중공업은 석탄화력발전비중이 높아 좌초자산 위험이 지극히 높은 기업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기후 깡패'라는 국제적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뒤 두산중공업은 친환경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탄소중립을 주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여전히 탈석탄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두산重, 탈석탄 서두르는 만큼 미래도 밝아
이번 정부의 탈원전 기조로 인해 두산중공업이 경영위기에 처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좌초자산인 석탄발전과 가스발전사업의 위험을 간과한 것이 위기의 근본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탈석탄을 서두르는 만큼 두산중공업의 미래가 밝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약 5조원의 자금이 투자되는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관련해 두산중공업은 9%의 지분을 갖고 있다.
문제는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 석탄을 공급하기 위한 항만 시설때문에 맹방해변의 침식이 가속화되고 있고, 여러 환경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산중공업이 이 사업을 계속해 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석탄발전 수출도 국가적 위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좌초자산의 위험이 확대되고 있어, 탈석탄을 서둘러야 한다.
두산중공업이 탈석탄을 서두를수록,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 사업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2050탄소중립, 두산重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석탄발전부터 SMR까지
두산중공업은 2050탄소중립의 가장 핵심 기업이다. 무엇보다도 발전설비에 관한 한 전신인 한국중공업 시절부터 독보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이 탈석탄, 탈탄소를 어떻게 실천해나가느냐가 우리나라 탄소중립의 성패를 결정할 수 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발표한 200조원 규모의 그린뉴딜 사업에서도 무엇 하나 두산중공업과 관련이 없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주력이었던 석탄발전 설비는 물론, 이를 대체할 가스발전부터 원자력발전, 신재생에너지,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까지 두산중공업은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날 18개 정부기관과 기업이 공동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 암모니아 협의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산업자원부는 밝혔다.
이번 협의체에도 두산중공업은 포함됐다. 이 협의체는 해외 그린수소 도입에 기반한 한국의 그린 암모니아 가치사슬 구축 및 확대를 위해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수소(H₂)는 부피가 아주 크고 폭발성이 강한 데다 액화를 위해서는 극저온(-253℃)에서의 냉각이 필요해 이송과 저장이 까다롭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합성이 용이하고 이송이 쉬운 암모니아(NH₃)로 변환하는데 그 중에서도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생산한 그린 수소를 변환한 것이 그린 암모니아다.
협약 당사자들은 생산-이송-추출-활용 등의 각 분야에서 그린 암모니아 산업 진흥을 위한 정보교류와 기술개발, 표준화 협력, 국제교류 추진 등에 협력하게 된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수소경제의 핵심인 그린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 가장 최적의 대안으로 꼽히는 SMR은 이미 9년전에 설계부문에서 가장 탁월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뉴스케일과 업무협약을 맺고, 완성도 높은 기술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두산重, 1년만에 미운오리에서 백조로...구조조정 졸업 임박
두산중공업(대표이사 박지원)은 두산그룹의 핵심기업이자 두산그룹의 미래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두산(회장 박정원)은 두산중공업 지분의 40.95%를 갖고 있다.
지난해 겪었던 유동성 위기 속에 우량계열사와 두산그룹 본관 빌딩을 처분하는 자구노력을 통해 KDB한국산업은행(회장 이동걸)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 부터 3조원을 지원받았다.
좌초자산의 위험이 큰 석탄발전사업이 주력이었던 두산중공업은 최근 수년간 전세계적인 탈석탄 움직임과 함께 수출시장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만큼 탈석탄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부문으로의 사업전환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두산은 지난 1년여 동안 탈석탄을 위한 노력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큰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1분기 5919억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올해 1분기에는 무려 547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15일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은 자금 3조원 중 채무 잔액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1조5470억원이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클럽모우CC를 1850억원에 매각했고,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1조2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은 두산중공업 유상증자 참여 등 재무구조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다각도로 재원 확보를 추진해왔다. 두산은 지난해 8월부터 두산솔루스(6986억원)와 모트롤사업부(4530억원), 두산타워(8000억원), 네오플럭스(730억원) 등을 처분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한 두산 대주주들은 두산퓨얼셀 지분 23%(6063억원)를 두산중공업에 무상증여하며 힘을 보태기도 했다.
두산중공업은 8월 두산인프라코어 매각(8500억원) 등 추가적인 자산 처분을 통해 9월 말 만기인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종료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두산이 채권단에 제공한 담보(두산중공업 지분 40.5%)도 해지 또는 규모 축소가 예상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의 자구계획이 원활히 진행되면서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계열 전반의 재무개선으로 관계사 지원부담이 완화돼 신용도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채권단 관리는 그룹의 지속 가능성 관점에서 '신의 한수'였다"고 말했다.
재무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다. 1년여만에 이같은 성과를 달성한 것은 중공업분야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두산중공업이 2030탈석탄, 2050탄소중립을 선도하는 핵심기업의 역할을 다해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져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의철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