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실린더, 스무 개의 인젝터에 최고출력 610마력
미사일 발사 버튼처럼 생긴 빨간 스타트 버튼이 핸들 안쪽의 크랙션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딸깍'하고 버튼을 눌렀다. 레이스 시작이다.
"우르릉"
잠자던 야수의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앞으로 달려나갈 것만 같은 분위기다. 10기통 엔진인 V10 소리가 진동과 함께 울리자 온몸에 전율이 퍼지기 시작한다.
‘더 뉴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는 지난 2월 국내 출시됐다. 현존하는 아우디의 내연기관 자동차중 최고의 스펙을 갖춘 R8은 강한 직선 디자인을 뽐낸다. 2006년 파리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자동차다.
엑셀을 살짝 밟자 야수가 사냥을 하듯 공기를 가르기 시작한다. 엑셀에 힘이 들어가자 엔진이 굉음을 내며 변속이 빠르게 진행됐다. 속도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올라갔다. 610마력의 힘이 바퀴를 타고 전달됐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가속이 급격히 붙기 시작한다. 그러다 돌연 180도 U턴 구간 오르막이 나타났다. 이 속도로 U턴을 하다간 옆으로 날아갈 것만 같은데 R8은 오히려 트랙을 바퀴로 꽉 움켜쥐고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차체가 낮게 붙으며 단단하고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U턴과 함께 나타난 오르막에서 엄청난 속도로 치고 나가자 비행기 이륙때나 느껴지던 중력가속도가 온몸을 짓눌렀다. 롤러코스터에서 느낀 360도 회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행 모드를 다이나믹 모드로 바꿨다. 무겁고 단단한 핸들이 안정적인 주행감을 전달한다. 오른쪽 내리막길 90도를 크게 회전하자 기다리던 직진 코스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달릴 시간이다.
R8 V10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력은 331km/h다. 7단 S-트로닉 변속기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빠른 변속을 보인다. RPM(분당 회전수)이 8500까지 빠르게 치솟았다. 타임랩스(빨리 감기)인지 슬로우 모션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먹먹한 공간으로 천천히 빨려드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무중력 상태로 돌입할 것만 같은 아득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인제의 직선 코스는 500m다. 160km/h로 달릴 경우 11초, 200km/h로 달릴 경우 9초면 주파한다. R8의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끌어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공식적으로 3.1초지만 실제 선수들이 주행하는 경우 2.8초까지 가능하다.
원없이 엑셀을 밟으려는 찰나, 콘 4개가 나타나났다. 브레이크를 밟으라는 신호다. 길게만 보였던 직진 코스가 속도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진행요원은 콘 4개가 세워진 곳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후 코스가 급격히 변하기 때문에 반드시 감속 운행을 해야 안전하다.
R8은 가속 능력 만큼이나 제동 능력도 탁월하다. 조금 전까지 밀어붙이던 속력을 이겨내고 안정적이면서도 빠르게 속도가 줄어들었다.
다시 폭발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리면서 인제 서킷 5바퀴를 휩쓸었다. U턴과 회전 및 직진코스를 거침없이 달렸다.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었다.
R8을 패덕(Paddock, 차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곳)으로 이끌며 속도를 줄이자 마치 한바탕 수영을 하고 나온 것 처럼 기진맥진 해졌다. 안들리던 엔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정신이 번쩍 들어 R8에서 내렸다.
정은지 기자 lycaon@greened.kr