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의 역습, “로보어드바이저가 사람보다 낫다!”…애널리스트 찾는 사람 줄어들어
-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젊어지는 리서치센터, 더욱 친근해지는 애널리스트
먹음직스러운 파이가 있다. 이전까지는 아주 여유롭고 우아하게 먹을 수 있는 파이였다. 파이를 먹는 사람이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수많은 손이 파이를 노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큰 조각을 먹으려면 더 빨리 손을 뻗어야 한다. 자칫하면 한 조각도 얻지 못해 굶을 수도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애널리스트다. 그들의 ‘무한경쟁’ 시대가 열렸다. 과거와 달리 책상 앞에 앉아 기업을 분석하고 리포트만 쓰고 있을 수는 없다. 시간이 갈수록 파이는 작아지는데 파이를 원하는 손은 많아지고 있다.
나날이 진화하는 AI(인공지능)은 애널리스트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언젠가는 SF영화를 방불케 하는 인간과 AI의 자리다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미 증권사들이 내놓은 AI 리서치는 ‘로보 애널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빅데이터·AI 기반의 금융 투자 플랫폼도 위협적인 존재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시장 지형을 바꾸고 있다. 과거라면 리포트를 읽고 애널리스트의 투자 의견을 따랐을 투자자들이 이제는 로보어드바이저에게 투자를 맡긴다.
애널리스트는 이미 파이를 빼앗기고 있다. 달라지지 않으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엑소더스’ 대신 잔류를 선택한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경쟁력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면한 급선무는 애널리스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AI 리서치, 애널리스트 자리 넘보나? “AI가 계속 진화한다면 언젠가는”
최근 증권사들은 앞다퉈 AI 등 신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AI에 기반한 리서치다. AI 리서치는 기업의 시가총액이나 기업가치 등의 객관적 지표는 물론 관련 뉴스까지 수집해 분석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작년에 ‘인공지능 리서치 AIR’ 서비스를 내놨다. AI 리서치를 통해 기업의 주가 전망은 물론 성장성·수익성·기업가치 등의 평가를 확인할 수 있다. 애널리스트의 리포트와 달리 그래프나 표 등을 활용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인공지능 리서치 AIR는 객관적 자료만을 취합해 분석하는 것이라 일반 리포트와는 차이가 있다”며 “애널리스트의 분석 기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퀀트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퀀트는 수학·통계에 기반해 투자 모델을 만들거나 시장 변화를 예측하는 애널리스트를 말한다. 이들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설계해 투자에 활용하며 퀀트 리포트를 발행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AI를 이용한 리서치와 일맥상통한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AI 리서치는 직접 현장을 확인하거나 대화를 통해 정보를 수집할 수는 없어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내용은 쓰지 못한다”며 “다만 AI 리서치는 커버리지가 넓어 사각지대에 있는 기업들의 정보를 전달한다는 장점을 지닌다”고 말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 숫자는 2200여곳에 이르는데 현재 한 증권사 리서치 센터가 다루는 기업은 평균 200여개에 불과하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AI 특성상 학습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면 고도화된 리포트도 집필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현재 AI 리서치의 수준은 기업들이 발표하는 실적이나 당기순이익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학습 효과를 통해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업황과 종목을 분석하고 시장 상황을 예측하는 수준의 보고서까지 집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많은 증권사가 AI 리서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선두에 선 것은 한국투자증권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인공지능 리서치 AIR’에 이어 해외주식 리포트를 작성하는 ‘인공지능 리서치 AIR US’ 서비스를 내놨다.
국내 자기자본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도 AI 리서치 경쟁에 뛰어든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는 오는 9월부터 로보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보고서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투자도 인공지능이 해주는데”…로보어드바이저의 시대 열리나
AI가 사용되는 것은 리서치 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AI가 투자도 대신 해주는 시대가 오고 있다. 바로 로보어드바이저다.
로보어드바이저란 고도화된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통해 포트폴리오 관리를 하는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말한다.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최근 주식투자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파운트 관계자는 “로보어드바이저는 퀀트보다 더 고도화된 수준까지 발전해 있다”며 “폭넓은 정보를 수집하고 사용자 개인에 알맞은 포트폴리오를 짜 투자를 돕는다”고 설명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주식 매수·매도까지 한 번에 가능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더욱 쉽고 편한 투자를 할 수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하는 한 고객은 “이제 리포트를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재무제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없어졌다”며 “직접 투자하던 것보다 마음도 편하고 수익률도 낫다”고 말했다.
로보어드바이저가 발전할수록 애널리스트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인간 애널리스트’의 필요성이 줄어든다면 감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증권사의 ‘브레인’ 리서치센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리서치센터와 애널리스트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리서치센터의 세대교체는 2019년 말부터 이뤄졌다. 미래에셋증권(서철수 센터장)과 키움증권(김지산 센터장)에 이어 신한금융투자(윤창용 센터장)·KB증권(유승창·신동준 공동 센터장) 등이 1970년대생을 리서치센터장으로 임명했다. 최근 2030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투자자가 늘어난 만큼 리서치센터 역시 젊어지겠다는 뜻이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1977년생으로 ‘최연소’ 센터장 타이틀을 달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투자증권(유종우 센터장)·NH투자증권(오태동 센터장)·유안타증권(김승현 센터장)·유진투자증권(이승우 센터장) 등도 올해 들어 1970년대생을 센터장 자리에 앉히며 ‘40대 센터장’ 흐름에 합류했다. 오태동 NH투자증권 센터장은 1972년생으로 10년 만에 바뀐 새 얼굴이다.
세대교체를 시작한 리서치센터는 유튜브까지 저변을 넓히고 있다. 2030세대는 리포트보다 유튜브를 더 친숙해한다. 유명 주식 유튜버들은 이미 100만 명을 훌쩍 넘는 숫자의 구독자를 갖고 있다. 주식 커뮤니티에는 "리포트는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유튜브 방송을 보면 쉽게 설명해줘서 좋다" "아무래도 유튜브의 접근성이 더 좋다보니 이제 리포트는 안 찾아보게 된다"는 반응이 올라온다.
증권사가 내놓은 유튜브 방송 역시 호응을 얻으며 구독자 10만 명을 넘겨 ‘실버 버튼’을 받았지만 여전히 전문 유튜버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증권사 입장에선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유명 주식 유튜버가 애널리스트보다 낫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라 애널리스트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아진 셈이다.
노우진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